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필살기 (11) - 키오스크가 앗아간 '주인의 자격'
예전에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여기요” 하며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 한마디에는 "안녕하세요? 나 왔어요. 주문받으세요."라는 모든 뜻이 담겨 있었다.
물 한 잔도, 메뉴 설명도 사람과 사람의 눈 맞춤에서 시작됐다.
우리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당당한 손님이었고, 그 공간은 익숙하고 편안한 삶의 일부였다.
하지만 이제 매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직원의 환대가 아니라 ‘키오스크로 주문하세요’라는 문구다.
기계 앞에 서면 손가락이 잠시 멈춘다. 결국 바쁜 직원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뗀다. “저기, 이것 좀 도와주세요.”
그 순간 묘한 감정이 스친다. 못해서 미안하고, 부탁해야 해서 더 미안하다. 예전엔 당연했던 요청이 이제는 눈치를 동반한 부탁이 되었다.
직원의 손놀림 몇 번에 해결되는 화면을 바라보며 나는 이 공간의 주인이 아니라 잠시 길을 잃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내 돈을 내고도 괜히 고개를 숙이고, 당연한 권리를 누리면서도 조심스러워진다. 세상은 우리에게 ‘스마트해지라’고 말한다.
효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효율의 뒤편에는 누군가의 작아진 자존심이 서 있다. 우리가 평생 일구어온 세상에서 어느 날 문득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
그 씁쓸함이 오래 남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눈치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모르는 것을 묻는 일은 수치가 아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 또한 여전히 인간적인 소통이다. 당당했던 손님이 이방인이 된 것이 어찌 내 잘못이겠는가.
그저 “고맙소”라는 짧은 인사에 조금의 미안함이 섞여 있을 뿐이다. 돈은 냈지만, 괜히 마음의 빚을 진 사람처럼 문을 나선다.
그러나 결국 내 인생의 격(格)은 얼마나 기계를 잘 다루느냐가 아니라,
도움을 청해야 할 때 청하고
고마움을 전해야 할 때 전하는
그 당당한 품격에 달려 있다.
[이어지는 연재]
베이비부머 필살기 (12) - 디지털은 편한데 나는 왜 불편할까
# 현역의 삶 # 디지털 소외 # 인생통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