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짐승녀

by 석순

마감 직전에 잠시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영화를 세 개 봤는데, 극한 일정에 역시나 숙면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제정신으로 관람한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세네갈-프랑스 여성 감독 마티 디옵의 <다호메이Dahomey(2024)>라는 영화입니다. 2021년 프랑스가 과거 식민 지배한 다호메이 왕국(현 베냉)에서 약탈해 온 유물 중 몇 가지를 반환하였는데 그 과정의 일부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약 7천 점의 약탈된 유물 중 겨우 26점. 그중 26번 유물의 말이 프랑스어가 아닌 베냉 토착어로 관객에게 들려옵니다. "나는 아름답고 합법적인 희생자다." 아름답고 합법적인 희생자. 그렇다면 그렇지 않은 희생에는 어떤 이름을 붙이는지. 아름답지 않고 비합법적이기 때문에 불리지 못하는 희생은 어디에 있는지. 그날 밤 기절하듯이 잠들고, 이튿날 아침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처음 드러났을 때 아, 써야 한다. 별다른 뜻 없이 그냥, 써야겠구나, 이 생각만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딥페이크 성범죄는 이번 호의 글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특집이라는 말머리를 붙이고, 표지에 박아 버렸습니다. 그럴 만하니까요. 그런데 문득 만약 내가 석순이 아니었다면, 여성주의 교지 편집위원이 아니었다면, 이 문제를 글감이라는 대상으로 바라보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감이 되는 순간 그건 쓸 만한 대상이 되어 버립니다. 아니, 이건 써야 하는 이야기가 맞습니다. 우리는 페미니즘 교지니까요.


그런데 써져야 하는 이야기는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매번 석순을 펴내며 답을 찾지 못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교지가 뭐지? 누가 읽고 있지? 우리는 무슨 글을 써야 하지? 지난 62호를 마감하고 난 후 다른 웹진에 기고를 빌려 저만의 편집후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덜 주저하는 손가락으로, 써야 할 글을 써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고민은 아마 석순 모든 호에 조금씩은 묻어 있습니다. 이번 63호도 나름의 답을 내놓았습니다. 점점 더 나빠질 것만 같은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그래서 이렇게 글을 써 남아 있기를 택했다는 처음과 혜민의 목소리를 통해서요. 그리고 그러한 63호의 다짐에 공명하는 편지 하나가 미국에서 날아왔습니다. 62호에 함께했던 애벌레는 지금 새로운 곳에 정착 중입니다. 그곳에서 석순에게, 한국에게, 여러분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쓴 편지입니다. 모두의 마음 한편에 잘 도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63호 표지는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흑백을 사용했습니다. 알록달록 색감을 좋아하는 석수니들에게는 정말 결단이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흑백은 전혀 단순하지 않습니다. 흑백은 말 그대로 결단이니까요. 세상에 흑백처럼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집니다. 나는 나를 아름답고 합법적으로 만들어 주는 기준선 안에 살고 있습니다. <다호메이>처럼 좋은 영화를 보게 해준 영화제는 자원활동가의 무급 노동에 빚져 돌아가고, 이스라엘 프로파간다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영화가 좋고, 영화제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순을 발견하는 순간들은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초록은 페미니스트 여성으로서 남성과 교제할 때 느꼈던 자기 안의 위화를 선명한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짐승녀는 영원히 '탈케'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애써 이해해 보기 위해 케이팝 음모론에 가까운 글을 써냈고요. 결국 똑같이 사랑을 고민하는 두 사람의 글이 여러분을 또 다른 모순 속에 남겨둘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 확신할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들더라도 석수니들에게 딱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것은 바로 마감 기한입니다. 기한을 잘 지킵시다. 석순이 무사히 인쇄되어야 하니까요. 무사히 인쇄되어서 우리의 글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학교 여기저기서 살아가고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써져야 할 이야기는 정말 많으니까요. 매번 처음처럼 난기류에 애를 먹더라도 우리는 무사히 불시착륙해서 몇 번이고 인사를 건넬 겁니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여성주의 교지 석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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