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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풋볼 보헤미안 Mar 03. 2020

백년 전 공장 아낙네들,
슈퍼스타가 되다

전설의 여자축구팀 딕 커 레이디스 AFC

안타까운 역사지만, 여자 축구는 천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풋볼 보헤미안 

과거보다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 좋아지긴 했지만, 남자 축구와 달리 여자 축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가운 듯하다. 물론 세상은 변했다. 여성들이 활약하는 구기 프로 스포츠가 제법 자리를 잡았고, 팬층도 제법 두텁다. 몇몇 선수들은 스타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여자축구는 타 여성 구기 스포츠와 달리 자리를 잡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최근에야 FIFA와 각국 축구협회의 노력 덕에 여자 축구가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긴 해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자 축구는 ‘별종들의 스포츠’라고 여기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여자가 무슨 축구야”라는 말은 비단 한국만의 사정이 아니었다. 남자 축구만큼이나 여자 축구에서도 실력만큼은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는 ‘축구 천국’ 브라질의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뛸 팀을 찾기 위해 한국이나 유럽 등 이역만리로 떠날 정도였으니, 여자 축구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썩 좋지 못하다. 이는 다른 여성 구기 스포츠와 비교하면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늘 냉대만 받지는 않았다. 거의 백 년 전인 1920년대의 이야기다. 지금 소개할 잉글랜드의 한 여자 축구팀은 “여자가 무슨 축구냐”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던 그 시절, 남자 축구도 하기 힘든 한 경기 5만 명이라는 대관중을 운집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같은 날에 벌어진 남자팀 경기보다도 크나큰 인기를 끌었을 정도다. 믿기지 않는 일을 현실로 만든 주인공은 딕 커 레이디스 AFC다. 끝내 여성 차별적 행태 때문에 아쉽게 문을 닫아야 했던 비운의 팀이지만, 그들이 남긴 이야기는 진정 전설이다.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여자 축구 팀 딕 커 레이디스 AFC 엠블럼 @풋볼 보헤미안

이 팀의 탄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근현대사를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딕 커 레이디스가 출범했던 1917년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로 향하던 때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지독한 참호전과 독가스 살포로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전쟁으로 후세에 기억되고 있다. 세계사 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을 ‘삼국 협상’의 한 축으로서 전쟁 초기부터 주공 구실을 맡았던 영국군의 병력 손실은 어마어마했다. 거칠게 표현하면 전후 영국 내에서 남자 씨가 말랐다는 말이 많이 나올 정도로 많은 인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그 시기 잉글랜드를 비롯한 영국 내 축구계가 사실상 올 스톱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당시 잉글랜드 풋볼 리그(現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전신)는 전쟁 기간에 중단되었다. 몇몇 지역 대회가 벌어져 어렵게 명맥을 이어가긴 했으나 이 기록들은 공식적으로 잡히지 않는다. 선수들은, 앞서 언급한 영국군에 입단해 총을 잡았다.


당시 참전하지 않은 여성들은 대부분 군수물자를 만드는 일에 종사했다. 랭커셔주 프레스턴을 연고로 했던 딕 커 레이디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전선에서 병사들이 사용할 총알을 만들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여성들은 군수물품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풋볼 보헤미안

딕 커 앤드 코퍼레이션이라는 군수업체의 직원이었던 알프레드 프랭클랜드는 어두운 시대상과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여직원들의 복지를 향상하고, 이를 통해 생산성까지 드높이고자 사내에 여자 축구팀을 창단했다. 요즘으로 치면 체육 활동을 통해 직원들의 애사심과 업무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의외로 사내 반응이 좋았다. 여성 노동자들이 축구를 배워보겠다고 나섰고, 급기야 팀까지 만들었으니 이게 바로 딕 커 레이디스의 출발이다.


여자가 축구를 한다니, 당시 시대상을 떠올리면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외부의 호응이 생각 이상으로 뜨거웠다. 기록에 따르면, 딕 커 레이디스는 비슷한 시기에 흡사한 이유로 팀을 창단했던 아르델 팩토리라는 팀을 상대로 첫 공식전을 치렀다. 이 경기를 보려 무려 1만여 명의 관중이 몰렸다고 한다.


이 관중들은 남자 축구를 볼 수 없어 ‘꿩 대신 닭’이라는 생각으로 경기장을 찾았다고 한다. 거칠고 호전적이라 남자의 스포츠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축구를 여자가 한다니,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그런데 딕 커 레이디스가 기대 이상으로 잘했던 모양이다. 남자들 못잖게 몸싸움도 벌였고, 개인 기술도 훌륭했으며 대부분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날개였다는 릴리 파라는 선수는 팀의 에이스이자 인기 스타로 군림했다. 

딕 커 레이디스의 스타 릴리 파 @풋볼 보헤미안

이처럼 인기를 끌자 딕 커 레이디스는 유료 관중까지 받았는데, 티켓값은 10실링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모인 돈은 나라를 위해 총을 잡은 군사들을 위한 기금으로 활용했다니 마음 씀씀이까지도 실로 훌륭했다고 할 수 있다.


