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 글을 썼다

혜민

by 석순

'그래서 이 글을 썼다’는 문장을 좋아한다. 언제 읽어도 매력적인 문장이다. 어떤 순간에는 그 한 문장을 위해서 모든 글을 읽은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쓰는 사람이 왜 그 글을 썼는지를 이해하고 나면, 마치 그 사람을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사람을 알고 나면, 그 사람의 글에 좀 더 가까워진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는 문장을 들여다보면서 고민했다. 나는 왜 글을 쓸까?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 걸까? 과연 어떤 문장 뒤에, 나의 ‘그래서 이 글을 썼다’가 올까? 나조차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로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글은 “인셀: 폭력이 ‘권리’가 되다”의 긴 편집후기다.




해방을 꿈꾸며, 우리는 이 글을 썼다

이상하지 않니, 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던진 몇 달이었다.


여성폭력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건 올해 7월이었다. 석순 세미나를 위해서 로라 베이츠의 《인셀 테러》라는 책을 다 읽은 참이었다. 언제나처럼 쏟아지는 여성혐오 사건들을 매일매일 마주하면서, 꼭 그 폭력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몰랐다. 단지 그것이 내 유일한 의무 같았다. 여성폭력에 대해 쓸 것, 그리고 그 폭력을 가하는 남초 커뮤니티에 대해 쓸 것. 폭로할 것. 알릴 것.


7월부터 꾸준하게 글을 읽고 사례를 모으는 와중에, 대규모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딥페이크 성범죄를 마주하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건 실망도 무력감도 분노도 아니었다. 아득함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며칠간, 땅은 땅이 아닌 것 같고 몸은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분에 시달렸다. 내가 세상 같은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존재인 것처럼, 모든 게 멀었다. 아득하게 멀었다. 며칠의 아득함을 이겨낸 뒤 찾아온 건 잠도 오지 않을 만큼의 선명한 분노와 뭐라도 해야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그래서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내내 힘들다는 말과 역겹다는 말을 반복했다. 《인셀 테러》를 읽고 한국 남초 커뮤니티를 들여다볼 때도 힘들었는데,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터지고 나서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떠다니는 순간들은 토할 것처럼 괴로웠다. 남초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다가 화를 내고,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들의 텔레그램 메시지에 메스꺼워하고, 역겨워서 한 문장도 적지 못하다가, 역겨워서 수많은 문장을 뱉어내는 날들이 반복됐다.


어떤 날에는 글이 너무 느렸다. 매일매일 쏟아져나오는 새로운 텔레그램방의 존재 속에서, 이 모든 사태를 분석하고 정리해서 내놓는 글은 너무나 느리게 느껴졌다. 당장의 변화를 만들고 촉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가만히 앉아서 글만 쓰고 있는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그런 새벽이 아무리 반복되어도, 스스로에게 단 한 번의 의문도 가지지 않은 건 이 글쓰기의 목적이 언제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싸운다. 바꾼다. 읽고 쓰고 그럼으로써 싸운다. 싸움으로써 바꾼다.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드러난 이후 가판대에서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석순 62권을 보며 더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들이 우리의 책을 가져간다. 사람들이 우리의 글을 읽는다. 그러므로 나는 글이 갖는 힘을 믿어야 했다. 글을 써야 했다. 공부하고, 분석하고, 알려야 했다. 나의 글이 닿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온 힘을 다해 써서 전해야 했다.


아무거나 쓰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생동하고, 생동할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석순실에 앉아 수많은 책을 뒤적거리며 고민했다. 글이 가지는 생명력은 글마다 천차만별로 달랐다. 어떤 글은 쓰인 지 수백 년이 지나도 그 잎을 반짝이고 있었다. 어떤 글은 쓰인 지 단 몇 개월만 지나도 활력을 잃고 시들어버린 채였다.


잎을 반짝이는 글들은 모두 지금 우리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글은 우리 삶에 비춰질 수 있을 때 삶 그 자체와 조응하며 생동한다. 그래서 생동하는 글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삶이 자리 잡은 이 사회와 조응한다. 허공에 뜬 말들로는 생동하는 글을 쓸 수 없다. 생동하는 글, 살아 있는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도 내가 발붙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다. 그러지 못할 거라면 쓰지 않고 싶다.


