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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안 Sep 20. 2022

스물여덟 백수 스트레스를 받다

불만보다는 불안을

아마 2달 전부터 꼬인 거 같다. 


하루는 아버지가 취업은 어떻게 할 거냐길래, 아직은 안 하고 있는데 알아서 잘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이때부터가 시작이다. 이 여유로운 대답에 아버지는 얼떨떨해했고,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또 뒤에 가서 부부끼리 이야기를 하고 자식이 정신을 못 차린 거 같다고 토론한 거 같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잔소리가 심해졌다. 그걸 피하고자 아침에 도서관도 다니고 했지만 잠깐이라도 쉬는 틈이면 공격이 들어왔다. 주제는 취업이기도 했고, 밥상예절이기도 했고, 빨래이기도 했고, 화장실 청소이기도 했다. 그냥 잔소리면 괜찮겠지만 늘 그 뒤에 한 마디씩 붙었다. 네가 그러니까 사회생활을 못하지. 네가 그 말투니까 남이 무시하지. 네가 그러니까 사회에 잡아먹히지. 


아 쉽지 않았다. 2달 정도 놀고 이제 좀 뭐를 하려고 하는데 꼭 한 마디씩 들어오셨다. 아버지가 그러니까 남들 빼고 가족이 싫어하죠, 대꾸하려다가도 일만 커질 거 같아 조용히 있었다.


하루는 면접과 여행이 겹쳐, 여행 중에 면접 준비를 하고 돌아와서 바로 면접을 본 적 있다. 아침에 일어나 도서관에 가서 프린트를 하고, 근처 독서실에서 3만 원에 2시간 큰 방을 빌려 면접을 봤다. 면접 후에는 집에 돌아와 잠깐 쉬고 도서관에 가서 다른 서류를 준비했다. 이 날은 정말 힘들어서 조금 일찍 와서 누워있었는데 아버지가 오셨다. 왜 거실 불을 안 끄고 갔냐. 정신을 안 차리냐. 그래서 사회생활하겠냐.


이때 나도 완전히 놓아버렸다. 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거실 불이랑 젓가락 잘못 놓는 게 아니라 하나라도 더 준비하는 건데 매번 다른 걸로 지적하니 대꾸할 힘도 없었다. 10시부터 22시까지 도서관에 갔다 오는 건 보이지 않는 건가?


그때 이후로 집을 나오기 전까지 14일간 정말 좀비처럼 살았다. 스마트폰과 유튜브를 하루 종일 보고 밥도 굶고 밤낮이 바뀐 생활을 반복했다. 스스로가 쓸모없는 인간 같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집을 나오려고 했으나 어머니 생일과 예비군이 있어 번거로울 거 같아 잠깐 더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진작 나오는 게 나았다.


친구의 친구가 마케팅으로 꽤 큰돈을 벌어 책을 썼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내가 월 1억을 벌면 하루에 330만 원을 버는 꼴이다. 그래서 나는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은 안 만난다. 컨디션 관리에 최선을 다한다. 

본가에 있던 네 달 중 두 달은 잘 놀았으나 나머지 두 달은 컨디션 관리가 전혀 안 됐다. 내가 한 달에 200을 번다고 해도 정말 쓸모없이 날아간 날들이었다.


조카가 나를 무서워한다고 이상한 짓을 한 거 아니냐는 말

일일 아르바이트 몇 번 했다고 너도 요즘 애들처럼 아르바이트만 하고 살 거냐는 말

젓가락으로, 화장실로, 거실 불로 한 마디씩 던지는 말

취업이 안 되면 택시나 하라는 말

내 말에 기분 나빠하지 말라는 말. 너만 손해라는 말.


첫 번째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몇 주간 화가 안 풀리기도 했다.

마지막 2주도 거의 날려먹었다. 어설프게 자식 노릇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정말 나만 손해였다. 


이 두 달은 정말 나를 퇴행시키고 글을 못 쓰게 하고, 온갖 좋은 생각들을 다 버리게 했다. 이럴 바에 혼자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스무 살 이후 형과 자취, 교환학생 등으로 부모님과 산 기간은 얼마 되지도 않고, 내가 열심히 살았던 기간들도 부모님에게 영향을 받지 않아서 해낸 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나오기로 했다. 불만보다는 불안을 선택하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나오자마자 바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고시원 생존기가 좋은 출판사를 만나, '돈은 없지만 독립은 하고 싶어'로 깔끔한 디자인과 멋진 표지로 재탄생했습니다 책으로 나왔습니다. 많관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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