랟펨과 우파페미, 그 너머

혜민

by 석순

*로 인용 각주를, °로 내용 각주를 표기하였습니다.


새로운 여성단체 혹은 새로운 페미니스트를 만날 때면 괜히 긴장하게 된다. 혹시 랟펨은 아닐까?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발언을 하면 어쩌지?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내가 먼저 재빠르게 트랜스젠더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저는 트랜스젠더를 혐오하지 않아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랟펨을 만났을 때 바로 그의 의견에 반박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지식과 논리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랟펨이 ‘틀렸다’고 표현하기가 망설여지기 때문이었다. 나는 랟펨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모순적이게도 랟펨이 이해된다.


페미니즘보다 퀴어 의제를 먼저 접한 나에게 랟펨은 늘 알쏭달쏭한 존재였다. 왜 트랜스젠더를 배제하지? 왜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지? 왜 연대를 거부하고 다른 단체들과 이렇게까지 벽을 세우지?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알게 될수록, 그리고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을 체감할수록, 랟펨이 된 많은 여성들이 이해되었다. 이제 내게 랟펨은 설득해서 함께해야 하는 상대, 하지만 나아갈 길을 막는 것 같아 미운 상대, 동시에 왜 랟펨이 되었는지 알 것 같아 마냥 미워하기 어려운 상대이다. 자꾸 오답을 내놓는 답답한 상대이자, 제발 정답을 찾아내길 바라게 되는 애틋한 상대이다.


그런 복합적인 마음 때문에 랟펨에 대해 쓰기가 망설여졌다. “랟펨에 동의할 수 없다”는 글이 랟펨에 대한 비난으로 읽힐까 봐, 그래서 이미 일상에서 끝없는 차별을 감당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또 다른 생채기가 될까 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계엄 이후로 꾸준하게 SNS에 등장하는 단어 하나에 결국 이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우파페미’였다. 랟펨이 밉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상대였다면, 우파페미는 마냥 미웠다. 틀렸다고 마구 비난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파페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랟펨과 우파페미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다. 어디까지가 랟펨이고 어디까지가 우파페미라고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랟펨과 우파페미를 차례로 다룬다. 랟펨에 관해서는 랟펨이 어떤 주장을 하는지, 왜 여성들이 랟펨이 되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왜 랟펨에 동의할 수 없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우파페미에 관해서는 우파페미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경우를 두 가지로 나누고 각각에 대해 설명했다. 이 글이 지금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 랟펨

1) 랟펨은 누구인가?

가장 하고 싶은 말로 시작하고자 한다. 랟펨과 래디컬 페미니즘은 같지 않다. 랟펨은 ‘래디컬 페미니즘’의 줄임말이고 래디컬 페미니즘에서 출발했지만, 모든 래디컬 페미니즘이 랟펨인 것은 아니다. 알쏭달쏭하다. 그렇다면 랟펨은 왜 ‘랟펨’인 것이지? 랟펨이 대체 뭐지?


랟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해서 먼저 이해해야 한다. 래디컬 페미니즘 혹은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주로 1960년대 중후반 미국 여성해방 운동에서 시작된 성 정치학의 이론적, 실천적 계보를 지칭한다”.1* 래디컬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제도적, 문화적 차별에 주목했던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달리 성차별의 보다 심층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찾아냄으로써 여성억압의 뿌리, 토대, 근원을 해체하고자 하였다.”2* 따라서 래디컬 페미니즘은 성차별의 역사적, 구조적, 물질적 차원의 뿌리를 밝히고 제거해야만 여성의 해방이 가능하리라고 믿었다.3* 이것이 이 페미니즘이 래디컬(Radical, 근원적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이다.


랟펨은 래디컬 페미니즘 중에서도 분리주의적인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한국의 일부 페미니스트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주로 20~30대 여성들이 많으며, 특히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는 그 숫자와 영향력이 두드러지게 커졌다. 랟펨은 성차별을 표면적이고 문화적인 현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정치·경제·구조적인 원인까지도 연관 지어 이해한다는 점에서 래디컬 페미니즘의 조류 중 하나이다.


하지만 래디컬 페미니즘이 전부 랟펨인 것은 아니다. 래디컬 페미니즘이라고 통칭할 수 없는 랟펨의 주요한 특징은 이 페미니즘이 트랜스배제적이라는 데에 있다. 랟펨은 여성을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나서, 사회적으로 여성으로 자라나며 성차별을 경험한 사람’으로 한정 지으며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를 배제한다. 성차별로 인한 피해는 ‘생물학적 여성’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고유한 경험으로 여겨진다. 랟펨에게 트랜스여성(MTF트랜스젠더)은 여성으로 태어나지도 않았고 여성으로서 차별받은 경험도 없는 ‘가짜 여성’이자, ‘생물학적 여성’이 가진 정체성, 피해의 경험, 몸, 공간, 문화 등을 침략하는 남성4*이다. 또한 랟펨은 트랜스여성이 여성성을 수행함으로써 젠더 규범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트랜스여성을 “반여성적, 반페미니즘적 행위자”5*로 쉽게 규정한다.


