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은 공허할 뿐
돌아가시기 직전인 한 노모가 있다. 그 노모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해외에 있는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주변 사람들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하지만 아들이 오기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아들은 어머니를 보려 비행기를 타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한다. 숨을 헐떡이며 병실에 병실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어머니는 살아계신다. 둘은 손을 부여잡고 이야기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밥은 먹었니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어머니는 숨을 거둔다.
뭔가 드라마 같지만 분명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다. 동화로도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도 있었던 이야기다. 이 이야기 또한 과학으로 설명 가능할까. 정신력? 유전자? 뇌파? 모성애?
마음이다. 그냥 아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 하고 싶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버티고 버텼던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중력이나 뇌파, 전자기파는 잘 활용한다. 그러나 마음이나 매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황당하게 받아들인다.
24살의 대학생 구안과 국민 MC 유재석의 매력은 분명히 다르다. 과반수는 유재석을 좋아할 거다. 연예인이라는 그의 위치를 제외하더라도 그의 노력, 근성, 마인드는 너무 매력적이다. 노력했다고 말할 정도를 뛰어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그의 마인드와,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오래 피웠던 담배를 끊는다는 그의 말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그를 좋아하게 만든다.
물론 매력은 종합적인 지표다. 수치화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10분만 이야기해봐도 나는 그가 '매력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거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이래도 매력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꼭 수치화해야만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가.
과학은 수치화되어있고 정립된 이론도 있다. 그렇지만 과학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변화한다. 학생 시절 혀에는 여러 맛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배웠다. 혀 안쪽에는 신맛인가 쓴맛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레모나나 약을 먹을 때는 일부러 혀 앞에 두고 먹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잘못된 지식이라고 밝혀졌다. 과학 덕분에 우리의 삶은 윤택해졌지만 분명 경계해야 할 부분도 있다. 고대에는 천동설을 수백년간 믿어왔고 지동설을 주장하면 사형당했다.
마음, 사랑은 어떨까. 세게 2차 대전 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서로 휴전을 하고 축제를 나누었다는 군인 이야기가 있다. 이를 그저 '크리스마스의 축복'쯤으로 해석하는 건 이상하다. 과학적으로 이야기할 거면 뭔가 정리할만한 게 있을 것이다. 내 식으로 정리하자면
'두 국가의 군인은 친구가 됐다. 왜냐하면 미워하던 적군이 사실 같은 인간이고, 친구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구에게는 총을 쏘지 않는다. 친구가 아파하는 일은 하기 싫기 때문이다'
쯤이 될 테고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연구 결과 친구에게는 총을 쏠 확률이 88% 줄어든다'
쯤 될 수 있겠다.(물론 거짓 통계다)
그런데 이건 짧게 생각해봐도 쉬운 이야기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슬퍼하거나 화내거나 짜증내는 모습을 보기 싫어한다. 내 마음이 슬프고 화나고 짜증 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항상 웃도록 노력할 거다. 그럼 상대방도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나를 좋아하게 된다. 변화시킨다는 게 아니다. 그건 너무 오만한 생각이다.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누군가 나에게 총을 들이밀었을 때, 악담을 했을 때 똑같이 총을 꺼내면 빵야 총을 맞고 만다.
그런데 거기서 '사랑합니다' '너랑 친해지고 싶어' 하면 어떨까. 처음은 어렵겠지만 상대방은 나를 좋아하게 된다. 그러면 더 이상 나에게 총을 쏘고 악담을 하지 않는다. 이게 사랑의 힘이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 순간부터 나도 부모님을 원망하게 됐다. 돌이켜 보면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한 적 없다. 늘 따뜻하게 밥을 차려주셨고, 옷은 따뜻하게 입냐고 물어보셨다. 그저 내가 사소한 이유로 부모님의 의도를 왜곡하면서 그들의 사랑을 쳐냈다.
부모님에게 먼저 자주 안부를 물었다. 식사는 하셨는지, 집에 별 일은 없는지. 그들을 먼저 좋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자 그들도 똑같이 나에게 대해주었다. 아니 원래부터 그렇게 했는데 이제야 깨달았다. 오랜만에 부모님과의 식사 자리가 편했다.
어렸을 적 온 마음을 다해 드렸던 편지를 부모님은 소중히 간직하신다. 안마권이나 사랑합니다라고 삐뚤 삐돌 적혀있는 편지를 그들은 소중히 침대맡에 보관한다. 그때는 그냥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의 전부였다.
어느 순간 부모님이 어려워졌다. 돈을 벌게 돼서 처음 사드린 가방을 어머니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꽤나 비싼 가방이었는데 자주 하고 다니지 않으셨다. 어울리는 옷이 없어서 일수도 있겠다. 왜 나는 어머니가 평소에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 평소에 뭐가 필요한지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선물에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형이랑 돈을 모아 '아 이쯤 드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 불순한 마음은 부모가 제일 잘 안다. '아 얘네가 그냥 구색 맞추기로 주는구나'라고 느껴졌을 거다. 가방은 고맙다고 말을 몇 번 하시고 자식들을 볼 때만 사용하신다. 가족행사에만 들고 다닌다. 어머니 당신이 아신다. 이 선물은 진짜가 아님을. 그래서 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들고 다님을.
오히려 여행에서 사 온 만 원짜리 쿠키를 어머니는 더 좋아하셨다. 참 달다 부드럽다 하시면서.
초록색 종이가 있다. 화장실이 급한 사람에게는 휴지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돈이다.
한 여자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지나가는 여자 A이고,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애인이다.
물질은 하나이지만 우리가 그걸 대하는 태도와 마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물질은 공허하다. 우리가 욕망하기 때문에 초록 종이가 휴지에서 돈이 된다.
우리는 그렇다면 초록 종이에 집중할 게 아니라 마음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