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마중 나섰다

봄은 꽃보다 먼저 마음에 핀다

by 늘푸른 노병


봄은 꽃보다 먼저 마음에 온다
돌보는 손길 속에서
나도 함께 피어난다


봄이 찾아오는 계절

마음도 함께 설렌다


이맘때가 되면

저절로 유년 시절이 떠오른다


할아버지가 계시던 사랑채 뒤뜰.

언 땅을 들어 올리며

가장 먼저 얼굴을 내밀던

어린 초록.


고향집 사랑채 뒤뜰 수선화


고향집 사랑채 뒤뜰의 수선화는

작은 싹 하나로

말보다 먼저 봄을 전해주곤 했다


겨울을 무사히 건너왔다는 듯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버지는 화초를 참 사랑하셨다


5일장에서 화초를 고르시던 날,

작은 선인장 여러 종류를

한 상자 가득 사 오셨다


그 작은 가시들 속에도

살아내려는 힘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고향집 화단은

봄부터 여름까지

작은 꽃의 세상이었다


봉선화, 채송화, 맨드라미, 붓꽃,

나팔꽃—

이름만 불러도

고향 냄새가 물씬하다


고향집 여름 화단


그 꽃 사이를 뛰놀던 나는

꽃이 피는 속도만큼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화초 가꾸는 일을 좋아한다


땅 한 평 없는 아파트 거실에도

꽃분을 들여놓고

작은 화단을 만든다


계절을 내 안으로

들여놓기 위해서다


작년 말에 들여온

'포인세티아' 제 몫을 다하고,

조용히 생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생명이란, 어쩌면

한 계절을 온전히 쓰고

자리를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꽃을 키우다 보면 알게 된다

돌보는 일은 곧,

나 자신을 놓치지 않는 일임을.


아침저녁으로 꽃을 바라보고

물 한 컵을 건네는 그 시간이

마음을 조금씩 가지런하게 한다


꽃은 안다

정성이 담긴 손길과

그렇지 않은 손길을


정성 들인 만큼

꽃은 꽃으로 돌아온다


사람도, 관계도,

아마 삶도 그럴 것이다


이번 주말에

봄꽃 몇 분을 모셔야겠다


계절은 밖에서 오지만

봄은 늘 내 마음 안에서

먼저 오는 법이니까.




#봄이 오면 #꽃을 키우며

#나를 가꾸다 #중년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