랟펨의 또 다른 주요한 특징은 신자유주의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성공해서 계층 사다리의 정상에서 만나자는 목표는 페미니즘의 대중화와 나란히 부상해 왔으며, 여성 개개인은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 몸과 자아를 자원으로 활용하여 최대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자 한다.6* 랟펨에게는 이러한 개인주의적, 경쟁주의적, 계산적인 특성이 극대화되어 정상과 성공, 생존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개인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응당한 몫을 쟁취해야 한다는 공정에의 감각”7*이 커지고, 이에 따라 트랜스여성은 불공정하게 ‘여성’의 자원과 기회를 앗아가는 가해자-남성으로 그려진다. 인권 역시도 총량이 정해져 있는 파이 싸움으로 보기 때문에, 여성이 아닌 다른 소수자의 권리 증진을 여성 인권의 후퇴로 받아들인다. ‘여성’들끼리만 뭉쳐서 여성 인권의 향상만을 요구하는 것이 진정 여성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이에 따라 랟펨은 여성 외에는 다른 어떤 약자나 소수자와도 연대하지 않겠다는 ‘여성 우선’의 정치로 나아간다.


이러한 랟펨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기도 한다. “이 페미니즘은 스스로 ‘래디컬’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거기에는 (엄격한 탈코르셋과 4비를 주장하는) 급진주의와 (정계와 재계 등의 ‘자리’라는 파이를 나누려는) 자유주의, (여성의 ‘권익’을 위해 설립된 여대에 ‘페미사이드 공포도 겪지 않은’ 트랜스젠더가 진입하겠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공정성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적 부족주의 등이 공존한다. 이 입장의 차이는 불화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을 때 불화 없이 공존할 수 있다.”8*


[1*] 김보명(2020), <급진 페미니즘의 과거와 현재>, 《문화과학》, 104, 78.

[2*] 김보명(2018), <급진 페미니즘>, 《여/성이론》, 39, 168.

[3*] 김보명(2018), 위의 글, 176.

[4*] 김보명(2020), 위의 글, 84.

[5*] 김보명(2024), <트랜스젠더배제적 급진페미니즘의 ‘젠더’ 정치학에 대한 소고>, 《한국여성학》, 40(4), 119.

[6*] 엄혜진(2025), <신자유주의와 페미니즘의 분열적 결속: 페미니즘의 신자유주의 비판 쟁점들과 함의>, 《한국여성학》, 41(1), 69.

[7*] 임경희(2024), <신자유주의와 평등 그리고 페미니즘 내 정체성 정치>, 《현대사상》, 31, 103.

[8*] 권김현영 외(2020),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서울: 휴머니스트, 53.



2) 여성들은 왜 랟펨이 될까?

랟펨은 트랜스배제적, 신자유주의적 특징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지만, 비판이 계속되어도 꾸준하게 새로 생겨난다. 왜일까? 표면적인 원인은 SNS에서의 페미니즘 논의가 주로 랟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더욱 심해지면서, 오프라인에서의 페미니즘 논의는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너 페미야?”라는 공격적인 질문이 당연하다는 듯 오가는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란 어렵다. 결국 성차별적인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많은 페미니스트는 SNS에서 랟펨이 주도하는 논의를 가장 먼저 접하게 된다.


그렇다면 SNS에서의 수많은 랟펨들은 다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앞서 살펴보았듯 랟펨은 정상과 성공, 생존에 대한 욕망을 자기 계발, 공정 감각으로 드러내며 ‘여성 우선’의 정치로 나아갔고, 동시에 성차별 구조의 피해자로서 ‘생물학적 여성’들만이 겪는 피해의 경험을 중시한다. 여성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피해의 경험은 성별임금격차와 같은 경제적 불평등,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 등 다양하지만,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물리적 폭력’이 랟펨들 사이에서 주되게 공유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젠더기반폭력에 집중하여 랟펨의 발생을 살펴보고자 한다.


