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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안 Jan 29. 2024

좋아서 일하는 사람이 있냐?

비웃었던 친구를 부러워하는 중

취업하기 전에도 늘 의문이 있었다. 다들 비슷한 교육에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을 텐데, 갑자기 10대 후반에 학과를 고르고 20대 중반에는 게임 전직하는 것처럼 갑자기 진로를 정해버린다.


구매 직무에 맞고, 영업에 맞는 사람이 된다. 은행원이 되기도 하고, 제약사에 다니기도 하고, 여행사에 다니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좋아서 일하다는 사람이 없었다. 10년 넘게 일한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이 쪽으로 들어왔으니 이쪽에서 일할 뿐이라는 답변뿐이었다. 직무든 산업이든.


이렇게 생각하면, 김 부장 소설에 나오는 말처럼 인간은 '적성의 동물'이 아니라 적응의 동물일지도 모르겠다. 쉽게 생각하면 이렇게 결론 내리는 게 맞지만 여전히 의문이다.


초밥 장인이 90살까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초밥을 쥐고, 워런 버핏과 그의 친구들이 90 넘어서까지 일을 하는 이유. 우리네 부모님들처럼 60 넘어서는 시골 가서 살 거라는 말을 안 하는 이유. 전자는 분명 그 일을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성과 흥미에 모두 맞는 일이라서 그런 걸 테고, 후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일 거다. 적성이 아닌 적응도 몇십 년 하는 거 보면 어떻게 보면 인간은 이렇게 살도록 진화한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다만 이 양극단에 평범한 나라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거다. 적당히 좋아하고 적당히 열심히 일해 꽤 만족스러운 삶. 물론 안다. 기업이 지원자들의 이런 하소연을 받아줄 여유는 없다. 사람들마다의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부여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건 미디어 속에 서면 충분하다. 다만 일개 개인으로서 느낀 건 연착륙 지점이 없다는 거다. 다 같이 초보자였던 친구들이 어느새 전사, 궁수, 마법사, 도적으로 가버린다. 초반엔 비슷해 보여도 10~20년 뒤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좀 신기하다. 그래서 인생이 게임이고 인생이 연극이라는 문구가 이해되는 것도 같다. 비슷해 보이는 구성원들이 각자 맡은 역할과 임무가 있다는 것. 게임이랑 다를 것도 없다.


하나의 가설은 있다. 적성과 흥미로 생각하면, 사람들이 쉽게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오래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도 같다. 의(패션), 식, 주, 여행, 엔터, 스포츠 등.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고 싶어 메이크업이나 스타일리스트를 한다는 여자들은 많다.


그러면 만화를 좋아하니 만화 관련 무엇으로 해볼까. 다만 만화를 업으로 한다면 그건 분명 보고 즐기고 많이 읽는 정도는 아닐 거다. 구성 요소를 철저히 분해하고, 고객 반응을 획득해 데이터화하고, 퍼널을 나눠서 관리하고, AB테스트 어쩌고와 랜딩페이지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세계일 거다. 그런데 또 막상 돌이켜보니 요즘은 텍스트를 더 많이 본다. 고전 소설이나 철학을 보고 있다. 위 문제들을 뛰어넘는 가치가 있을 거 같아서다. 이런. 내가 정말 만화 좋아하는 게 맞나? 중2병에 사회초년생 2년 차의 병이다.


요즘은 친구들끼리 약간은 걱정했던 한 후배가 떠오른다. 문과에, 학점도, 나이도 애매했던 그 후배는 게임을 좋아했다. 게임 동아리에 해외에 나가서도 그런 행사를 즐기더니 아예 그쪽으로 자리를 잡은 거 같다. 처음 알게 됐을 땐 좀 비웃었고 나중엔 약간 걱정도 했다. 저렇게 학점이 안 좋아서야. 문과인데 저렇게 언어점수가 없어서야. 쟤는 문과고 관련 경험도 없는데 나중에 뭘 하려나.


학점 쌓아 취업하고 그런 건 바보 같다고 생각한 내가, 격파하고 싶었던 그들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적성과 흥미. 그게 궁금해 찾고 싶다고 부르짖었던 걸 그 친구가 하고 있었던 거다.


어제의 나보다만 나아지면 된다고 몇 년 전부터 말했는데 남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인스타에 뿅 하고 등장하고 사라지는 업적들을 경계해야 된다고 말했던 내가 남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사실은 너를 걱정했는데 지금은 네가 부럽다고 말하고 싶다. 친구들도 다들 비슷한 말을 한다. 이래서 속단하면 안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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