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에 복기해 보는 아내의 세월 -
내 삶의 모든 순간에는 늘 아내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이제야 그 고마움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이자, 군인의 아내로 전국을 떠도는 유랑이었다. 경기 용인을 시작으로 가평, 춘천, 영천, 경산, 부산, 대전, 원주, 그리고 서울까지. 여덟 차례 이사하는 동안,
세간살이는 멍이 들대로 들었고, 아이들은 잦은 이사로 친구를 사귈 틈도 없었다. 아내는 진작에 승진도 포기해야 했다. 평교사로 정년을 맞던 날, 아내의 뒷모습이 그 어떤 무거운 직함보다 빛나 보였다.
주말부부 시절, 아내는 늘 아이들을 태우고 내 근무지로 달려왔다. 차 안에는 갓 만든 반찬과 반듯이 빨래한 세탁물이 가득했다. 내가 생선조림을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냄비째 조림을 해오곤 했다.
국물이 새지 않도록 뚜껑을 고무줄로 단단히 묶은 채, 덜컹거리는 시골길을 운전하는 아내의 냄비에는 사랑 그 이상, 지독한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
대전 근무 시절, 아내가 짐을 싣고 상경하다가 폭설로 인하여 중부고속도로에서 6중 추돌 사고를 당했다. 대형 트럭과 충돌한 티코(소형승용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충주 폐차장으로 견인된 티코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철 덩어리였다. 그 속에서 운전석만 멀쩡했던 건 기적이었다. 만약 그날 아이들이 뒷좌석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조차 아찔해 우리는 이 일을 오래도록 함구했다.
얘들아, 만약 이 글을 본다면 기억해라. 너희는 어머니가 죽음의 문턱에서 바꿔온 두 번째 인생으로 자라난 것이다.
아내는 내 인생의 단단한 뿌리다. 그 뿌리가 깊었기에 나는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인생 현역’으로 살아올 수 있었으며, 이제는 고생으로 채웠던 시간들을 조금씩은 비워내고 싶다.
멀리 가지 않아도 좋고, 대단한 계획이 없어도 좋다. 아프지 않고, 서로의 속도를 맞추며 걷는 날들이면 충분하다.
이 만큼 살아보니 이제야 조금은 철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가정(家庭)을 지탱한 것은 거창한 행복이 아니라 서로 한 번 더 이해하려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큰 이벤트 한 번보다 저녁상 앞의 짧은 대화 한 번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다가오는 명절에도 특별한 바람은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온 시간들이 서로에게 작은 위로가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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