젠더기반폭력(Gender Based Violence, GBV)은 여성과 남성 간에 사회적으로 할당된 성적 차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의지에 반하여 행해지는 폭력을 일컫는 포괄적 용어로, 가정폭력, 성폭력, 성적 착취, 강요된 성매매, 인신매매, 성희롱, 성기 절단, 지참금 살인, 전쟁 무기로서의 강간 등 여성에 대한 모든 종류의 물리적, 성적, 언어적 폭력을 포함한다.9* 1993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여성폭력철폐선언」에서는 여성폭력을 젠더기반폭력으로 정의하고, 여성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이 역사적으로 지속된 남성과 여성 간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있으며 여성폭력이 가해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성별 이분법에 근거한 사회질서와 구조의 문제임을 명시한다.10* 특히 최근에는 유해한 특권적 남성성을 바탕으로 여성을 비인격화하여 성적 도구로 대하는 인셀 문화가 퍼져나감에 따라, 젠더기반폭력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11°


여성혐오살인을 포함한 젠더기반폭력의 개념이 대중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계기는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은 2016년 5월 17일 새벽, 강남역 인근 주점 건물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일면식 없는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다. 가해자는 화장실에 들어왔던 남성 6명은 그냥 보낸 뒤 다음에 들어온 여성을 살해했고, 조사 과정에서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에 ‘여자라서 죽었다’는 공통된 경험과 분노가 여성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랟펨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계기점 역시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다. 여성들은 젠더기반폭력을 비롯하여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온 수많은 차별에 분노했고, 그에 힘입어 결집했다. 여성으로서의 피해 경험에 기반한 집합행동의 가능성을 보였다.12*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로도 수많은 젠더기반폭력과 불법촬영 문제를 거치며 여성은 계속해서 피해 경험을 중심으로 모이고 또 성장해 왔다. 같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공포감, 일상적으로 피해를 경험한다는 불안감은 여성들 사이에서 내적 동질성을 만들어냈다. 여성들은 이 동질적인 피해자성을 바탕으로 “대중의 일원이 되면서 자아를 확장하고 강화하는 경험”13*을 했다. 이때 ‘여성’이 겪는 폭력은 젠더화된 몸으로써 여성이 겪는 폭력이 아니라,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동질적 신체로써 겪는 폭력으로 환원되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벌써 9년이 지났지만 젠더기반폭력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2024년 여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14*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여성 약 3명 중 1명은 평생 여성폭력 피해를 한 번 이상 경험했다. 평생 신체적 폭력, 성적 폭력, 정서적 폭력, 경제적 폭력, 스토킹 피해를 한 번 이상 경험했다고 응답한 여성의 비율이 전체의 36.1%에 해당했다. 이 중 스토킹을 제외한 5개 유형의 피해 경험률은 35.8%, 신체적 폭력과 성적 폭력의 피해 경험률은 28.8%였다. 한국여성의전화의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보고서15*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는 최소 181명, 살인미수를 포함하면 555명이고,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는 2024년 1년간 187명이었다. 합치면 길어도 11.8시간마다 1명꼴로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혹은 살인미수가 일어나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경우를 포함하면 더 많을 것이다.


지난 9월 17일 제주시에는 20대 남성이 20대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 여성이 2022년 9월부터 이미 5차례나 교제 폭력을 신고했음에도 끝내 교제살인이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전에도 9월 16일 용인에서, 9월 11일 인천에서, 9월 5일 거제에서, 9월 4일 서울 중구에서, 그리고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곳에서 많은 여성들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되었다.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폭력은 끊이지도 해결되지도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 스토킹으로, 폭행으로 신고해도 피해자가 죽지 않으면 다시 가해자를 내보내는 미미한 처벌, 그리고 미미한 처벌이 가능하게 하는 사회 전반의 안일한 대응은 여성들로 하여금 젠더기반폭력의 존재를 매 순간 실감하게 한다.


이처럼 젠더기반폭력이 해결되지 않은 채 여성들의 일상을 계속해서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들은 ‘생물학적 여성’들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게 된다. 너의 권리보다 나의 안전이, 너의 존재보다 나의 생명이 중요해진다. 시시각각으로 느껴지는 젠더기반폭력의 존재는 여성들이 다른 소수자에 대해 논의할 틈 없이 오로지 ‘여성’의 문제에만 골몰하게 만든다. 결국 반복되는 젠더기반폭력은 여성들을 직접 해치는 것에 더해 페미니즘이 새로운 논의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랟펨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랟펨이 되기란 너무 쉽다. 어떤 여성들은 사회경제적, 문화적인 차별의 구조에서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랟펨이 된다. 어떤 여성들은 넘쳐나는 여성폭력과 살해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랟펨이 된다.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경제적 지위와 끝없이 이어지는 여성폭력, 그에 더해 정도를 모르고 심해지는 페미니즘 백래시까지, 여성들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는 너무나도 많다. 이러한 현실에서 랟펨은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9*] 김양희(2013), <젠더기반폭력에 대한 이해와 사례 연구>, 《한국국제협력단 연구보고서》, 4.

[10*] 김효정(2024), <젠더기반폭력으로서 친밀 관계 폭력의 개념에 대한 고찰과 향후 과제>, 《이화젠더법학》, 16(1), 131.

[11°] 이 내용에 대해서는 석순 63집의 특집 글 <인셀: 폭력이 권리가 되다>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12*] 김보명(2024), 위의 글, 110.

