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권도 들어가지 않는 작고 예쁜 그 것

by 구도

대학 시절 가방이 중고인 것을 들킬까 전전긍긍하던 나는 대기업에 입사해 신상 명품 가방을 메고서도 ‘

내가 결핍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누가 눈치채지는 않을까.’ 하는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 전 가족들과 체코 여행을 다녀왔다. 프라하 시내에 있는 기념품 샵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에코백을 하나 발견했다. 프라하를 관통하는 블타바 강이 그려져 있고 예쁜 폰트로 ‘Praha’라고 적혀 있는 가방이었다. 나는 계산대 위에 아이들이 고른 마그넷과 함께 그 가방을 올려놨다. “당신 요즘에는 에코백만 드는 것 같네?” 남편이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에서 돈을 꺼내며 나에게 물었다. “응, 편하고 가볍고 싸고. 이만한 가방이 어딨 어.” 점원에게 잔돈을 건네받으며 내가 답했다.


2006년 12월, 고3이었던 나는 국립대인 S대학교 인문학부와 Y대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해 어느 학교에 갈지 고민 중이었다. 우리 집의 넉넉하지 못한 형편을 아는 교회 집사님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근데 Y대학교는 등록금이 비싸다던데. 거기 잘 사는 집 애들만 다니잖아. 그냥 국립대 가서 효도해.’라는 축하인지 오지랖인지 모를 말을 부모님께 건넸다. 부모님도 내심 내가 국립대에 가기를 원하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졸업 후 고액 연봉의 컨설팅펌에 취업할 알량한 요량으로 전공이 경영학과인 Y대학교에 가겠다고 통보를 했다. 당시 나는 ‘’잘 살고 못 살고’가 뭐 중요한가, 어차피 같은 학교 학생인데.’라고 생각했다.


이듬해 2월,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설레는 마음으로 동기들과 함께 하는 첫 술자리에 참석했다. 아직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서로의 술잔에 따르며 앞으로 4년 혹은 더 긴 시간 동안 대학생활을 함께할 동기들과 인사를 나눴다. “너는 어느 아파트 살아?” 내 옆자리 동기가 물었다. “어느 아파트라니?”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아 그럼 어느 동에 살아?”라고 다시 물었다. 당시 나는 서울도 아닌 경기도의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는데 대뜸 처음 만난 동기가 아파트 이름을 물으니 당혹스러웠다. ‘왜 아파트 이름을 묻지?’ 나는 주변 동기들이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나도 대치동이야, 우리 바로 옆 아파트네!”, “우리 고등학교 출신이 다 합쳐서 몇 명이지?” 대부분의 동기들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거나, 비슷한 동네에 살거나, 하다못해 두 세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 같았다. 서로의 출신학교, 아파트 이름을 묻는 것은 이미 같은 네트워크 안에 속해 있던 그들에게 자연스러운 대화였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200명이 넘는 동기 중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동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그날 처음 마시는 소주의 쓴 맛도 느끼지 못한 채 씁쓸한 미소를 짓다 집에 돌아왔다.


나는 입학과 동시에 용돈과 등록금에 보탤 돈을 벌기 위해 과외를 시작했다. 동기들이 비싼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자고 하면 거짓 핑계를 대고 학생회관에서 혼자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웠다. 많은 여자 동기들은 부모님이 입학 선물로 사준 명품가방이나 엄마가 들던 명품가방을 들고 다녔다. 작고 예쁜 명품가방에 두꺼운 전공책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전공책을 손에 들고 다니곤 했다. 책 한 권 들어가지도 않는 그 가방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아껴 쓰면 한 달에 몇 만 원씩 남는 과외비를 몇 달간 모아 중고로 가방을 샀다. 그 마저도 동기들의 가방 같이 몇 백만 원을 호가하는 브랜드가 아닌, 새 제품은 몇십만 원 정도의 가방을 중고로 구매했다. 책상에 올려놓을 때는 낡은 부분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가방을 돌려서 두곤 했다. 대학 시절 내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내 가방이 중고라는 사실을 누가 눈치채지는 않을까.’하는 구질구질한 걱정이었다.


대학 졸업 후 나는 높은 연봉의 대기업에 취직했다. 성과급을 받거나 생일, 기념일, 하다못해 기분이 울적하다는 명분 하에 백화점 명품관에서 가방을 샀다. 결혼 후에는 가방이 10개가 넘게 들어가는 가방장을 두고 색깔, 디자인별로 여러 브랜드에서 가방을 사서 채웠 넣었다. 가방장이 한 칸 한 칸 채워질 때마다 내 안의 결핍감도 채워지는 듯했다. 경제적, 물리적으로 독립한 지 한참이 되어서도 나는 ‘주변 친구들과는 다르게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부모와 경기도에 있는 본가’라는 과거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대학 시절 가방이 중고인 것을 들킬까 전전긍긍하던 나는 대기업에 입사해 신상 명품 가방을 메고서도 ‘내가 결핍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누가 눈치채지는 않을까.’ 하는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몇 년 후 아이를 낳고 찾아온 산후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요가와 명상을 시작했다. 스스로 내면을 돌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어느 순간 내 안의 오래된 결핍의 존재를 인지하면서 심리학책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주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자존감을 올리는 법에 대한 책들이었는데, ‘서른이 넘으면 더 이상 부모 핑계를 대선 안 된다.’라는 말에 그간 과거를 탓하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는지 반성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읽은 100권이 넘는 심리학 책들은 과거의 결핍과 현재를 단절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결핍을 채우기 위한 소비를 줄이니 목돈이 생기며 자연스럽게 재테크에 관심이 갔다. 더 이상 과거를 붙잡지 않고 미래를 위해 달려온 덕분에 지금은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조금은 나아진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주말 후배 결혼식에 가기 위해 정장을 차려입고 예전에 산 명품가방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 가방 하나가 뭐라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대학시절을 남 눈치 보며 살았네.’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더 보여주려고 안달했던 과거의 나를 안쓰러운 마음으로 떠올려본다. 지금 나는 더 이상 명품가방을 사지 않는다. 아니 더 이상 명품가방을 살 필요가 없어졌다고 하는게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제 삶의 한 순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구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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