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뜨거웠지만...

베이비부머 필살기 (9) - 사람이 사라진 자리의 온기

by 늘푸른 노병


세상이 빠르게 그리고 조금씩 삭막하게 변해가는 듯하다.


며칠 전 '천등산'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가려다 낯선 광경 앞에 멈춰 섰다.


카페에는 사람은 인기척 없고

차가운 기계실 같은 공간에 팔만 있는 바리스타, 커피 로봇만 분주했다.


그 자리에는 차가운 금속 팔을 가진 로봇 한 대가 기계적인 소리를 내며 서 있을 뿐.

주문을 마쳐도 끝이 아니었다.


종이로 나온 바코드를 기계 눈에 정확히 읽혀야만 로봇이 커피를 내어준다.


로봇 커피 머신


작은 창문 너머로 로봇 팔이 컵을 건네는 순간, 나는 고맙다는 말 대신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기계와 나 사이, 그 짧은 거리에는 온기 한 점 없는 적막만이 가득했다.


예전의 휴게소 카페는 달랐다. "설탕은 빼주세요"라는 작은 부탁에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하던 그 눈 맞춤이 있었다.


뜨거운 커피 한 잔에 담긴 것은 카페인만이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난 사람끼리 나누던 무언의 위로였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그 번거로운 온기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걷어내고 있다. 바코드를 읽히지 못하면 커피 한 잔조차 허락되지 않는 세상.


기계가 설계한 궤도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면 나는 금세 이방인이 되고 만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편리함일지 모르나, 그 대가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


로봇이 내어준 커피는 뜨거웠지만, 그것을 쥔 내 손바닥에는 왠지 모를 한기가 서렸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의 냄새가 그립다. 기계의 정확함보다 투박한 손길이 전해주는 온기를 믿고 살아온 세대다.


세상이 아무리 로봇의 팔로 커피를 건네온다 해도, 그 안에서 끝내 사람이 지켜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나는 자꾸만 되묻게 된다.


그저 바코드 하나에 내 기호가 결정되고 로봇 팔에 내 휴식이 맡겨지는 이 풍경이 낯설고 무서울 뿐이다. 삭막함까지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이 차가운 삭막함을 뚫고 커피 한 잔을 손에 쥐었다. 기계가 나를 거부하게 두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 디지털 난민인 내가 오늘 천등산 휴게소에서 치러낸 작은 성과였다.




[이어지는 연재]

베이비부머 필살기 (10) - 버튼이 너무 많을 때 생기는 일




#디지털 시대 #천등산휴게소 #로봇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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