[13*] 권김현영(2020),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서울: 휴머니스트, 184.

[14*] 여성가족부(2025), “2024년 여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 2025.05.12., 보고서.

[15*] 한국여성의전화(2025), “2024년 분노의 게이지: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 및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2025.03.07.



3) 그럼에도 랟펨에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랟펨의 논리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다른 소수자를 배제하면서 여성의 해방만을 이룰 수는 없으며, 랟펨의 내적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른 소수자를 배제하면 안 된다는 당위로서의 접근은 그 자체로 자명할 뿐만 아니라 이미 충분히 논의되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랟펨의 내적 한계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랟펨의 내적 한계는 ‘생물학적 성별’ 논리의 문제와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학으로부터 나온다.


랟펨이 받는 가장 주요하고 흔한 비판은 이들이 트랜스배제적이라는 데에 있다. 랟펨들이 트랜스여성의 ‘생물학적 성별’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남성이라고 지칭할 때, 트랜스여성이 사회적인 여성성을 수행한다는 이유로 ‘반여성적’이라고 규정할 때, 트랜스젠더 정체성에 수반되는 낙인이나 혼란, 트랜스여성들이 하는 여성성 수행의 심리적·사회문화적·정치적 의미는 무시된다.16* ‘생물학적 여성’이 겪는 차별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사회적 소수자인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차별을 손쉽게 지우는 것이다.


랟펨들이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면서 이용하는 ‘생물학적 성별’의 논리 역시 문제가 있다. 랟펨의 논리에서 ‘생물학적 성별’은 여성과 남성,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는 기준으로 사용되지만, 사실 ‘생물학적 성별’은 모든 사람을 구분해 낼 수 있을 만큼 자명한 범주가 아니다. 그저 그렇게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정말로 자신 혹은 타인의 ‘생물학적 성별’을 알고 있는가? 신체적 특성이 여성이라고 해서 나의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염색체 검사를 해본 적이 없는데, 내가 XX 염색체를 지녔고, 그렇기 때문에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최근 몇 년간 육상계에서는 성별 검증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져 왔다. 세계육상연맹에서는 2019년부터 테스토스테론 검사를 통해 성별을 검증해 왔다. 올해 9월부터는 SRY검사, 즉 Y염색체에 위치한 성 결정 유전자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를 통해서 성별을 검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물학적’으로 성별을 검사한 결과, 아프리카 여성 선수들이 경기장 밖으로 내몰렸다. 테스토스테론 검사와 유전자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여성 선수들이 생겨난 것이다. 케냐의 막시밀라 이말리 선수는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자랐는데 왜 약을 먹고 수술해야 하느냐”17*라고 반문했다. 이는 XY 염색체를 갖고 있어도 여성으로 발달하는 성 분화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한 결과이다. 세계육상연맹의 ‘생물학적 성별 검증’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생물학적 성별’이란 명확히 여성과 남성 두 범주로 나눌 수 없을뿐더러, 그 누구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생물학적 성별은 단지 “누구도 모르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는 바로 그 인식을 통해 지배 규범으로 작동”18*하며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배제할 뿐이다.


또한 설령 모든 사람이 자신의 염색체를 검사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생물학적 성별’은 그 자체로는 그저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랟펨은 그 차이에 의미를 부여해서, ‘생물학적 성별’의 이분법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를 지우고, “어찌 됐든 당신의 생물학적 성별은 남성”이라며 트랜스여성의 경험과 맥락을 무시한다. 랟펨이 ‘생물학적 성별’을 기준으로 네 편과 내 편을 가를 때, 차이는 비로소 차별의 근거가 된다. 결국 ‘생물학적 성별’을 이유로 트랜스여성을 배제하는 논리는, 성차별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차이에 근거한 차별에 동의하는 모순을 가져온다.


랟펨의 또 다른 한계는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학과 연결된다. 앞서 살펴보았듯, 랟펨은 신자유주의적 성격에 따라 ‘여성 우선’의 정치로 나아갔고, 이 과정에서 ‘생물학적 여성’들이 겪어온 성차별의 피해, 폭력과 안전에 관한 피해에 집중했다. 이때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내부적 단결보다는 외부와의 차이, 즉 트랜스여성과의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성립한다. 랟펨은 트랜스여성과 시스젠더여성 사이에 선을 그을 때 피해자 정체성을 이용한다. 트랜스여성은 생물학적 남성이기에 여성들의 공간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할 때, 랟펨은 트랜스여성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안전의 문제로 프레이밍하고 정당화한다.19* 여성들이 겪는 피해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트랜스여성에게 돌리는 것은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직시하지 못한 채 ‘생물학적 성별’로만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또한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학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피해에만 매몰되면, 피해는 해결해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자원이나 사회적인 위치가 된다.20* 피해를 어떻게 증명할지, 누가 진정한 피해자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피해자의 자리를 두고 경쟁이 벌어진다. 이 경쟁에서 트랜스남성(FTM)은 가부장제 질서를 우회하려는 기회주의자로, 트랜스여성(MTF)은 날 때부터 성차별을 겪지 않은 ‘가짜 피해자’로 인식된다. 생물학적 본질주의에 기반해서 트랜스젠더는 피해자가 아니며 ‘생물학적 여성’만이 진짜 피해자라고 주장할 때, 여성들은 피해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 안에 갇힌다. 이러한 주장은 여성을 피해자로만 여기지 않게 싸워온 지금까지의 페미니즘과 정면으로 부딪친다.


