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얼빈, 김훈

by spielraum

영웅 안중근이 아니라 청년 안중근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안중근의 대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대의보다는 실탄 일곱 발과 빌린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 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했던 그의 청춘은 세상의 어떤 위력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삶이었다.


"김훈은 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신바람 나며 행복했던 순간을 안중근과 우덕순이 블라디보스토크의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만나 이토 살해를 모의하는 장면을 쓸 때였다고 했다. 두 젊은이는 이토 살해의 대의명분이나 대책, 거사 자금 같은 것에 관해 단 한 마디도 토론을 하지 않았다. 두 청년이 시대에 대한 고뇌가 얼마나 무거웠을 텐데, 그 처신은 바람처럼 가벼웠다. 이 대목이 젊은이 다운 에너지가 폭발하는 가장 놀랍고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대목이라고, 했다"


- 꿩을 쏘고 남은 총알로 이토를 쏘는구나.

우덕순이 소리 없이 웃었다. 웃음은 엷게 얼굴에 번졌다.

- 우습지만 그렇게 되었다. 겨누어 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 총을 많이 쏘아보았는가?

- 많이 쏘지는 않았다. 나는 사냥꾼이 아니지만 이토는 꿩보다 덩치가 크니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안중근이 소리 내어 웃었다.

- 그렇겠구나. 그렇겠어. 나는 이토의 덩치가 너무 작아서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 그것은 좋지 않은 생각이다.

둘은 마주 보며 웃었다. 웃음은 흐렸고 소리 끝이 어둠에 스몄다(115p)


두 청년의 망설임 없는 의기투합의 대화는 묵직했다.


청년 안중근은 이토의 '문명개화', '약육강식'의 야만성과 폭력에 홀로 맞섰다. 그때 그는 서른한 살의 청춘이었다. 안중근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온몸으로 길을 내며 나아갔고, 젊음과 생명은 부서져갔다.


안중근이 부딪혔던 벽은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청년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때로는 시류와 타협하여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을 버릴 것을 요구받기도 한다. 그렇기에 거대한 세상에 홀로 맞선 청년 안중근의 삶은 시대를 뛰어넘는 강렬한 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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