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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Jan 18. 2022

강요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할때 우린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멀쩡히 서 있다가 쓰러지는 영상에 코로나로 사람들이 그렇게 쓰러진다고,

원인 모를 죽음으로 전 세계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세계는 문을 닫고, 집안에서 우리는 뉴스에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원인이 뭔지도 모를때,

서서히 병명이 밝혀지고, 증상에 대한 연구가 나오면서 백신이 나왔습니다.


처음 사람들은

무슨 병인지 궁금해했고,

백신과 치료제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백신을 만들었지만 부작용을 가늠하기는 어려웠죠.

그래도 죽기보다 나을 꺼란 생각에 세계는 백신을 맞기 시작했고,

영국에서는 백신을 처음 맞는 사람은 90세 할머니였습니다.

안전한 백신임을 강조하려고 했을 겁니다. 백신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했고, 그러다 백신을 맞고 중병으로 가거나 돌아가신 분들이 하나, 둘 생기다 보니 그 불안함은 더 했습니다.


집안에서 제일 먼저 백신을 맞은 이는 병원 종사자 조카였습니다.

온 식구가 긴장하고 불안해했습니다.

조카는 아무 증상 없이 무사히 넘어갔지만, 병원 동료들은 밤새 열이 나고, 아팠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밤새 열이나 이틀을 병가 내고 쉬는 이도 있었습니다.

조카가 아무일 없는 것에 감사하며 다음은 친정엄마였습니다. 나이 80인 엄마가 간까지 안 좋으셔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였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날짜를 정하고 기운 내야 한다며, 4일 동안 닭 두 마리를 백숙해서 드시고 주사를 맞았습니다. 그렇게 식구는 하나, 둘 전부 맞았고, 2차까지 접종을 마쳤습니다.

그렇게 두려워하던 백신을 맞아도 돌파감염이란 말이 생기기 시작했고, 백신의 효과를 믿지 못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증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뉴스에, 어디를 갔다 오면 선별 진료소에 줄을 서서 검사를 하고 음성통보가 와야 안심할수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검사하러 3시간을 추위에 떨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렇게 부작용을 생각하며 백신을 맞은 이유는 뭘까요?

2시간의 넘는 줄을 추위에 떨며 아픈 코를 찌르러 내발로 가는 이유는 뭘까요?

나를, 내 건강을 위하기보다 남에게, 가족에게 전파를 시킬까 겁이 나서입니다.


델타보다 더 전염성이 많은 오미크론이 설을 지나면 90%가 될수 있다는 뉴스에

서둘러 3차를 맞으라고 합니다.

6개월이 도래한 나이 드신 분들은 차츰 3차를 맞아가기 시작했고, 저도 3차를 맞았습니다.


방역 패스라며 주사를 맞은 사람만 통과를 시키는 정부의 시책에 불만도 있습니다.

큰 마트에서 QR출입 코드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 입구에서 한참을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어르신을 봤습니다.

식당에서도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따로 혼자 앉아 밥을 먹어야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죄인이 됐고,

백신을 맞은 사람은 당당하게 QR코드를 찍고 들어갑니다.


의무와 강요 사이에 우린 어떤 결정을 내립니까?

백신 접종은 의무일까요? 강요일까요?


특정 병명으로 백신을 맞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백신이 몸 어딘가에 부작용을 일으킬지도 몰라 맞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연예인에게 백신을 안맞으면 민폐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예전부터 백신은 내가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 맞는 약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는 죽음으로 몰아 갈수 있는 전염병입니다.

한 사람이 5 사람을 감염시키고, 그 5명은 다른 25명에게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나혼자 아파 끝나면 되는 그런 병이 아닙니다.

나로 인해 내가 모르는 사람을 감염시켜서 죽음으로 몰수 있는 무서운 병입니다.


백신 부작용으로 가족을 잃은 분들이 모여 가족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너무나 슬퍼하는 가족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정부를 믿고 순진하게 백신을 맞고서 죽었다고...


얼마전 한장의 사진이, 그들의 사연이 하루 종일 아프게 했습니다.

화장장에서 방호복을 입은 두분과 꽁꽁 싸맨 이동식 침대에 있는 분. 그리고 먼 거리에서 기다리다 이름이 불리면 줄이 쳐진 곳에서 잠깐의 인사를 합니다. 그 시간은 단 15초.

코로나에 걸려 돌아가신 분들은 장례식도 하지 못합니다.

그저 그렇게 손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하고, 얼굴 한번 다시 보지도 못하고 먼 거리에서 잠깐의 인사로 가족을 보내는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편이 아려 옵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내가 맞기 싫다고 다른 이들에게 맞으라고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또 내가 맞았다고 다른 이들에게 맞으라고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선택에 책임이 따르기에 그에게 뭐라 해서는 안됩니다.

이 시기, 이 환경이 사람들을 갈라놓는게 한탄스럽습니다.

다 같이 누굴 원망하기보다 나 스스로가 책임 있게 행동하며 방역을 잘하면 됩니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곧 끝날수 있습니다.

함께여야 할 수 있습니다.












잠깐이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가 2년 넘게 가면서 주위에 화가 많아졌습니다.


마스크를 쓰는 일도 화가 나고, 어디 가서 외식 한번 못하는게 화가 나고, 일자리가 없어진 것도 화가 나고,

무서움에 떨며 백신 맞는 것도 화가 나고, 맘먹고 간 식당에 사람이 많으면 화가 나고, 세일 타임을 노려 마스크에 돈 쓰는 것도 화가 나고, 지인 못 만나는 것도 화가 나고, 기침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어도 화가 나고.....

제가 요즘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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