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 보낸 편지

외부 기고 / 애벌레

by 석순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멀리멀리 날아왔습니다. 열한 시간 치의 비행이었죠.
이곳은 타지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땅이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저는 떠나왔나요.
숱한 밤을 건너오며 질문했습니다.
한국 문학을 좇아 찾아온 타지에서.
나의 고향. 나의 땅. 나의 나라.
그 진한 근대국가의 경계가,
그 상상의 공동체라는 이름표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저는 한국에
사랑과 사람과 여러 마음과 투쟁을 두고 왔습니다.
거리. 시간. 그런 것들은 다 인간이 만들었을 뿐인데.
저도 결국 지독한 인간인가 봅니다.




석순에서 못다 한 말을 타지에 와서야 쓴다. 이 글은 석순과 함께한 시간 덕분에 쓸 수 있었다.


나는 퀴어 페미니스트이다. 나를 이렇게 정의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퀴어라고 나를 정의할 때면 따라오는 부담감이 있다. 나를 수많은 정체성 중에 하나로 분류하고, 모든 퀴어들이 숙명처럼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인 “그럼 언제부터였어? 언제 깨닫게 되었는데?”에 대한 답을 부지런히 궁리해야 하고, 정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쓰고 애써야만 한다. 사실 꼭 그럴 필요는 없다. 퀴어이기도 어려운 세상인데 그냥 좀 편하게 살면 안되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래서 궁금하려나? 내가 대체 뭔지. 아무래도 그건 내 사생활이라 말해주기 싫다. (농담이다.) 더 솔직히는… 나도 아직 고민중이다. 퀘스쳐닝(Questioning) 정체성이 될 수도 있겠다. 고백하자면 나는 내가 레즈비언이 아니라서 성소수자가 아니라 확신하고 살았던 세월이 길다. 성인이 된 이후에 몇 번의 연애를 해본 적이 있지만 시스 헤테로 남성들과 이성애 연애만 해봤다. (그들의 정체성이 지금 어떻게 되었을지는 물론 모르는 일이지만!) 그런데 세상은 참 웃기다. 너는 언제부터 이성애자였냐고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데. 우리는 그걸 이성애규범성(heteronormativity)라고 부른다. 사회의 모든 기본값이 이성애를 중심으로 규정된 현실. 한동안 그 단어를 곱씹던 시기가 있었다. 헤테로규범성. 남성과 여성. 이성. 그게 뭐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집착할까. 툭하면 여자와 남자를 들먹이고 ‘여자/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보는 세상이 답답하고 부당하다는 감각. 그게 시작이었나 보다.


처음 고개를 갸웃거리며 퀴어에 기웃거리던 때는 대학에서 페미니즘, 젠더 이론, 퀴어 이론을 공부하던 때이다. 그런 글과 문학을 읽는 건 내게 해방감을 줬다. 한때 퀴어라는 단어에 매달렸다. 세 가지 단어로 나를 소개한다면 그중 하나는 퀴어였고 퀴어 이론이랑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미국 대학원에 지원하는 데에 온 힘을 쏟았다. 대학원 준비를 하면서 학교에서 그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왜 퀴어를 공부하고 싶냐고. 거기서 순간 망설였다. “제가 퀴어니까요!” 이렇게 명쾌하고 간단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답변이 자세히 기억나지도 않는 걸 보니 둘러 어설픈 답변을 내놓았나 보다. 퀴어 당사자성 앞에서 괜히 고개를 수그리게 된 적도 있다. 나는 당사자도 아닌데 알량한 선심을 품고 인권 활동을 해보려는 시스 헤테로처럼 보일까 봐.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싶기도 하다. 시스 헤테로 앨라이들이 더 많아지는 게 성소수자 운동에서는 중요하니까. 어쨌든 나는 퀴어라는 단어인지, 범주인지, 정체성인지 모를 것을 쫓아가며 집착하면서도 거기에 속하지는 못해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아직 당신이 원하는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언제 확신했냐고? 아쉽게도 한 가지 사건이나 시점 같은 건 없다.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은 그렇게 마법처럼 한순간에 결정지어지는 게 아닐 때도 많으니까. 나는 여자를 좋아해 본 적도 있고, 트랜스 남성에게 호감을 느껴본 적도 있고,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도 많다. 어때, 이 정도면 충분히 퀴어한가? 그래, 아마도 적어도 헤테로는 아닐 거라는 확신. 그때부터 퀴어라는 이름표가 나에게 더 어울린다고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이 정체화하는 성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걸 팬섹슈얼(pansexual), 범성애자라고 분류하더라. 바이섹슈얼(bisexual), 양성애자라는 분류도 마음에 든다. 좁게 보자면 여성과 남성을 둘 다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더 넓게 보자면 자신이 정체화하는 성별과 같은 성별, 그리고 다른 성별과도 만날 수 있는 사람. (당신이 여성으로 정체화한다면 여성, 남성, 트랜스 여성, 트랜스 남성, 논바이너리 다 만날 수 있는 거다.) 양성애와 범성애는 겹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여성적인 특징과 남성적인 특징, 중성적인 특징 모두에 끌릴 때가 있으니, 지금으로서는 양성애자에 가까운 듯하다.


