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를 쾌락으로 치환하는 습관
"폐암 하나 주세요."
"후두암 1mg 하나 주세요."
"뇌졸중 두 갑이요."
다소 섬뜻하게까지 느껴지는
보건복지부 금연광고가 눈에 띈다.
하루에 두 갑씩 꾸준히 피웠던 담배를
끊은지도 어느덧 5년이 다되어간다.
아직도 술자리에서 담배생각이 나면
1년에 너댓 개피 정도는 입에 대지만.
누구는 담배는 끊는게 아닌 참는거란다.
힘들 때도 기쁠 때도 친구였던 담배.
힘들면 힘든대로, 기쁠 때는 기쁜대로
감정을 대변하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
마주하는 상황마다 그 맛도 다르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수단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는 멋있을 때도 있었다.
밤하늘에 뿌옇게 담배 한 모금 날리면
그 한 숨에 고통과 외로움도 사라지고
감정의 찌꺼기들을 내보내는듯 했다.
하지만 마지막 한 모금까지 태우면
담배를 알게된 것이 후회되고는 했다.
표면적으로는 당연한 이유들이었다.
잠들기전에 죄책감이 들었고,
자고 일어나면 숨이 갑갑했고,
24시간 가래와 기침은 잦았고,
조금만 뛰어도 숨이 가빠왔다.
하지만 정말로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담배가 점차 내 모든 감정을 대변하는
일종의 매개체가 되면서 점점 습관처럼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알콜 중독, 게임 중독, 성 중독처럼 말이다.
맨정신으로는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를
쾌락으로 치환하려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사실 쾌락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스트레스를 낮추고 시너지를 내기도 하며
삶을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스포츠를 즐기면서 쾌락을 느낄 수 있고
남을 도우면서 정신적 만족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담배처럼 중독을 부르는 것들은
같은 쾌락이지만 그 말로가 조금 다르다.
몰입할수록 육체와 정신은 핍폐해지고
같은 쾌락도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사실 이미 많은 흡연자들이 알고 있지만
쉽게 몰입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있다.
단지 개개인의 의지가 약해서라기보다
사회적 시간 빈곤의 문제와도 이어진다.
시간이 있고 물질적, 심적 여유가 있으면
얼마든지 건강한 취미생활과 휴식을 통해
충분히 삶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지만
쉽지 않은 현실의 팍팍한 단면이기도 하다.
빠르고, 쉽다. 그리고 강력하다.
의존하기 시작하면 습관이 생기고
습관이 지나치게 되면 중독이 된다.
나도 한참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몸과 정신이 조금씩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유일한 친구(?)로 여겼던 담배로 인해
기흉을 얻고 폐 절제수술을 받게 되어서야
비로소 담배라는 녀석이 원망스러웠다.
사실 정확히 말해 잘못된 친구를 믿었던
내 자신을 책망하는 편이 더 맞았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를 제외하고는
담배가 가져다주는 로망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단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그 이유만으로
금연한 것을 살면서 가장 잘한 일로 자부한다.
삶의 무게를 쾌락에 의존하고 치환하는 습관은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에 좋은 해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