석순 63권이 발행되고 난 뒤 적어도 반년 동안은 우리의 글이 가진 생명력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석순 63권이 가판대에 있는 동안은 시들어버리지 않길 바란다. 그 다음 호가 나올 때까지 잎을 반짝이며 독자들을 마주하길 바란다. 그런 간절함이 생겨날 때면 미래에서 읽을 독자들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글을 쓰곤 했다. 당신이 읽고 있는 지금 그 순간에도, 제 글은 아직 생동하고 있나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교지는 과거에 비해 그 내용이 많이 변했다. 석순은 1983년 창간되었다. 석순 창간호에는 여학생회지에 대한 좌담회 내용이 실려 있다. 좌담회 사회자는 말한다. “여학생회지가 존재하여야 할 필요성, 그리고 여학생회지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들을 광범위한 여성문제 및 우리 고대 여학생 문제와 결부시켜 서로의 의견을 나눠보는 것이 본 좌담회의 목적이 되겠습니다.” 석순 2집에는 총여학생회의 발간사가 담겨 있다. “여학생 전체의 공동의식을 매개하고 대표하는 것을 보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지면을 통해 수행하고자 하는 노력이 석순을 창간하게 했다.” 총여학생회가 사라지고 2년이 지난 1991년, 석순은 “학우 여러분이 문제가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 해결을 위해 실천하기를 촉구”하면서 여성학교를 열었다. 여성학교 자료집의 <석순 소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석순지를 발간함과 동시에 대중적 인식확산과 조직건설추동이라는 과제는 현재 석순이 담당해야 할 최소한의 목표일 것이다.” 처음 만들어질 시기의 석순은 여성문제에 대해, 여성운동과 여학생운동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했다.


지금의 석순은 예전만큼 여성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거나 이끌지 못한다. 겨우겨우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여성주의 교지의 역할을 우리가 잘 해내고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사실 나는 자신이 없다. 생동하는 글이 쓰고 싶다고 말하고 적는 내내, 실은 생동하는 글을 바라기란 이제 우리에게 무리일지도 모른다고 자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이 시대 여성주의 교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여성운동을 따라가기라도 하는 우리의 존재가, 페미니즘을 내걸어 말하고 고민하고 적어내는 교지의 존재가, 존재 그 자체로 내는 영향력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여성운동의 방향에 대해 고민한다. 쓰인 글과 쓰이지 않은 글을 구분하고, 쓰여야 하지만 쓰이지 않은 글을 찾아낸다. 그리고 쓴다. 매 순간 선언하는 마음으로 쓴다. 우리의 모든 쓰기는 끝없이 싸우고 외치는 저항이다.


그래서 감히 여성해방을 꿈꾸며 썼다. 사실은 반년보다도 더 오래 생동할 우리의 글을 꿈꾸며 썼다. 읽은 사람이 곱씹고 곱씹다가 끝내는 바뀌기를 꿈꾸며 썼다. 여성해방을 위한 싸움에 힘이 되는, 그럼으로써 여성해방을 위한 싸움의 일부가 되는 글을 꿈꾸며 썼다.


우리의 글은 언제나 문자 그 이상의 생명을 꿈꾼다.
해야 할 말이 있다면 무엇이든 담겠다는 결심으로.
진심이 아니라면 단 한 글자라도 담지 않겠다는 맹세로.


우리는 돌을 뚫고 피어날 꽃.
어떤 형태로든, 돌을 깨기 위해 안간힘 쓰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모든 이의 이름으로 폭력에 대항하며, 나는 이 글을 썼다

지난 7월, 그러니까 내가 한창 인셀들의 테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그때, 누군가 석순을 찢어놓고 간 적이 있다. 지난 학기에 썼던 62권이 하나스퀘어 가판대에 절반으로 찢어져 놓여 있었다. 찢어진 페이지에는 내가 쓴 글이 실려 있었다.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고르고 볼드 처리를 한 내 글. 두 달을 매달려 써낸 글. 그 글이 완전하게 절반으로 뜯긴 페이지 위에 놓여 있었다. 단지 책 한 권을 찢은 일일 뿐이었지만, 나는 페미니즘에 대한 폭력성, 여성에 대한 폭력성을 진작부터 경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석순에는 이름 없는 글들이 실리기 시작했다. 석순 52권까지는 이름과 학과가 실렸고, 44권까지는 학번까지도 같이 실렸지만 우리는 이제 석순에 우리의 이름을 담지 않는다.


