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 인생의 분기점마다 놓인 숫자들은 마치 오래된 고목 아래 놓인 벤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치다가도, 그 앞에 다다르면 우리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르게 됩니다.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걸어온 길을 헤아려보기도 하지요. 숫자는 방향을 가리키고, 벤치는 숨을 돌리게 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오늘, 제 계좌에 생애 첫 연금이 입금되었습니다. 숫자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돈이 주는 감정은 뜻밖에도 깊고 묵직했습니다. 마치 모차르트의 실내악처럼 조용하면서도 완전한 울림이 있었고, 요란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을 살며시 두드리는 소리였습니다. 연금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이 작고 조용한 수입은, 단순한 숫자 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제 삶의 긴 여정 속에서 어느 지점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신호였고, “당신은 잘 살아오셨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작은 확인 도장이기도 했습니다.
무심코 사무실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살아오며 수많은 입금 알림을 받았지만, 오늘만큼 특별하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오늘의 입금은 누군가의 보상도, 어떤 거래의 대가도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제가 저 자신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고, 견디고, 쌓아온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저 스스로가 저를 위해 준비해 온 증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선물이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나르치스와 골트문트’에서 “삶은 방랑이 아니라, 깊은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문장이 오늘따라 유독 마음 깊이 스며듭니다. 나는 그동안 어쩌면 외부의 인정과 타인의 기대라는 지도를 들고 길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도착한 이 조용한 수입은, 내가 오랜 시간 묵묵히 쌓아온 벽돌 하나였습니다. 누구도 대신 들어줄 수 없는, 오직 나만이 지을 수 있는 내면의 집. 그 집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고향인 것입니다.
청년 시절(여전히 아직은 청년입니다만), 저는 ‘속해 있음’에서 안도감을 찾았습니다. 매달 일정하게 들어오는 월급은 보호였고, 의존이었으며, 때로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었습니다. 그것은 안정이라는 이름의 포로생활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런 생활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정해진 질서에서의 삶은 익숙했고, 그 익숙함은 편안했지만,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 짜놓은 틀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방향을 잃지 않는 대신, 나 자신을 잃어버리기 쉬웠습니다.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노인 ‘브룩스’는 감옥에서 주어진 ‘가짜 자유’ 때문에 ‘진짜 자유’를 누리지 못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습니다. 감옥에는 자유가 없는데 감옥에 익숙해진 사람은 그것이 자유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익숙한 감옥에서 나가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곳이 더 자유롭고,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늘 내 손에 들어온 이 연금은 다릅니다. 그것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이며, 어떤 통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순도 100%의 나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이 돈을 바라보며 저는 문득 떠올렸습니다. “나는 나를 준비해 왔다.” 이 단순한 문장이,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갈망해 온 진실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외부의 평가에 맞춰 살아가느라, ‘준비된 나’라는 존재를 잊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나를 믿고, 나를 지탱할 수 있다는 조용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통장 속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에 담긴 시간의 무게 덕분이었습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는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바다의 심연을 마주한 산티아고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의 고요한 싸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패배’란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 포기할 때 찾아옵니다. 결국 패배하지 않는 인간이란, 자신을 믿는 사람일 것입니다. 스스로를 위해, 묵묵히 미래를 준비해 온 사람. 저에게 연금은 단지 노후를 위한 보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저를 돌보아온 시간의 결정체이며, 앞으로의 삶에서도 두려움보다 먼저 꺼내 쥘 수 있는 용기입니다.
이제부터의 삶은 덜 요란하고, 더 깊고, 조금은 느려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는 진짜 ‘나’의 시간이 담길 것입니다. 내가 만든 시간, 내가 쌓아온 기반, 내가 선택한 자유. 그 모든 것의 상징으로서 오늘 도착한 이 조용한 연금은 제게 속삭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시간을 존중해 왔고, 이제 그 시간이 당신을 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조용히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작은 선물을 내게 보냅니다. 무언가의 끝을 기념해서가 아닙니다.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시작을 축하하면서 나는, 또 하나 시간의 결정체, 용기가 내게 속삭여 오길 조용히 또, 또 기다립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