그리고 또... 논바이너리. 요즘 매일같이 곱씹어보는 정체성이다. LGBT중에서 마지막을 담당하는 T는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약자이다. 트랜스젠더 하면 떠오르는 이름이나 얼굴들이 있겠다. 연예인 하리수나 유튜버 풍자. 조금 더 관련 문제에 관심 있다면 군대에서 강제 전역을 당해야 했던 故 변희수 하사까지. 한국에서는 여전히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에 대한 상상력과 대표성이 굉장히 제한적이라고 느껴진다. 앞서 언급한 사람들은 모두 바이너리 트랜스젠더(binary transgender)이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 지정받은 성별과 자신이 정체화하는 성별이 다르고 성별을 여성과 남성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었을 때 그중 하나에 속하는 트랜스젠더를 가리키는 말이다.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자면 태어났을 때 외부 성기 등을 기준으로 여성이라는 성별을 부여받았는데 자신이 남성으로 정체화한다면 트랜스 남성, 그 반대라면 트랜스 여성이다.


그럼, 왜 굳이 앞에 바이너리라는 말을 붙여야 하냐고?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nonbinary transgender)도 있기 때문이다. 논바이너리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 분류로 정체화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세상에는 여자, 남자밖에 없는데 그게 대체 뭐냐고? 검색해 봐라. 세상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많은 생물학적 다양성이 존재한다. 논바이너리를 “제3의 성"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여럿 만나봤는데 참 표현이 별로다. 나는 내 지정 성별과 신체에 대한 불쾌감과 성역할에 대한 엄청난 반감이 있을 뿐이지 유니콘 같은 존재가 아니다. 이래서 가시화가 중요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트랜스젠더가 무엇인지, 논바이너리는 무엇이 다른지 설명해 내야 하면 인생이 얼마나 피로하겠는가. 아무래도 나는 퀴어가 맞나 보다. 나를 어떻게 설명해내야 할지 매 순간 고민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지 우울해하고 걱정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졌으니 말이다. 요새 부쩍 눈물이 많아졌는데, 정체화의 과정과 무관하지 않은 슬픔이다.


눈물은 슬픔이 흘러가는 형태일까
또르르 흘러서
슬픔이 바닥에 곤두박질쳐서 사라질 수만
있다면
꼭꼭 잠가 놓았더니
마음에 누수가 생겼다
고여서 썩어버린 슬픔에
마음은 가없이 굳어간다
등에 꽂힌 칼이
나를 둘로 나눠버리는
꿈속의 현실
나는 세 번째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미지의 존재가 아니다


몸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아직 너무 어렵다. 너무 개인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라 써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도 써야겠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자 나라는 존재도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니까. 나는 많은 여성을 사랑한다. 세상에는 멋진 여성이 정말 많고 나는 여성들이 연대해 세상을 바꿨으면 좋겠다. 그런데 내가 여성인 것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적이 많다. 그건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와 장소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역사적으로 더 열등하다고 여겨져 왔다. 언젠가부터 나는 ‘여성적'인 것이 너무 싫고 내가 여성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내면화된 여성혐오가 아닐지 매일같이 고민했다. 그럼 그냥 ‘남성적'인 여성으로 살면 되지 않냐고? ‘톰보이 같은’ 여자, 이런 스타일이 요즘 유행인데 그냥 그렇게 살면 안 되냐고? 이런 말은 트랜스젠더적 욕망을 쉽사리 지워버린다. 많은 혐오 세력들이 말한다. 네가 ‘여성', ‘남성'이 되고 싶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그건 사회가 만든 틀일 뿐인데 왜 ‘자연적'으로 주어진 정체성을 부정하려고 하냐고. 웃긴 게, 많은 경우 그런 틀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하는 거다. 치마를 입고 싶다고 여자가 되고 싶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이 사회에서는 아직 남자가 치마를 입고 살 수가 없는데. 가부장제와 성별 이분법이 공고한 사회에서 트랜스 여성의 욕망은 병리화되고 트랜스 남성의 욕망은 부정당한다. 논바이너리는 없는 취급을 당하고 말이다.