여성주의 교지에서 신원이 특정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매번 페미니스트로서 글을 쓰고 고민하는 우리에게는 ‘에이 설마, 누가 우리한테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지겠어’ 하고 웃어넘기면서도 ’진짜 설마?’하고 돌아보게 되는 막연한 공포가 있다. 그럴 리 없다고 뱉은 뒤에, 혹시 그럴 리가 있는지 가늠해 보는 습관이 있다. 나의 이름을 나의 글과 함께 실었을 때 나는 과연 안전할까? 매번 뒤따라오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에 우리는 조금 주저하기도 한다.


지난 글을 내놓으면서 나는 필명보다는 실명을 택했다. 도망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누군가 찢어놓은 글 안에 내 이름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는 게 그때는 분명 아무렇지 않았는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번 호에 싣기 위한 글을 쓰다 보면 아주 문득 겁이 났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세상에 드러나고 난 고작 며칠 뒤의 밤 11시 반, 잠시 석순실을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남자가 나를 따라왔다. 길 한편으로 피했다. 계속 보폭이 가까워졌다. 뛰었다. 뛰어서 쫓아왔다. 심장이 멈춘 건지 아니면 너무 빠르게 뛰는 건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나를 붙잡은 남자가 한 말은 어처구니없게도 설문조사에 참여해 줄 수 있냐는 말이었다. 내가 놀랐는지 아닌지 같은 건 관심도 없던 그 무심함이 두려웠다. 어두운 밤길 따위, 이제는 차라리 남자보다 귀신이 더 무섭다고 생각했었는데. 손이 떨렸다.


그날 저녁, 남자가 나를 따라오기 몇 시간 전까지, 우리는 편집회의를 하고 있었다. 백주년기념관 스터디룸에서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 가해자에 대해, 피해자에 대해, 구조와 권력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내가 피해자일지 모른다고 말했지만 실은 내가 피해자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를 만났다. 평소라면 그냥 같은 길을 걷는 중이라며 무시했을 사람이었지만, 남자가 날 따라오기 전부터 이미 나는 남자를 지나치게 경계하고 있었다. 나에게 가해질지도 모르는 폭력에 대해 말하고 고민하고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폭력에 대해 쓰는 삶이란 이렇게 일상의 막연한 두려움까지 마음먹는 삶이구나, 지독하게 깨달았다.


그 이후로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 알아보고 글을 쓰는 내내, 과연 이번 글도 실명으로 실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폭력에 대한 글을 내 이름으로 쓴다면, 나는 과연 그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까? 남초 커뮤니티가 여성들의 실제 삶에 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글을 쓰면서, 그들이 실제로 가하는 폭력을 매일매일 들여다보면서, 이미 나는 그 폭력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는 생각이 자주 스쳤다.


그럼에도, 이번에도 꿋꿋하게 실명을 고집해 이 글을 써낸다.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폭력을 폭력이라 인지하고, 폭력을 폭력이라 직면하고, 폭력을 폭력이라 말할 것이다.
숨길 수밖에 없었던 모든 이름들을 대신하여,


그런 다짐으로 썼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석수니들은 왜 쓸까?

처음

저는 진짜 유명한 말 많아 인간이에요. 말이 넘쳐서 글을 씁니다. 글은 써도 써도 모자라요. 글에 대한 갈증이 저를 계속 쓰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읽지 않아도 씁니다(조금은 슬프겠지만요). 자꾸 슬퍼질 때마다 글을 씁니다. 슬픔과 고갈은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 않더군요.


초록

저에게는 항상 모든 게 모호했습니다. 제 안에서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있을 뿐,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몰랐거든요. 글을 쓰면서 이들을 분해하고 분류하고 선후와 인과로 정렬합니다. 생각에 결론을 내리고 감정에 이름을 붙입니다. 그제야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런 감정이 들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제 언어를 획득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짐승녀

어문과를 선택한 나 자신에 대한 끝없는 정당화. 마감이라는 자극 중독. 이건 overdose.




추신. 최종 마감을 하던 중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폭력에 대해 집요하게 써내는 여성 작가의 수상 소식이 무척 기쁘다. 마찬가지로 폭력에 대해 쓰고 있는 우리의 목소리가 그에 공명하길 바란다. 모두의 생명은, 삶은, 존엄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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