랟펨은 당장은 매력적일지 몰라도 멀리 꿈꿀 수 있는 페미니즘은 아니다. 랟펨이 지닌 트랜스배제적인 성격, 그리고 랟펨이 활용하는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학은 여성들을 해방하지 못하고 되레 가부장제 안에 가둔다. 그렇게 랟펨은 가부장제의 근본적 해체를 꿈꾸는 래디컬 페미니즘으로부터, 그러니까 그 본래의 출발로부터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가부장제는 이성애 이원젠더체계를 토대로 여성을 동질하고 단일하고 획일한 형태의 범주로 만드는 작업을 통해 작동한다.”21*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생물학적 본질주의에 따라 여성 범주를 제한하고 그 범주에 새로운 특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 범주를 다시 묻고 재구성하는 일, 그리하여 더 넓은 범주의 여성들과 연대하여 함께하는 일이다.


[16*] 김보명(2020), 위의 글, 86.

[17*] 경향신문(2025), “”나는 여자로 태어났다”…CNN, 경기장 밖으로 밀려나는 아프리카 선수들 조명”, 2025.09.21.

[18*] 전혜은 외(2018),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서울: 여이연, 106.

[19*] 김보명(2024), 위의 글, 113.

[20*] 권김현영 외(2020), 위의 책, 39-40.

[21*] 전혜은 외(2018), 위의 책, 109-110.




2. 우파페미?

현재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을 둘러싼 또 다른 단어는 ‘우파페미’이다. ‘우파’와 ‘페미’라니, 두 단어의 조합은 매우 낯설고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우파페미’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윤석열 탄핵 국면 이후 ‘우파페미’에 대한 언급이 크게 늘었고, 특히 X(구 트위터)에서는 ‘우파페미’가 들어간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너는 우파페미다!”라고 비난하거나 “내가 우파페미다!”라고 주장하는 혼란스러운 틈새를 비집어, 도대체 우파페미가 무엇이고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22°


[22°] 정치 이념상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중도우파에, 국민의힘은 극우에 가깝다. 다만 ‘우파페미’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 ‘우파’란 국민의힘을 칭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우파’라는 단어를 국민의힘을 칭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1) 가짜 우파페미: “너는 우파페미다!”

우파페미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경우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을 때, 첫 번째는 ‘타칭 우파페미’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민주당을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을 비난할 때 주로 사용한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곧 국민의힘을 돕는 일이며, 따라서 민주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국민의힘의 지지자, 우파라고 본다. 이 기준에 따르면 나도 우파페미이고,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 역시 우파페미이다. 추구미가 빨갱이페미인 나에게는 억울함을 넘어 치욕스러운 호칭이다.


‘가짜 우파페미’에 대한 비난은 두 가지를 전제로 한다. 첫째, 대한민국에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제외하고는 어떤 정당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민주당은 좌파이고 여성의제를 진보적으로 다룬다. 첫 번째 전제는 정당의 존재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분명히 틀린 말이지만, 투표 결과를 보면 마냥 틀렸다고 하기에는 어렵다. 대선에서든 총선에서든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전제가 중요해진다. 민주당은 좌파인가? 여성의제를 진보적으로 다루나?


