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호 이야기 (2013년 봄 ~~~ )
복호는 2019년 8월 현재, 7살이 된 고양이다.
새끼 길냥이 가호가 고양이 별로 돌아가고 석 달쯤 지나 복호가 우리 집에 왔다.
복호 역시 캣맘인 올케가 데려왔는데, 지인이 길에서 구조해 돌보다 사정이 생겨
입양을 보내게 되었다고 했다. 복호는 5개월쯤 된 새끼였고, 가호와 생김새가 많이
닮아 있었다. 가호를 갑자기 잃고 냥냥 거리던 모습이 눈에 밟힌다고 했던 말을
올케가 기억하고 있다가, 마침 갈데없어진 복호를 데려와 준 거였다.
복호라는 이름은 내가 지었다. 복 받은 호랑이, 혹은 복 많은 호랑이를 줄인 말로
고양잇과 동물 중에 가장 용맹하고 튼튼한 호랑이처럼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지만 복호도 가호처럼 새끼 중 약하게 태어나 어미에게 버림받은 경우인지
다 자란 지금도 보통 고양이들에 비해 몸집이 작고 살도 잘 안 붙는 편이다.
그래도 별 탈 없이 병원 신세를 안 지고 있으니 다행인데, 문제는 자기 정체성을
헷갈려한다는 데 있다.
복호가 왔을 때 우리 집엔 심바와 복순이, 두 마리의 반려견이 있었다.
심바는 덩치가 큰 골든 레트리버고 복순이는 작은 믹스견이어서 그랬는지,
복호는 처음부터 복순이를 더 친밀하게 느끼고 가까이 다가갔다. 복순이도 2개월
무렵 어미와 떨어졌고, 아마도 복호는 그보다 더 일찍 떨어졌던 모양이어서
서로 남매처럼 붙어서 잘 지내는 게 보기에도 좋았다. 그런데 복순이는 강아지로서
정체성을 갖고 커 간 반면에 복호는 그러질 못한 듯하다. 차츰 고양이로서
특성을 잃었는데, 그중 하나가 골골거림을 멈춘 것이다. 처음 왔을 땐 사람의
정이 그리웠는지 손을 갖다 대기만 해도 눈을 감고 골골골 골 기분 좋은 소릴 냈는데
이젠 아무리 털을 빗어주고 만져줘도 그 소릴 내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골골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슬쩍 섭섭한 일이다. 그 귀엽고 나른한 소리를 들으면 나도 같이 기분이 좋았으니까.
그보다 좀 황당한 건, 복호의 고소공포증.
처음 집에 왔을 때 사라져서 찾아보면 책장 위 구석에 잠들어 있기도 했었으니,
분명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한데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게 복호는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고 반려견들과 함께 방바닥에서 뒹구는 걸 좋아했고, 심지어 어쩌다
창밖이 궁금해 창틀에 뛰어오르다가도 실패해 떨어지기 일쑤였다. 높은 창도 아니었다.
보통 방에 나 있는 창문인데 거길 한 번에 뛰어오르지 못해 떨어지고는, 제 딴에 창피한지
원래 창문 같은 곳엔 오를 생각이 없었다는 듯 휙 몸을 틀어 도도한 표정을 하며
걸어 나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모름지기 고양이는 높은 곳을
자유자재로 유연하게 오르내리며, 때로 보이지 않는 높은 옷장 위 깊숙이
몸을 숨겨 집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동물이 아닌가.
얼마 전 언니가 복호에게 새 캣타워를 사줬다. 높이가 150cm 정도인데, 며칠의
적응 기간을 지나 마음 놓고 이용하게 된 후에도 제일 꼭대기에는 아직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작정하고 안아서 맨 위에 올려놨더니 불에 덴 듯 1초를 못 견디고 퍽
소리를 내며 온몸으로 뛰어내려 버렸다.
사실 복호가 집에 오고 일 년쯤 후, 콩알이라는 반려견이 왔다. 언니 지인이 아들에게 선물로
사주었다가 성견이 되자 감당을 하지 못하고 유기견 보호소로 보낸다는 걸 우리가 돌보겠다,
데려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엔 반려견 세 마리와 반려묘 복호가 함께 살게 되었고,
때문에 복호는 더욱더 개들의 행동양식에 익숙해졌는지 모른다.
이제는 반려견들의 사료에도 관심이 생겨 24시간 자율 급식하는 자기 밥그릇을 두고
개들의 사료를 집적 거리기도 하고, 혼자 있기보다 어떡하든 복순이나 콩알이 와 얼굴을
맞대고 있으려 애를 쓰고 있다. 그러니 어쩔 건가.
어쩌면 복호가 그러는 건, 반려견들과 함께 살아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반려견은 많이 돌봐봤지만, 고양이는 이번이 세 번째니까 아무래도 잘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복호야, 뭐가 문제인 거니. 고양이 친구가 필요한 거니,
아니면 집사의 고양이화가 필요한 거니, 그것도 아니면......혹시 복순이를 두고 콩알이랑
경쟁 중인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