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신고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유약하지만 순수했고 나이에 비해 철없지만 따뜻했던 아빠가
삶의 의욕을 잃어가기 시작한 것이.
운전 중에 신호에 걸렸다.
내가 가야 하는 차례에 어디선가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내가 출발해야 하는 신호로 바뀌었지만 가까워지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일단 대기한다.
내 차 바로 앞을 빠르게 가로질러 앰뷸런스가 지나간다.
사이렌 소리는 다시 멀어지고, 나는 다시 출발한다.
멀어지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기억은 200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쾅쾅'
자정이 넘은 시각, 회색 페인트칠을 한 아파트 현관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
"여기가 XXX 씨 댁 맞습니까? 신고받고 출동한 형사입니다."
늦은 시간까지 한숨도 못 잔 나와 엄마는 서둘러 문을 열었다.
"XXX 씨 실종 신고하신 OOO 씨 본인 맞나요?"
"네, 제가 신고했어요."
"마지막으로 통화하신 게 언제라고요?"
"4,5시간 전쯤이에요. 자살하겠다고 협박하길래 이렇게 괴롭힐 거면 그냥 죽어버리라고 했더니 그 뒤로 연락이 끊겼어요."
"어디 있는지 알만한 사람이나, 갈만한 곳 추측 가는 거 없으세요?"
"전혀요. 근데 아빠랑 가깝게 지내던 아저씨한테 전화했을 때 며칠 전부터 차에 소주랑 밧줄, 번개탄을 가지고 다녔다고 했어요. 참고해 주세요"
"네, 그럼 인상착의와 특이사항 말씀해 주세요.
혹시 시신이 불에 탔을 수도 있으니 금니가 있었다던가 손에 반지를 끼고 있었다던가 하는 것도 알려주시고요."
형사의 말에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빠 인상착의의 특이점을 읊는다.
형사는 수첩에 엄마의 말을 받아 적는다.
"주변 일대부터 수색해 보고 진전사항이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사건의 경위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다.
내가 아주 어릴 적,
넉넉하진 않았지만 우리 네 가족은 여느 평범한 가족 같은 보이는 면도 있었다.
주말엔 넷이 함께 집 뒷산에 등산을 가서 약수통에 약수를 떠 오고,
여름엔 아빠 친구의 작은 다마스를 빌려 트렁크에 오래된 텐트를 싣고 해수욕장에 피서를 가기도 했다.
엄마는 신경질적이었고, 아빠는 유약했지만
그런 부모 밑에서도 아이는 그런대로 자랄만했다. 적어도 나와 내 동생이 느끼기엔 그랬다.
2002년 가을,
중학생이던 나는 머리가 너무 아파 학교를 조퇴하고 며칠을 누워 지냈다.
고개를 들고, 머리를 흔들기만 해도 어지러워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여러 병원을 다녀도 차도가 없었고,
그렇게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시간이 흐르는 사이 내 증상은 먹은 것을 모두 토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대학병원에 가서 MRI를 찍고 알게 된 병명은 '아세포 혈관종', 즉 뇌종양이었다.
15살의 소녀는 머리카락을 밀고 두개골을 열어 소뇌를 짓누르고 있던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뇌종양은 흔치 않은 경우라, 담당교수는 유전자 검사를 받아볼 것을 제의했다.
퇴원이 며칠 남지 않은 날,
담당교수는 내 질병이 모계 유전질환이니 엄마와 또 여러 명 있는 이모와 외삼촌들, 외할머니의 병력을 묻고
가능하면 모두 유전자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아빠는 엄마와 나 그리고 내 동생이 희귀 유전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 VHL: 종양 발생을 억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로 망막, 뇌, 신장, 척수 등에 종양이 반복적으로 생기는 유전질환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유약하지만 순수했고 나이에 비해 철없지만 따뜻했던 아빠가
삶의 의욕을 잃어가기 시작한 것이.
제 삶의 한 순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