지난 9월 16일 이재명정부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비전으로 123대 국정과제23*를 확정하였다. 5가지 국정목표 중 네 번째인 ‘기본이 튼튼한 사회’에는 ‘내 삶에 기회를 여는 성평등’이라는 추진전략이 포함되었다. 이 추진전략에는 [국정97: 기회와 권리가 보장되는 성평등 사회], [국정98: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 보장]의 두 가지 세부 국정과제가 담겨 있다. [국정97]의 주요 내용은 성평등 거버넌스 강화, 성평등한 일터 조성, 여성 경제활동 지원 강화이다. 성평등정책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해 성평등 체감도를 높이겠다는 과제목표에 따라, 여성가족부의 기능을 강화하여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국정98]의 주요 내용은 디지털 성범죄 강력 대응,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확대, 성·재생산 건강권 보장, ‘위안부’ 피해자 존엄 회복이다. 특히 여성계의 오랜 요구인 임신 중지 약물의 도입이나 교제폭력 관련 대응책이 포함되어 있다. 성평등을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세부과제로 여성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책을 세웠다는 점에서는 이재명정부의 여성정책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특히 2년 반 내내 여성가족부 폐지를 무기처럼 들고나오던 윤석열정부보다는 훨씬 더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국정과제에 성평등이 명시되었다 하더라도 이 정부가 페미니즘적 관점을 지녔는지는 의심스럽다. “남녀가 편을 지어 다툰”다거나 “괜히 여자가 남자를 미워한다”24*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재명정부는 성차별을 남성과 여성 개개인의 감정적 갈등으로 인식한다. 이재명정부에는 성차별이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라는 인식 자체가 부재한 것이다. [국정97]의 핵심 내용인 성평등가족부로의 확대 역시 성차별을 개개인의 갈등으로 치부한 결과이다. 만약 ‘여성가족부’가 비남성 중 여성이 아닌 사람들을 포괄할 수 없기에 ‘성평등가족부’로 확대한 것이라면, 이는 환영할 만한 변화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난 7월 10일 열린 제25차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여성가족부는 이름에 ‘여성’이 붙어 있으니까 이대남(20대 남성)들이 무지하게 싫어하는 정쟁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며 “여성정책을 주로 하시겠지만 남성차별을 연구하고 대책을 만들”25*라고 여성가족부 차관에 주문했다. 남성과 여성의 피해를 대칭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성차별을 남녀의 ‘젠더갈등’으로 바라보는, ‘남성 역차별 담론’을 그대로 받아들인 지시이다.


성차별을 지우려는 시도는 윤석열 탄핵 직후부터 이미 예상되었던 행보이다. 탄핵 선고 이후 고작 일주일만인 4월 11일, 이재명은 “2030여성 유권자를 위한 비전은 어떻게 구성하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빛의 혁명 과정에는 모든 국민이 함께 했다”26*며 광장의 주역이었던 2030여성들을 지웠다. 대선 공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이재명은 5월 6일 청년 정책을 발표하면서 “왜 자꾸 남성, 여성을 가르냐,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27*이라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5월 12일 발표된 10대 공약에는 여성 정책이 포함되지 않았고, 대신 ‘군복무 경력 호봉 반영 공약’이 발표되었다. 군 가산점제 부활에 항의하는 여성 유권자에게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에게는 출산 가산점이 있을 것”28*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여성을 가임 가능성이 있는 신체로만 바라보는 낡은 성차별적 시각은 민주당 내 성평등 관점의 부재를 또 한 번 보여주었다.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해 3월 총선을 앞두고 총선 10대 정책 공약에 비동의 강간죄 도입이 포함된 것은 “실무적 착오”라며29*, 남성층의 표심을 고려해 공약을 철회했다. 또한 8월 31일, 최강욱 당시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은 조국혁신당의 당내 성폭력 피해자에 2차 가해성 발언을 했고 결국 ‘당원 자격 정지 1년’의 징계를 받았다. 심지어 최강욱의 징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23년 11월에는 여성 비하로, 2022년 4월에는 성희롱성 발언으로 징계받은 바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강욱의 언행에 대해 민주당을 대표해 사과했지만, 애초에 최강욱을 교육연수원장에 임명한 것 역시 정청래였다. 성차별적인 언행을 이미 두 번이나 반복한 인사를 교육연수원장 자리에 앉히고 당원 교육을 총괄하게 했던 것이다. 최강욱의 임명과 그에 따른 징계는 민주당이 여성 의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재명정부와 민주당은 윤석열정부보다는 나은 여성정책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재명정부에게서 성차별을 해결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들을 지우고 성차별을 지우면서 남성과 여성이 ‘사이좋게 잘 지내기’를 목표로 하는 정책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재명정부는 페미니즘 정부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민주당을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우파페미’라고 불릴 수 없는 이유이다.


[23*]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2025), “123대 국정과제”, 2025.08.13., 보도자료.

[24*] 프레시안(2025), "성차별을 '갈등'으로 본 李대통령… "남녀가 편을 지어 다툰다"", 2025.9.19.

[25*] 여성신문(2025), “이재명 대통령 여가부에 “남성 차별도 대책 만들라” 주문”, 2025.07.16.

[26*] 여성신문(2025), “2030여성이 주도한 광장? 국민 모두 함께해”, 2025.04.11.

[27°] 교제폭력 처벌 강화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었으나 이 폭력이 성차별적 구조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라는 관점은 부재하다. 또한 ‘여성’이라는 단어의 언급 자체를 피한 것으로 보인다.

[28*] 경향신문(2025), “여성 의제 없이 ‘출산 가산점 검토’?···”졸속정책, ‘받아놓은 표’ 취급””, 2025.05.13.