여성의 몸보다는 남성의 몸을 갖고 싶다고 짧게나마 생각해 본 적은 있다. 그렇다고 페니스를 가지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더 강하고, 세고, ‘여성적’이지 않은 몸을 가지고 싶었을 뿐이다. 고민해 봤는데, 사실 남성이 되고 싶은 건 아닌 것 같다. 남성의 신체가 더 우월하다고 상정되어 있어서 가져본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냥 존재하고 싶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성별을 읽어낼 수 없는 신체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옷을 잘 입으면) 꽤 중성적인 체형을 가지고 있다. 작은 가슴은 학창 시절과 대학 초반에는 수치처럼 여겨졌던 적도 있으나 이제는 나를 더 편안하게 한다. 나는 중성적인 것들이 좋다. 중성적인 스타일, 중성적으로 보이는 사람들. 사람들이 나를 여성적인 여성, 남성적인 여성이 아니라 그냥 나로 받아들여 줬으면 한다. 그래서 정체성이 더 중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논바이너리, 라는 외래어 단어가 나에게 꼭 들어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 몸을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해주었으니. 내가 가지는 특권과 지워지는 정체성은 동시에 작동한다. 트랜스 여성은 치마를 입으면 변태성욕자 취급을 받고 시스 여성 공간에 침입하려는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진다. 나는 머리를 짧게 잘라도, 옷을 중성적으로 입어도, 아무도 내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논바이너리라는 정체성은 당신이 나를 의심해서 캐낼 수 있는 비밀이 아니라 내가 나를 나로서 받아들이기 위해 택하는 이름표이다. 누군가는 나를 부정하고 나를 혐오하겠지만 나는 그래도 눈물을 흘리면서 끝까지 나를 찾아낼 거다.


트랜스젠더 하면 보통 의료적 조치, 즉 호르몬이나 수술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비수술 트랜스젠더들도 많다. 나도 아직은 그런 생각은 없다. 인생은 두고 봐야 알겠지만. 그런 걸 또 논바이너리 비수술 트랜스젠더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 정체성 참 어렵다. 퀴어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논바 비수술 트젠이라고 소개하면 얼마나 곤란할지, 생각하기도 싫다. 앗, 이제는 이 글을 줘버리면 되겠다. 읽어보라고. 양성애자 논바이너리 비수술 트랜스젠더. 참 내가 고민해 본 정체성이지만 길고, 어렵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아직은 고민 중이다. 그걸 위한 퀘스쳐닝(questioning)이라는 퀴어 정체성이 존재해서 다행이다. 말이 길어졌지만,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까지도 참 오래 걸렸다. 내가 성소수자일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인권이랑 젠더에만 관심을 가지던 시기와 내가 퀴어 중에서도 가장 안퀴어한 퀴어 같아서 고민하던 시기를 거쳐서 돌아돌아 나를 퀴어로 정의하게 되었다.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당신도 이성만 좋아하고 성별 불쾌감 따위는 느끼지 않는 헤테로(heterosexual) 시스(cisgender)라고 확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퀴어로 정체화하고 나서 얻은 불안감, 우울감, 두려움, 그리고 많은 아픔이 있지만 편안함과 해방감도 분명히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 우리가 우리의 몸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며 살아가는 방식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퀴어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다. 페미니스트는 더 당연하면서도 어려웠던 이름표이다. 아마 나는 항상 페미니스트였을 거다. 가부장적인 제사 전통을 이어오면서 남자 어른들은 텔레비전 앞에 누워 있고 여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야 하는 광경을 수년간 목격해 오면서 쌓아온 반감. 학창 시절 은근하게 존재했던 성희롱적 발언들과 행동들에 대한 상처. 남자 학생의 불법 촬영을 입시 때문에 묵인하는 학교에 대한 분노. 꾸밈노동에 대한 강요와 성적 대상화에 대한 좌절. 한국에 존재하는 여성 차별이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니까 일단은 여기까지만 쓰겠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자면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이름표를 더 일찍이 당당하게 달지 못한 건 역시 페미니즘 백래시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전통적으로 소수자의 위치에 놓였던 여성의 인권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페미"라는 이름표가 낙인처럼 여겨져서 그 주변에서 한참 동안 서성이며 망설였다. 페미니즘 관련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면서 더 편안해졌지만, 더 당당하게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할 수 있던 건 역시 석순 덕분이다. 학교 교지. 학교 여성주의 교지. 학교 페미니스트 교지. 왠지 페미에 대해 안 좋은 낙인을 찍을 것 같은 사람들(또는 인권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노말한 사람들..)에게는 불행히도 그냥 학교 교지라고만 소개해야만 했지만, 이제는 더 당당해졌다. 나 페미니스트야. 페미니스트 교지에서 글을 썼어.