1919년 전쟁이 끝난 후 딕 커 레이디스는 어지간한 남자팀 못잖은 인기 클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프랑스·미국·캐나다 등 해외 투어까지 돌 정도였다. 관중 동원도 어마어마했다. 1920년, 지금은 에버턴의 홈으로 유명한 구디슨 파크에서 세인트 헬렌스 레이디스를 상대했는데 이때 무려 5만 3,000여 명이 스타디움에 운집했다. 심지어 미국, 캐나다, 벨기에로 해외 투어까지 다녔다. 지금도 그렇지만 해외 투어는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인기 클럽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총알을 만들던 아낙네들이 일약 슈퍼스타로 군림한 것이다. 


딕 커 레이디스의 성공은, 여자 축구도 남자 축구 못잖게 큰 인기를 끌 수 있는 종목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딕 커 레이디스의 인기와 성공을 잉글랜드 축구협회(FA)가 전략적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면, 어쩌면 여자 축구는 남자 축구에 버금가는 위상을 지녔을지 모른다.

딕 커 레이디스는 해외 투어까지 다닐 정도로 인기 클럽이었다. @풋볼 보헤미안

하지만 FA는 요샛말로 ‘꼰대’였다. 전쟁이 끝난 1921년, FA는 여자 축구를 영국 내에서 아예 금지해버렸다. 쓸데없는 돈을 쓴다는 비판부터, 여자가 축구를 하기에는 육체적으로 위험하다는 등 여러 이유가 제기됐다. 하지만 FA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여자 축구 선수 중 부상을 호소한 선수는 플로리 레드포드라는 선수 단 한 명이었다. 그것도 경기 중에 다친 게 아니라 기르던 개에게 물린 것이라고 하니 축구 경기 중 다친 여자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으며 여자가 축구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강변했지만, 본심은 ‘감히 여자가 무슨 축구냐’였던 것이다. 이 성차별적 결정 때문에 점차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던 영국 내 여자 축구의 인기는 크게 타격을 받았다. 제법 많은 여자 축구 클럽이 문을 닫았고, 딕 커 레이디스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딕 커 레이디스의 산파 구실을 한 프랭클랜드는 “경기를 치를 운동장만 주어지면 어디든 기꺼이 뛰겠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이후 FA의 결정이 미치지 않는 해외에서 팀을 운영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당시 FA의 결정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영연방 국가, 이를테면 캐나다와 같은 곳에서는 경기할 수가 없었다. 결국 뜨겁게 환대받던 그들의 설 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여자축구는 잉글랜드 내에서 금지됐다. 딕 커 레이디스도 활약할 무대를 잃었다. @풋볼 보헤미안

결국 딕 커 레이디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26년 프레스턴 레이디스 FC라는 이름으로 변경해 1960년대까지 겨우 명맥을 잇긴 했으나, 여자 축구 금지를 선언한 FA의 결정 때문에 사실상 유명무실한 팀이 되고 말았다. 결국 1965년에 문을 닫았다. 프레스턴 레이디스 시절을 포함해 딕 커 레이디스가 남긴 공식전 전적은 828전 758승 46무 24패다.


FA는 1921년에 내린 여자 축구 금지 조항을 무려 50년 동안 유지했다고 한다. 이마저도 여성 인권이 신장되는 등 시대 분위기가 달라지자 울며 겨자 먹기로 풀어준 것이라 한다. 과거 잉글랜드 축구계의 보수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일화다. 어찌 됐든 여자 축구가 금지된 그 50년 동안 ‘축구 종가’라는 잉글랜드에서 여자 축구는 사실상 고사하고 말았다.

잉글랜드 우먼스 슈퍼리그는 현재 세계 최고의 여자 축구 리그로 평가 받고 있다. @풋볼 보헤미안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현재 잉글랜드에는 여자 축구계에서 ‘꿈의 무대’로 평가받는 여성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등장했다. 지소연·조소현·전가을 등 한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의 스타 선수들도 이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1부 리그인 ‘우먼스 슈퍼 리그’에는 총 열한 팀이 있으며, 2부 리그인 ‘우먼스 챔피언십’에도 열한 팀이 존재한다.  승강제까지 벌이고 있으며, 대부분이 남자 축구 클럽에서 함께 꾸려가는 형태로 운영될 정도로 기반도 탄탄하다. 그 옛날 딕 커 레이디스가 봤다면 얼마나 놀랐을까?


그래선지 딕 커 레이디스가 100년 전이 아닌 지금 시대에 활약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더 밀려든다. 어떤 맥락에서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팀’이 아니었나 싶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을 내쫓다시피 한 FA는 맨체스터에 자리한 잉글랜드 축구 박물관을 통해 딕 커 레이디스를 전설적인 팀으로 팬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딕 커 레이디스는 그들이 받아야 할 온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딕 커 레이디스의 베스트 일레븐 @풋볼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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