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모임 대림절 시리즈
이 글은 이상한모임의 대림절 글쓰기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다른 글을 보시려면 1225.weirdx.io를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영하 16도다. 벌써 옆구리가 시릴 때인가. 오늘도 나는 옷을 껴입고 아이폰 7 플러스 홈 버튼에 터치 장갑이 안 먹는 게 폰 문제인가 아니면 이 장갑이 고자인 것인가를 고민하며 집을 나선다.
세인트루이스의 코워킹 스페이스 T-REX에서 과제도 하고 이 글을 쓰기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같이 스페이스를 공유하는 친구가 와서 새해 인사를 건넨다. 자기는 내일 안 올 것이고, 나는 모레부터 한국을 가서 오지 않으니 이제 내년에나 보지 않겠냐며. 결국 그에게 나는 처음으로 “내년에 보자”라는 말을 했다. 벌써 이 말을 할 때라니.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한 1년 전에, 나는 상황이 많이 달랐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교를 두 번째로 휴학했고, 어쩌다 지인의 소개로 더기어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IT와 관련해 글을 쓴 게 어언 10년이지만, 이걸로 돈을 벌어먹고 사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에게는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도전이었다.
이 때는 이미 더기어에서 일한 지 세 달. 편집장님과의 면담과 사수와의 업무의 합, 그리고 팀장님과 PD형과의 소소한 대화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던 때였다. 그러다 보니 즐거운 나날이었지만, 나는 다가오는 2016년이 두렵기도 했다. 결국 이 치열하지만 화목한 곳을 떠나 다시 지옥 같은 학교에 돌아가는 게 2016년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모르지만, 학교는 나에게 정말 끝이 없는 스트레스를 제공했다. 뭔가 한 게 없는 거 같은데, 몸과 정신은 피폐해져 있는. 그러한 스트레스가 휴학을 하기로 한 다른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고, 나는 더기어에서의 10개월을 마친 후, 미국에 다시 돌아와 또 한 학기를 어찌어찌 끝마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 1년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정신없던 해 중 하나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다 보니 배운 점도 꽤 있었다. 여기서는 크게 세 가지를 다뤄보고자 한다. 사실 매우 당연한 것인데, 그냥 지난 1년 동안의 내 개인적인 경험을 들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뻘소리 주의)
일단, 자기 관리는 참 중요하는 점은 거듭 배웠다. 더기어에 있었을 때나, 미국에 와서 공부할 때나, 모두 그랬다. 몸이나 멘탈이나 좋지 않으면 곧바로 일이나 공부의 능률에 있어서 뚜렷한 영향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더기어에 있었을 때, 상당한 슬럼프에 빠졌을 때가 있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긴 했지만 (사실 일부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안 괜찮았었다는 거 매우 잘 안다) 정신적으로 힘든 때였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내는 기사 수는 물론이고, 기사의 품질까지 뚝뚝 떨어졌다. 힘든 걸 회사에는 내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도 날 걱정스럽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결국 사정을 듣고 나서야 조금씩 배려를 해줬지만, 나에게는 이런 부분조차도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다. 결국 핑계 아닌가. 그러다 보니 혼자서라도 멘탈 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행히도 이 슬럼프는 오래가지는 않았다. 결국 의지의 문제였달까.
또다시 그걸 뼈저리게 느낀 건 다름 아닌 지난주였다. 오랜만에 치르는 기말고사인데, 하필이면 히터를 풀파워로 틀어주는 아파트가 너무 덥다고 에어컨을 틀고 잤다가 감기에 걸려버린 거였다. 안 그래도 평소에 시험공부가 잘 안 돼서 고민인 판에 몸까지 맛이 가버리니 이중고였다. 결국 정신력으로 버텨야 했다. 몸도 안 좋은 상태에서 잠을 거의 안 자가면서 공부를 했다. 결국 반쯤 놓은 정신 덕분에 지갑까지 잃어버리는 대참사를 버텨내면서 시험을 겨우 치러냈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하루를 골골 앓아야 했다. (다행히도 지갑은 나중에 내가 두고 갔던 곳에 그대로 남아있던 덕에 되찾았다)
올해 여러 면에서 인간관계의 확장을 맛봤다. 사회생활을 제대로 처음 하다 보니 관련 업계 사람들과도 많이 알게 됐고, 학교에 1년 만에 복학하니 또다시 모르는 애들 투성이라 다시 친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거기에 매일이 지나도록 커지는 이상한모임도 있고.
그 덕분에 인간관계에 대해서 많이 배운 거 같다. 무엇보다 “인간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자”가 있다. 굳이 예시를 들고 싶지는 않다. 했다간 이불 킥할 거 같다 하지만 확실한 건, 막 대해도 옆에 있어줄 사람들은 정말 손에 꼽는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해줘야 한다.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귀찮다고? 혼자 살아야지 뭐.
사실 가장 보람찬 건 글쓰기 실력. 더기어에서 일하면서 많이 늘었다. 그렇게 혼나데니 안 늘어날 리가 없지. 내 글을 옛날부터 봐온 후배는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하더라.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사실 실력 자체보다도 내가 얼마나 글쓰기를 좋아하는지 깨달았다. 특히 학기 중에 더욱 절실히 깨달았는데, 공부로 과부하된 머리를 풀려고 글을 쓰고 있었던 때가 많았다. 아마 백투더맥 기사 중 70%는 이러한 과정으로 탄생됐을 거다. 하지만 여전히 일은 일이다. 지금도 써야 할 글은 산더미인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으니…
아마 2017년에는 학업에 집중할 거 같다. 졸업은 해야지. 올해 만났던 인연들과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나은 2017년을 보내고자 한다. 진부한 소리지만, 사실인 걸 어떡해.
마지막으로, 이 못난 학생(이자 블로거, 그리고 아주 가끔은 탐정)을 지난 1년 동안 잘 봐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2017년에도 잘 부탁드릴게요. 급마무리인 건 더 이상 쓸 말이 생각 안 나서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