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늙기 전에 다시 걷고 싶은 우리 땅 (2) - 강진, 백련사 다산초당
이번 여행이 내게 준 것은 단순한 풍경 이상의 의미였다. 바로 느림 속에서 찾은 나만의 삶의 방향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전국 어디든
하룻만에 다녀올 수 있으니
말이다.
요즘 여행사와 KTX가 손을
잡으면서 주말이면 새벽부터
서울역과 용산역은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그 흐름에 나도 슬그머니 몸을
싣는다. 아내가 건네준 일정표
한 장에 기대어 이번에는 전남
강진으로 향했다.
동백이 먼저 피는 절, 백련사와
그리고 그 숲길 끝, 다산초당.
그곳을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백련사의 차 향기와, 초가 한 채
안에서 수백 권의 사유(思惟)를
쌓아 올린 한 사람의 시간을
만나고 싶었다.
다산(茶山) 정약용.
그는 이곳 유배지에서 18년 동안
가장 치열하게 공부한 사람이다.
강진의 숲길은 조용했다. 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서두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백련사로 오르는 길,
동백나무 사이로 햇살이
포근했다. 바람은 낮게 불었고,
발걸음은 저절로 느려졌다.
젊을 때는 빠른 게 능력인 줄
알았고, 늦으면 뒤처지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숲은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준비해 간 텀블러 커피를 들고
벤치에 앉았다.
한참을 그렇게 잠겨 있었다.
그런 시간이 언제였던가...
중년은 늦었다는 자각이 아니라
속도를 다시 고르는 시간임을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숲은 말이 없다. 그 대신 기다린다.
나 스스로 멈출 때까지…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가파르지 않아 천천히 걸어도
충분히 닿는다.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
조금 돌아가도 결국은 닿는 길.
초당 마루에 서니 검소한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작은
방에서 『목민심서』가 쓰였단다.
다산(茶山)이 중년의 나이에,
유배지에서 한 말이다.
"청렴은 목민관(牧民官)의 본분이요, 모든 선(善)의 근원이다."
이는 벼슬을 잃은 사람이 벼슬을
가진 자들에게 남긴 문장이다.
200년이 지났는데도 이 문장은
아직 새것 같다.
지금 여의도에는 권력은 넘치는데
청렴은 드물다. 정치는 기술이 아니라
품격(品格)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나라를
걱정했는데, 오늘의 위정자들은
자리만 걱정하는 듯하다. 초당은
작았지만 그의 생각은 컸다.
200년 전 문장이 지금도 유효
하다는 사실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진을 떠나는 길,
나는 이상하게도 가벼웠다.
많이 본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아마 속도를 내려놓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의식적으로 '천천히'라는
단어를 되뇌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년은 끝을 정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고르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중년의 여행 또한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을
만나는 일이다.
[연재 안내]
더 늙기 전에 다시 걷고 싶은 우리 땅(3)
- 수원 화성과 융·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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