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들
1. 사람은 말해야 풀린다는데 말할 사람이 없다. 하루 종일 귀에 팟캐스트나 유튜브나 듣고 있다. 그래서 글 쓸 거리나 고민하는 거 같다. 아니면 헬스장 아저씨들이나 관찰하거나.
2. 스타트업에 다니면서 미생을 다시 한번 읽었다. 주인공 장그래는 처음엔 대기업 계약직이었고 이후엔 회사 선배를 따라 작은 기업부터 시작한다. 몇 가지 문장을 정리하다 만화 내용의 깊이가 깊어 포기했다. 일 년 전 회사 글만 봐도 민망할 정도인데, 앞으로 반년 뒤 일 년 뒤에 글을 또 보면 또 얼마나 민망할까. 이제 정말 회사가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 다시 한번 도전해봐야겠다.
3. 헬스장 사장 가족 중 누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3일을 갑자기 쉬었다. 평일 중 3일이나 쉬는 건 가혹한데 참. 그래서 하루는 샤워를 안 하고 회사에 갔고, 남은 하루는 찝찝해서 그냥 고시원에서 씻었다. 생각보다 천장이 많이 낮지 않아 다리를 굽히는 게 아니라 팔만 굽히면 됐고, 머리만 바짝 말리면 돼서 꽤 괜찮았다. 앞으로 주말에 나갈 때는 이렇게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해보고 말해야 한다.
4. 모기를 정말 잘 잡는다. 고시원에서 정말 많이 봤고, 회사에서도 꽤 보인다. 올 겨울은 안 춥다는데, 환기를 자주 해서인지 모기가 하루에도 한 두 마리는 들어온다. 그때마다 잘 잡아서 뿌듯하다. 나도 잘하는 게 있다.
5. 백반집 할머니가 옷이 예쁘다고 칭찬해줬다. 제일 대충 입고 간 날이었다. 평소에 셋업 같은 거 입을 때는 말도 없더니. 민망하다.
6. 도서관에서 책 읽고 글 쓰다, 운동하고 들어가는 게 일상이다. 밤 10시에 나와 헬스장에 가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해, 허겁지겁 옥상에 올라가 빨래를 걷었다. 비 맞은 빨래를 챙기고 다시 돌리고 너는 게 꽤 귀찮은데 다행히 잘 걷었다. 운이 좋다.
7. 어머니가 당근마켓을 시작했다. 작년에 하라고 할 때는 안 하더니 친구들이 당근마켓으로 살림을 많이 정리했단다. 흠.
8. 생각해보면 건면도 작년부터 말했다. 칼로리가 일반 라면의 반이니 꼭 그걸로 바꾸라고 했다. 말할 땐 안 듣더니 최근에 또 어디 뉴스에서 봤다고 건면 먹자고 하신다. 나도 기사 쓸 줄 알고, 신문사에서 일했는데 흠.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나도 부모님에게 같은 걸 몇 번이나 되묻고 따졌겠지. 공룡은 왜 죽었어? 소행성은 왜 떨어졌어? 소행성이 떨어지면 왜 뜨거워? 뜨거우면 왜 죽어? 하늘은 왜 파래?
9. 월드컵 시즌이다. 평소 같으면 유튜브 보면서 밥 먹고 말 텐데, 오랜만에 바닥에 앉아 축구를 보면서 밥을 먹었다. 다른 나라 축구를 보다가, 안부를 묻고, 밥은 잘 챙겨 먹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건강 이야기도 나온다. 지금의 가족 형태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