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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안 Sep 27. 2022

고시원 9일차

생각이 또 하나 바뀌었다

이제 고시원에 사는 게 내가 사는 게 되어서, 주간구안이랑 나눠서 적을 필요가 없을 거 같다.


1. 꽤 신청했는데 주르륵 불합격이다. 이제는 지원이 문제가 아니라, 쌓아온 것들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봐야겠다.


2. 8일은 정말 알차게 보냈다. 아침에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아침에 운동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청년센터에 가서 몇 군데 지원한 뒤, 다녀와서 한 번 더 운동을 했다. 이 낡은 헬스장은 의외로 아침에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아침에 못한 운동은 밤에 마저 했다. 침체된 기분도 역기를 들면서 좋아진다. 엑셀로 정리하며 운동해서 조금 더 효과적으로 운동하고 있다.


3. 개명을 해야 할까? 구안은 이름 마지막인 관을 대충 늘린 말이다. 이 관은 관리관(官)이다. 나머지 한 글자를 합치면 이름이 말 그대로 국가의 관리라는 뜻이다. 부모님은 내가 어지간히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나 보다. 나름대로 닉네임은 구안(具案)으로 해서 답을 찾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혹시 개명을 하면 운이 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조금 더 무난한 이름으로 지어주셨어도 괜찮았을 텐데. 지혜를 찾다라던가, 병철, 건희, 주영, 태원 뭐 많지 않은가. 찾아보니 절차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거 같다. 그렇지만 사실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님은 알고 있다.

목사 아들이었던 최낙원 회장도 파라다이스 카지노를 세웠다. 이 파라다이스는 최 회장의 아버지가 생각했던 낙원이랑은 다를 거다.


3. 커뮤니티를 많이 끊었다. 그나마 보던 패션 커뮤니티들과 대규모 네이버 카페들도 거의 다 탈퇴했다. 더 심심해지겠지만 인생의 공백이 생기고, 화장실 가거나 이동 때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이 심심함은 진짜 심심함인가? 배고프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이 끌리는 가짜 배고픔처럼, 심심한데 잠깐 심심함을 달래주는 가짜 해소 같았다. 조금 더 메모장을 많이 켜고, 조금 더 많이 무언가 쓰고 있다.


3-2. 패션에 흥미가 끊긴 것도 있다. 간소한 짐을 위해 관리가 쉬운, 막 다루기 쉬운 옷들로만 골라왔는데 신상품이나 SS/FW 등이 무슨 소용인가. 유니클로 매대를 뒤지는 게 낙이다.


4.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취업은 잘 믿지 않았다. 삼성이나 하이닉스, 카카오를 정부지원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공채와 SSAT는 누가 보겠는가. 취업이 안 되면 저기 고용센터라도 가라는 부모님의 말에, 내가 지금 인턴하고 취업했던 곳들이 정부지원으로 간 곳이 아니잖아요. 말하려다가 참았다.


어머니가 지인 추천으로 정부지원을 활용해 00 자격증을 따셨다. 취득했지만 돈도 적게 받고, 일도 힘들다길래 일은 하지 않으실 거란다. 한 달 전에 부모님이 했던 그 말을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었다. 좋은 일자리와, 좋은 실력은 스스로 만드는 거지 정부에서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늘 생존기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다 요즘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코드스테이츠를 찾게 됐다. 생각보다 브런치에도 후기가 있길래 효과가 있나 싶었는데, 국비지원도 된단다. 바로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했다. 내 생각이 하나 깨졌다.


5. 남이 보는 나는 대개 인스타그램에 짠 취업하고, 짠 결혼하고, 짠 아이를 가지는 그런 끊긴 프레임의 연속이다. 물론 남 신경 안 쓰고 먹는 사진을 매일 같이 올려 몇 천 개씩 쌓아두는 사람도 봤지만, 대개는 남에게 불평보다는 자랑을 하고 싶어 한다. 불행을 듣는 것도 싫어하고, 불행을 자랑하는 것도 싫어하는 게 인간이다.


반응을 해준 사람들의 이름을 어제 처음 정리해봤다. 누가 보지 않는다면, 고시원에 사는 나는 이 사회에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서다. 관찰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고 여겨질 수 있으니까. 브런치가 아니었다면 매일 몇백 명이 내 이야기를 보지는 못했을 거다.


아직 살아있다고 매일같이 글을 쓰며 외친다. 그런데 그 내용이 그렇게 밝지는 않아 기분 좋은 글도 아니다. 어쩌면 독자에게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역할을 맡기는 걸 수도 있는데, 좋게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 다행이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 구인구직을 한다고 하면서도 몇백 개의 글들을 거의 그대로 두고 있다. 여기에는 이상한 글들도 많지만, 이게 내 5년간의 생각이다. 이만큼 소중한 추억이 어딨을까. 회사에서 지우라고 하면 숨김 처리는 해야겠지만, 지우지는 못할 거 같다.

6. 버킷리스트를 적어야겠다. 군대에서 적었던 것 중 거의 70~80%는 달성했었다. 악기, 댄스, 여행, 패션, 장학금 등. 글로 꾹꾹 눌러서 썼던 것들이 무의식 중에라도 생각이 나서 실천했던 게 꽤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표가 있어야 사람은 도전한다. 근육을 늘리는 것보다, 10kg 더 드는 게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그리고 목표를 세우면 역설계도 가능하다. 오늘은 10kg 다음 주는 12.5kg 다다음주는 15kg 등 목표를 위한 계획도 쉽게 세울 수 있다. 이번 주는 버킷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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