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필살기 (10) - 복잡한 선택지 속에서 길을 잃다
예전의 물건들은 참으로 단순했다. 텔레비전은 켜고 끄는 버튼과 채널을 돌리는 다이얼이면 충분했고,
전화기는 숫자 열 개만 누르면 세상 누구와도 연결됐다. 기능이 하나면 버튼도 하나였던 그 시절, 우리는 도구의 주인으로서 당당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친절을 가장한 채 나를 자꾸 시험에 들게 한다. 핸드폰 하나를 사도 매뉴얼을 공부해야 할 만큼 기능이 넘쳐나고,
세탁기조차 '빨래'와 '건조'라는 본연의 임무 외에 자꾸만 정교한 선택을 하라고 나를 다그친다.
버튼이 많아질수록 내가 누를 수 있는 반경은 오히려 좁아진다. 혹여 잘못 눌렀다가 기계가 망가지는 건 아닐지,
평생 손때 묻혀 써야 할 물건을
못 쓰게 만드는 건 아닐지 덜컥
겁부터 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단순한 것이 최고라 믿고 살아온 세대에게 이 끝없는 선택지는 거대한 장벽이다. 기능을 다 쓰지 못하면 손해 보는 기분이고,
다 익히려니 세월이 야속하다. 결국 우리는 수많은 버튼 중 평생 쓰는 단 몇 가지만 손에 익힌 채, 나머지 화려한 기능들은 그저 장식으로 남겨두고 만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이 복잡해졌다고 본질까지 변한 것은 아니다. 밥솥의 본질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짓는 것이고,
전화기의 본질은 그리운 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버튼이 백 개든 천 개든, 내가 누르는 그 단 하나의 버튼이 내 삶을 윤택하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모든 기능을 다 알아야만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필요한 것만 골라내어 당당하게 누를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복잡한 디지털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베이비부머만의 진정한 필살기다.
비록 남들보다 느리고 서툴러도, 내 손끝으로 직접 선택한 그 버튼 하나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해 준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중요한 건 버튼의 개수가 아니라, 그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의 확신이다. 결국 내 인생의 격은 얼마나 많은 기능을 다룰 줄 아느냐가 아니라,
수천 개의 유혹 속에서 나에게 꼭 필요한 본질 하나를 끝까지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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