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호 이야기 (2013년 초여름 ~ 2013년 9월 20일)
집에 온 지 보름쯤 되었을 때의 가호.
가호는 어미를 잃고 울고 있던 새끼 길고양이였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캣맘인 올케가 골목에 홀로 떨어진 새끼고양이를 지켜보다가 끝내 어미가 나타나지 않아 구조해왔다. 생후 2개월이 갓 넘었을까, 너무 작고 마르고 울음소리조차 연약한 새끼고양이에게 신의 가호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호'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우리집에서 돌보기 시작했다. 다 자란 길고양이를 키워본 적은 있지만 그렇게 작은 새끼고양이는 처음이라 조심스러웠다. 예방주사를 맞히려 동물병원에 데려가니 체력이 약해 안된다며 부지런히 먹여서 조금 크고 건강해지면 다시 오라고 했다. 굶주리며 지낸 탓인지, 가호는 습식 사료와 건사료를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사람에 대한 경계를 풀고 더이상 숨어 있지 않고 침대나 방바닥에 누워 뒹굴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호기심으로 기웃거리는 반려견 심바와 복순이에게도 하악질을 멈췄다. 덩치가 큰 골든리트리버종 심바를 특히 무서워해서 방과 거실
사이에 철제 펜스를 쳐 두었었는데, 일주일쯤 지나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있을 만큼 배짱도 생겼다.
건강해지면 완벽하게 식구가 되어 잘지내겠구나 싶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한달쯤 지나 가호는 침대 위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항상 올라가 있던 베개 뒤쪽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하고 냅다 동물병원으로 달렸다. 그동안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수건으로 감싼 가호는 여전히 작고 가볍기만 했다. 수의사는 축 늘어져 있는 가호에게 수액을 놨고, 잠시 후 가호의 의식이 돌아왔다. 수의사는 가호가 워낙 약해서 한두 끼만 제대로 못 먹어도 쉽게 탈진할 수 있다며, 혹시 다른 병이 원인일 수 있으니 구토나 설사를 하거나 또다시 탈진해 쓰러지면 24시간 진료하는 동물병원으로 데려가 보라고 했다. 혹시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는데 자기네 병원은 규모가 작아 입원이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집에 돌아온 가호는 사료와 물을 조금씩 먹으며 기운을 차리는 듯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구토를 하며
탈진해 쓰러졌고, 결국 24시간 치료가 가능한 큰 동물병원에 입원했다. 피를 뽑아 검사했으나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했고, 며칠 입원한 상태로 경과를 보자는 말에 가호를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찾아가니 가호는 제 발로 서서 나를 보고 냐옹냥냥냥 수다를 떨듯 울었다. 가호는 사람에 대한 경계를
풀면서 평소 골골골 기분 좋은 소리도 잘내고 특히 하루종일 냥냥냥냥냥 말이 많은 고양이였다. 밤새
왜 날 여기 놔뒀나, 무서웠다, 하소연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데려오고 싶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수의사의 말에 며칠 더 입원을 시키기로 했다. 그 다음날엔 조금 더 상태가 좋아 보였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어
바쁜 이유로 하루를 건너뛰고 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낸 후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가호를 보러 가려는데
병원이 문을 열었나 해서였다. 뜻밖에 수의사는 지난 밤부터 가호의 상태가 나빠졌다며 안그래도 전화를 드리려던 참이라고 했다. 함께 있던 올케와 황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전전날만 해도 끝없이 수다를 떨던 가호는
쓰러진 채 겨우겨우 약한 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호는 그 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새벽 두시 무렵 고양이별로 돌아갔다. 집으로 오기 전에 나와 올케는
가호를 서울대수의과대학 동물병원까지 데려갔다.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어서였다. 그곳의 수의사는 고양이
범백이 의심된다고 했다. 정확한 걸 알려면 검사를 해야 하는데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가호의 상태가 이미
치료를 받아 호전될 가망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솔직하고 책임감 있는 수의사였다. 그녀는 이전 병원에서부터 가호의 다리에 연결되어 있던 수액줄에 4시간에 한번씩 놓아주라며 주사약 몇 개를 무료로 주었다. 호흡을 편히
할 수 있게 돕는 약이라고 했던가. 가호는 숨을 놓기 전, 마지막 인사를 하듯 잠시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건강할 때처럼 초롱하진 않았지만 공포가 사라진 말간 눈빛이었다.
가호가 세상에 있다 간 건 고작 4개월 남짓, 그 중 반 정도를 함께 했다. 가호를 만나기 전, 16년 19년을
함께 했던 노견 두 마리를 두 해에 걸쳐 떠나보냈다. 가호를 보내고서 함께 했던 세월과 슬픔이 꼭
비례하는 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물론 추억은 세월만큼 쌓인다. 하지만 오랜 세월의 무게만큼, 좀더
잘 돌봐주지 못했던 자책감과 안타까움의 무게도 만만한 건 아니었다.
가호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상에 머무는 동안 살아내려 애썼던, 예쁘고 기특한 생명이었다.
가호야, 변변찮은 집사여서 미안했어. 널 오래 기억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