그래, 오래 돌고 돌았지만, 나는 한국 퀴어 페미니스트이다.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 여성과 퀴어, 그리고 그 교차 지점에 있는 모든 소수자가 흘릴 필요가 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나는 내가 바꾸고 싶은 한국을 떠나버렸다. 대학원에 가겠다고. 전액 장학금을 주는 박사과정에 붙어서. 미국에서 문학과 퀴어와 페미니즘을 더 공부해 보기 위해서. 한국이라는 공동체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고민해보기 위해서. 그리고…이기적이게도 내가 더 편해지기 위해서. 페미라고 나를 낙인찍지 않는 곳으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가 퀴어임을 알려도 혐오 받지 않는 곳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퀴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공개적으로 학교에서 퀴어 행사가 열리고 수백 명이 환호해주는 곳으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서 내 정체성이 의심받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그러니까, 해외와 미국에 대한 낭만화, 이상화, 기대감, 그리고 무지에서 오는 착각. 한국을 폄하적으로 생각하는 내면화된 시각. 그런 것들이 분명 섞여 있던 거다. 떠나겠다는 결정에는. 한국을 바꾸고 싶던 내가 왜 떠날까 뒤늦게 후회하며 울던 밤들이 있었다. 그런데 또,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서, 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를 나로 받아들일 사람이 더 많은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떠나서 더 행복해졌냐고? 한 달밖에 안 돼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얼마만큼은 편안해졌고, 또 새로운 아픔과 슬픔이 생겼다.


닿을 수 없을 정도로 푸르다.
감히 내 삶에서 닿을 수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드넓고 높고 푸르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로서, 그저 그대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뿜을 수 있는 존재.
달아오르는 피부와 그 위를 스쳐 날아가는 서늘한 바람.
사람이 이렇게 그저 존재할 수 있구나.
나는 있다.
누워 있다.
그것뿐이다.


학내 성소수자 지원센터가 있다. 학교 중앙 광장에서 개강맞이 행사가 열렸다. 드랙퀸 공연을 봤다. 과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갔다. 그녀는 에이스 배지를, 나는 바이 배지를 달았다. 수업에서든 오리엔테이션에서든 동아리 모임에서든 자기 소개를 할 때 선호하는 대명사를 물어본다. 아직은 어색한 문화이지만 이번에는 she/they라고 적어봤다. 트랜스 동아리 첫 모임에 참여했다. 여기는 트랜스 공동체의 공간이니까 시스젠더는 참여할 수 없다. 두 시간 만에 정말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을 만났다. 트랜스 여성, 트랜스 남성, 논바이너리, 젠더퀴어, 퀘스쳐닝. 하지만 많은 것들이 생경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네가 “언제 알을 깨고 나왔는지(언제 트랜스로 정체화했는지)”를 아이스브레이킹 질문으로 대화를 나누는 문화. 내가 모르는 수많은 팝 문화 레퍼런스들과 미디어 속 밈들. 알아듣기 어려운 농담들. 그리고 여전히 어렵다. 내가 설명해 내고 싶은 정체성은 타지의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를 설명해 낼 언어가 부족하다.


한국에서 일어난 시위를 멀리서 지켜만 봐야 했다. 젠더학 수업에서 국가를 초월하는 페미니즘 이론에 대해 읽었다. 이곳에서는 한국 페미니스트면 자연히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페미니스트로 분류된다. 참 식민주의적이고 웃기다. “너희는 우리를 능욕할 수 없다. 내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야.” 타지의 도서관에서 흔들리는 햇살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그 범죄가 끔찍해서. 여성들의 아픔이 너무 슬퍼서. 나는 이렇게나 멀리 있어서. 내가 바꾸고 싶은 세상에서 너무 멀리 떠나와 버려서.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연결되기 위해서. 연대를 거머쥐기 위해서. 잊지 않기 위해서. 나를, 그리고 우리를.


그래, 여기서도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면 되지. 무슨 문제가 있겠어. 중국 출신인 세 명의 페미니스트 친구를 만났다. 미국 페미니즘이 가진 의제들과 알게 모르게 동아시아 나라를 깔보고 차별하는 분위기, 관련 이슈에 대한 관심 부족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엘에이 한인타운에 있는 한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시위에는 7명이 참가했다. 페미니즘 동아리, 젠더학 과정 학생들, 교수님 등 여러 명에게 연락을 돌렸으나 반응이 없거나 너무 늦었다. 한편으로 씁쓸했다. 나는 한국 페미니즘 의제에 함께 싸워줄 사람이 적은 타지로 떠나왔구나. 그래도 다행이었다. 시위를 기획한 친구들은 자신들은 세 명뿐이었어도 시위를 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래.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해봐야지.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곳에는 분노와 마음과 연대가 있었다.




