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선한 존재다
나무 옆에 쓰레기봉투가 잔뜩 쌓여있는 걸 누구나 한 번쯤 본 적 있다. 그곳이 원래 쓰레기를 버리는 곳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불법이다. 아마 누군가 한 명이 쓰레기를 거기다 버렸을 테고, 다른 이는 또 버려진 쓰레기를 보고 거기다 쓰레기를 버렸을 거다. 그렇다면 처음 쓰레기를 버린 사람은 하나의 쓰레기를 버렸겠지만 수 십 개의 쓰레기를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처음 그 누군가가, 단 한 명이 거기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깨진 유리창 효과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꼭 모든 걸 학문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말해보려고 한다.
무단횡단도 그렇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지키던 사람들도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기면 그냥 건너버린다. 한 명의 무단횡단자가 수 십 명의 무단횡단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우리의 작은 행동은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친구가 지하철 역에서 노숙자에게 돈을 준 적이 있었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숙자들을 피하고, 자신도 먹고 살기 어려운데 웬 기부냐고 생각한다. 친구는 그렇게 기부를 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뒤 따라오던 두 세명이 또 기부를 했다. 만약 누군가 앞서서 기부하지 않았다면 뒤의 사람이 기부를 했을까?
나 또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오랜만에 기부를 해봤다. 지금까지는 나 혼자 먹고살기도 급급했었다. 매일 아침을 안 먹고도 매끼 7천 원어치 밥도 사 먹기 아까웠다. 어떻게 어떻게 운 좋게 장학금을 받게 되어 방학 막바지 짧게 여행을 다녀왔다. 비행기에서 유니세프인가 NGO의 기부금 모집 봉투를 나눠주었다. 예전의 나였으면 신경도 안 썼을 그런 봉투였다. 갑자기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여행하며 남은 외화 천 원이랑, 현금 5천 원을 넣어서 승무원에게 드렸다. 그러자 옆에 앉아계시던 중년부부가 나에게 몇 가지 묻더니 서로 이야기를 나누셨다.
저거 남은 돈 주면 되나 보다
우리도 남은 거 있잖아
그래. 그냥 주고 가자
그러면서 잔돈과 외화를 꺼내시는 모습을 봤다. 신기했다.
내 선택이 두 사람의 좋은 행동을 불렀다. 뒤는 모르겠지만 아마 더 많은 좋은 행동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한 끼 밥은 못 먹겠지만 정말 뿌듯한 경험이었다. 이후로도 종종 기부를 할 거고, 옆에 앉아계시던 부부도 오늘의 경험에서 또 좋은 느낌을 받아 기부를 할 것이다. 그러면 또 뒤의 한 두 명이 좋은 느낌을 받아 좋은 일을 할 거고, 하루에 한 두 명이라도 그런 행동과 마음이 쌓여간다면 분명 세상은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
우리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 기독교에서는 사랑, 불교에서는 자비. 이슬람 또한 사랑을 주장한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인간이 이미 사랑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불교에서는 그 마음을 깨닫는 순간에 '부처'가 된다고 한다. 수 천년 전부터 聖人들은 사랑을 강조했다. 선행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인류애쯤으로 말할 수도 있겠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좋은 행동을 할 때 행복해진다. 기부, 헌혈, 봉사 등. 물론 나쁜 일을 할 때도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그건 한 순간이다. 좋은 일은 두고두고 떠올려도 향기가 남지만. 나쁜 일은 두고두고 떠올리면 후회만 남는다.
복수, 절도, 음해, 뒷담 등을 하고 나서 기분이 어땠던가.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던가. 아니다. 대개는 후회한다. 그런 행동하지 말 걸, 그런 말 하지 말걸 하고.
많은 봉사를 하진 않았지만 후회는 남지 않는다. 조금 더 많은 봉사를 할 걸.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걸 하는 생각은 들지만 봉사를 괜히 했다고는 생각한 적 없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도 그럴 것이다. 좋은 일은 못한 것에 후회가 남지 한 일에 후회가 남지는 않는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랑을 추구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죽기 전에 떠올리는 사람은 보통 사랑하는 사람이다. 혹은 더 잘해주지 못했던 사람. '아 그 새끼를 좀 더 조지고 갔어야 했는데..'라고 떠올리는 사람도 뭐 있을 거다. 그런 인간은 불쌍한 인간이다. 그런 사람도 사랑해야 한다. 군대에서도 위기 상황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마디 라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힘내라고 한다. 우리는 사랑으로 살아가고 사랑으로 힘을 낸다.
우리는 안다. 어떤 게 마음에 더 와 닿는 행위인지. 그렇지만 세상에는 충격적인 소식(살인 패륜 강도 사건 사고) 이 넘쳐나고, 성, 돈, 담배, 술 등 자극적인 것도 많다. 더 편하고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걸 즐기는 삶을 추구하는 이도 많다. 그렇지만 이건 선택의 문제다.
분명 더 옳고 더 바른 길이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처음 말한 상황에서 '너는 화분을 심는 사람이 될래? 아니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될래?' 하면 99.9%의 사람은 화분을 심는 사람이 되겠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인생에서 '화분을 심는 사람'은 있던가. 오늘은 힘들었고, 내가 바빴고, 월급이 적었다고 어떤 핑계를 대면서 계속 화분을 심지 않는다. 아예 '쓰레기를 버리는 삶'을 택하는 사람도 많다.
12시간 전에 한 기부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는 것처럼, 앞으로도 작은 화분을 매일 심어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