[29*] 경향신문 플랫(2024), “’비동의 강간죄 도입’ 공약이 “실무적 착오”라고 해명한 민주당”, 2024.03.27.



2) 진짜(?) 우파페미: “그래 나는 우파페미다!”

우파페미가 사용되는 첫 번째 경우가 타칭 우파페미, 가짜 우파페미라면, 두 번째 경우는 ‘진짜 우파페미’이다. 자신을 ‘우파페미’라고 칭하거나, 직접 칭하지는 않더라도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우파(해당 표현에 한해서는 국민의힘)를 지지하는 경우이다. 이 ‘진짜 우파페미’들은 성차별의 구조적 측면에서 눈을 돌린 채, 여성 개개인의 성공만을 중시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 우파페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작전계’ 소동과 연관이 있다. 윤석열 탄핵이 결정되고 난 이후부터, X에서 페미니즘 관련 이슈를 모아서 게시하던 일명 ‘페미 스피커’ 계정 몇 개가 국민의힘의 지지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계정이라는 의심이 시작되었다. 내가 주목했던 지점은 이 계정들이 실제로 국민의힘의 작전계인지 여부가 아니라, ‘우파 지지’를 요구하는 이 계정의 일부 게시글이 꽤 많은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다. 설령 ‘페미 스피커’ 계정들이 작전계일지라도, 그에 동조하는 모든 계정이 작전계일 리는 없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칭하면서도 우파의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30°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페미니즘’과,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우파’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에 ‘우파페미’라는 단어의 존재 자체가 의아하다. 거부감이 들고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파페미라는 존재 자체가 낯선 것은 아니다. 박근혜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박근혜의 복권을 주장하고, 나경원과 배현진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무조건 지지하는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계속 존재했었다. 어쩌면 이들 역시도 국민의힘이 ‘작전’으로 꾸며낸 지지자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논리에 설득되는 여성들이 꾸준하게 생겨난다는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우파페미의 ‘등장’이 아니라, ‘여성에게는 우파여도 상관없고 오로지 여성 개인이 잘 사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흐름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개별 여성이 잘 사는 것은 페미니즘의 해답이 될 수 없다. 박근혜와, 박근혜를 지지하던 우파페미를 통해서 이를 알 수 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는 내내, 우파페미는 박근혜가 여성이기 때문에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가 파면된 이후에는 워마드가 박근혜의 석방과 복권을 요구하는 광고를 뉴욕 타임스퀘어에 내걸기도 했다.31* 우파페미에게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배경, 재임 기간 저지른 비리와 폭력 등 상세한 맥락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여성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 그러면 여성인 자신도 잘 살 수 있다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우파페미의 어긋난 기대를 박근혜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정확히 이용했다. 박근혜는 후보 시절부터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여성’이라는 기호를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여성을 위한 대통령이 아니었다. 오히려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을 내세운, 남성 중심 정치 구조의 수혜자였다. 박근혜에게 ‘페미니즘’은 권력에 다가가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이처럼 우파 여성 정치인들은 성차별을 없애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재생산한다. 따라서 그 여성 정치인들을 옹호하면서 여성 개개인의 성공에만 매몰되는 우파페미가 페미니스트일 리 없다.


흥미로운 점은 랟펨과 우파페미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앞서 작전계 의혹을 받는 페미 스피커 계정들은 생물학적 본질주의와 여성 우선 페미니즘을 주장하며 트랜스젠더를 노골적으로 배제하는 대표적인 랟펨 계정들이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트랜스젠더를 위한 법이기에 여성 인권과 페미니즘에 배치된다고 보고32*,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진보정당들은 여성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며 비난한다. 이러한 페미 스피커 계정들은 교묘하게 ‘가짜 우파페미’, 랟펨, ‘진짜 우파페미’의 사이에 놓여 있다. 이들이 민주당을 비판하고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인지, 차별금지법에 동의하지 않는 정치인을 찾는 것인지, 혹은 민주당을 너무 많이 비판한 나머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랟펨과 우파페미는 그렇게 한 끗 차이에 놓여 있다. 생물학적 본질주의에 기반해 여성만을 우선적이고 배타적으로 고려하는 랟펨은, 여성 개개인이 잘 산다면 우파여도 상관없다는 우파페미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33°