“우리는 분노합니다.
We are outraged.
근절되지 않는 여성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분노합니다.
We are infuriated at the continuing digital violence against women.
성범죄 근간에 있는 여성혐오적 강간 문화에 분노합니다.
We are enraged at the misogynistic rape culture behind these sex crimes.
성범죄를 개인의 사적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에 분노합니다.
We condemn a society that reduces sex crimes to personal issues.
구조적 성차별을 외면하는 정부에 분노합니다.
We rebuke the government that dismisses systematic gender discrimination.
젠더 폭력을 직시하고 법안을 제정하지 않는 정치에 분노합니다.
We denounce a politics that will not face the gendered nature of violence.
여성 성 착취물을 사고, 팔고, 소비하고, 본 남성들에게 분노합니다.
We are outraged at men who sell, buy, consume, and watch porn.
우리는 이 현실을 마주하고 분노를 말합니다.
We face this reality and shout out our anger.
우리는 페미니스트입니다.
We are feminists.
우리는 분노는 연대가 되어 세상을 바꿉니다.
Our outrage builds solidarity and brings about change.”




보고 싶어요, 석순.


제가 글을 쓰는 이 순간과 마음과 언어는 석순에게 빚졌습니다.
타지에서도 한국과 페미니즘과 퀴어를 잊지 않고 글을 쓰다 보면 우리는 계속 연결될 수 있겠죠.
시공간을 초월하는 마음과 이야기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믿어요.
그러니 잘 지내고 계속 써 주세요.
우리의 언어는 필연히 세상을 바꿀 겁니다.


엘에이에서, 애벌레 씀.




덧붙이는 말.


9월 29일. 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 인권팀에서 같이 일하던 연수님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직은 믿기지가 않는다. 오기 전까지도 그녀와 앞으로의 투쟁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는 팀장 자리를 막 맡은 차였다. 마지막 전화에서 잘 지내라고, 꼭 내년에 다시 보자고 이야기했다. 그저께까지도 브런치에도 그녀의 트랜지션 일기 글이 계속 올라왔다. 누구보다 세상을 바꿀 의지로 불타는 활동가였던 그녀가 왜 떠나야 했을까. 그녀는 내가 알던 사람 중에서 가장 용감하고 불꽃 같은 여성이었다.


연수님, 그곳에서는 평안하세요. 할 수 있는 말이 이것뿐이라 죄송합니다. 떠나기 전에 술 한잔하자고 하셨는데 시간을 못 내서 죄송합니다. 같이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았는데 더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동안 견뎌 내셔야 했던 혐오와 차별의 시간을 더 알아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힘들 때 더 기댈 수 있는 동료가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랜스 팀에서도 누구보다 든든한 동료였습니다. 연수님이 안 계셨으면 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함께 회의했던 시간들을 기억합니다. 어떤 문제든 목소리 내기를 마다하지 않고 항상 나서서 더 많은 일을 맡으려고 했던 연수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회의가 끝나고 홍대역까지 같이 걷던 시간들을 기억합니다. 성별 이분법에 분노하기도 하고 시답잖은 농담을 하던 시간들을 기억합니다. 같이 캠페인을 하던 시간들을 기억합니다. 트랜스 친화적 에티켓을 고안하며 꿈꾸던 차별 없는 세상과 어떻게 하면 트랜스 앨라이를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까 교육자료를 고민하던 시간들을 기억합니다. 누구보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던 연수님을 보면서 많이 배워갈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곳에서는 꼭 평안하세요.
아무런 혐오도 차별도 멸시도 없는 곳에서 행복하세요.
우리 투쟁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 다시 만나요.


활동가 이연수를 기리며.
그리고 누구보다 든든한 동료이자 친구였던 연수를 그리워하며.




삶에는 잔인한 구석이 있다.
사랑하는 목숨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어떤 죽음들은 삶의 완성이다. 잘 매듭지어진 삶의 끝에 찍히는 마침표.
그녀의 죽음은 아니었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생명을 뚝 끊어버린 균열.
나는 잊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썼다. 계속 싸워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펜을 놓을 수가 없다.
말로 죽일 수 있다면 나는 말로, 언어로, 이야기로 살려야 하니까.
이 이야기를 읽는 당신에게 아픔과 마음과 사랑이 전해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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