여성‘들’끼리 같이 잘 살자고 주장하는 랟펨과, 여성인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우파페미. 전혀 달라 보이는 둘은 교묘하게 겹친다.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랟펨이, 왜 성차별을 묵인하는 우파페미와 가까워졌을까? 어쩌면 변화에 대한 기대 없이, 실망만 쌓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최근 (적어도 국민의힘보다는) 진보적이기를 주장하는 두 개의 당에서 연달아 당내 성폭력 사건이 터져 나왔다. 7월에는 진보당의 당내 성폭력 사건이, 9월에는 조국혁신당에서의 성폭행과 2차 가해가 밝혀졌다. 조국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은 탈당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정의는 왜 이렇게 더디고, 불의는 왜 이렇게 신속합니까?”34* 그의 말대로 사회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그사이 차별과 폭력은 자꾸만 반복된다. 진보적이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조차도 페미니즘과 여성 의제는 등한시하는 현실, 그 현실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진보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 회의와 허무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차별과 혐오, 개인주의는 그 틈새를 파고든다. 진보도 보수도 기대할 수 없으니 변화 같은 건 꿈꾸지 말고 당장 너의 이익만을 생각하라고, 세상이 어떻게 되든 너만 잘 살면 되는 것 아니냐고 회유한다. 랟펨은 바로 그 지점에서 우파페미와 만난다.


[30°]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편의상 이 ‘진짜 우파페미’들,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우파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로써 ‘우파페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31*] 한겨레(2019), “뉴욕 타임스퀘어에 박근혜 실루엣 ‘워마드 광고’…석방 요구?”, 2019.05.07.

[32*] 이효민(2020), <래디컬 페미니즘의 급진성에 대한 검토>, 《문화과학》, 104, 233.

[33°] 그럼에도 랟펨과 우파페미에는 차이점이 있다. 랟펨은 여성의 성공을 중시하면서도 그 성공을 통해 구조적 차별을 해결하고자 하는 모순적인 특성을 보인다. 랟펨이 말하는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 집단 전체에 가깝다. 반면 우파페미는 구조적 차별 자체를 외면한 채 여성 개개인의 성공만을 바란다.

[34*] 한겨레21(2025), “조국혁신당 성폭력 대응 실패, 왜?”, 2025.09.11.




3. 나가며: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지금 한국의 페미니즘을 둘러싼 두 개의 단어, ‘랟펨’과 ‘우파페미’에 대해서 차례로 살펴보았다. 여전히, 랟펨과 우파페미 둘 다에 동의할 수 없다. 랟펨은 성평등을 꿈꾸기엔 한계가 너무나도 명확한 페미니즘이다. 우파페미는 성차별을 외면하고 되레 이용하기에 페미니즘조차 아니다. 이도저도 대안이 될 수 없다면, 나는 어떤 페미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 답을 최대한 많은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찾고 싶다. 대안은 이미 이 페미니즘’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랟펨에게는 ‘우리’의 결속력을 지킬 능력이 이미 있다. 외부와의 차이점으로 ‘우리’를 구성하는 게 아니라 함께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는 공통점으로 ‘우리’를 구성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의 기준을 바꾸어나가면 된다. 그렇게 조금씩 외연을 넓혀가다 보면, 함께하는 일은 사실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께 꾸려나가는 페미니즘은 지금보다 한발 더 나아갈 것이고, 딱 그만큼 더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차별도 단호하게 끊어낼 페미니즘, 여성 우선 정치의 현혹으로 빠지지 않을 페미니즘, 진보를 주장하면서도 성평등 면으로는 전혀 진보적이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바꿔나갈 페미니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많이 부딪치고 깨지고 싸워야 할 것이다. 반복되는 여성폭력 사건마다, 번번이 뒤로 밀리는 여성 의제마다 또 실망할 것이다. 가끔은 괜한 억울함이 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다. 페미니즘을, 여성으로서 잘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이 세상을 포기할 수 없다. 그 무엇에도 대안이 없다면, 대안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랟펨도 우파페미도 아닌 페미니스트로서, 그리고 랟펨과 우파페미 모두를 이해하지만 동의할 수는 없는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까지도 바꾸어야 할 과제를 부여받은 것이다.


또 실망하고 또 좌절할 것이다. 또 회의감과 허무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가끔씩, 달게 환희할 날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나아간다.





참고문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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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은 외(2018).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서울: 여이연.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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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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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플랫(2024). “’비동의 강간죄 도입’ 공약이 “실무적 착오”라고 해명한 민주당”. 2024.03.27.

여성신문(2025). “2030여성이 주도한 광장? 국민 모두 함께해”. 2025.04.11.

여성신문(2025). “이재명 대통령 여가부에 “남성 차별도 대책 만들라” 주문”. 2025.07.16.

프레시안(2025). "성차별을 '갈등'으로 본 李대통령… "남녀가 편을 지어 다툰다"". 2025.09.19.

한겨레(2019). “뉴욕 타임스퀘어에 박근혜 실루엣 ‘워마드 광고’…석방 요구?”. 2019.05.07.

한겨레21(2025). “조국혁신당 성폭력 대응 실패, 왜?”. 2025.09.11.


<기타>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2025). “123대 국정과제”. 2025.08.13. 보도자료.

여성가족부(2025). “2024년 여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 2025.05.12. 보고서.

한국여성의전화(2025). “2024년 분노의 게이지: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 및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202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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