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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Jun 09. 2022

어떤 눈물을 흘리나?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내 존재를 울음으로 알린다.


건강하게 울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그 소릴 듣는 엄마와 주위 사람들은 안도를 한다.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배고파요.  

기저귀 좀 갈아줘요.

잠 좀 재워줘요.

뭔가 불편해요.

나 아파요. 등...

울음으로 나를 표현하고 원하는 걸 얻으려 한다.


울음은 그렇게 슬프거나 기쁘거나 괴로울 때 나오는 감정인 것이다.




'악어의 눈물'이라고 있다. 

사람을 잡아먹은 악어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

잡아먹어놓고선 눈물은 왜 흘리는 것일까...




살면서 악어의 눈물을 종종 본다. 

사람을 잡아먹진 않았지만, 상대를 고통에 빠뜨리고 자신은 그저 깨끗한 척하는 이들...

자신의 잘못이 아닌냥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이들의 눈물은 지금도 주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그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그 눈물을 무기로 쓰기도 한다. 

당하는 사람이 있으니 방패가 무기로 변한다.

거짓으로 남을 속이려고, 속이고서 흘리는 보여지는 눈물, 남에게 보이기 위해 나를 표현하는 눈물...

남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참았던 나는 

남이 흘리는 눈물은 용서를 구하고 있고, 그 눈물에 미안함이 들게 했다.

저렇게 울 정도면 내가 너무 한거 아닐까...


어릴적 우린 싸우면 먼저 우는 이가 지는 거라고 눈물을 꾹 참고 싸웠던 적이 있다.

어떻게든 이겨 보려고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집에 와서 그렇게 울던,

어릴적의 내 눈물은 의미는 忍.

놀다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다 못해 뼈가 보일 정도 여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선생님의 오해로 교무실로 불려가 혼이 나도, 억울해도 눈물 흘리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면 내가 하지도  않았던 일을 내가 한 것이 되는거 같아 선생님의 도를 넘는 훈계에도 고개만 숙일뿐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참고 참았다. 

회사를 다니며 힘든 일이 생기면 그저 검정 비닐봉지에 소주 한 병과 새우깡 하나를 들고 조용히 방에서 먹으며 참던 눈물이었다. 


세월이 흐르니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나올 때가 있다.

tv를 보다 유기견, 유기묘의 아픔을 보다가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하고, 드라마에 몰입해 주인공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져 흘릴 때도 있다. 

엄마의 잔소리에 서운함이 몰려와 화가 나며 눈물이 콸콸 흘린 적도 있다.

울보가 되지 않기 위해 참았던 감정은 

나이가 들면서 울보가 되기로 한 것처럼 감정이 나를 놔두지 않는다.




산 시간만큼, 그만큼 많은 일이 있었지만, 왜 나이가 들면서 나아지지 않고 그 아픔을 고스란히 갖고 사는 걸까... 그리고 그만큼의 참았던 눈물을 더 흘리는 걸까...


강한 어른은 없다.

강해지는 어른은 없다.

강하려고 다독이며 참고 참는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참고 견디는 것이 나를 지키는 것이란 믿는다.

약해지려 눈물이 나면, 약해지고 만다. 눈물과 함께 참았던 저 밑바닥 감정까지 끌려 나오듯 나를 뒤흔든다.


내게 있어 눈물은 서운함에서 많이 나온다.

서운함에 얽히고설키는 일이 참고 있던 내 눈물샘을 깨운다.

한번 울면 시원하기도 하지만,

눈물이 무기가 되지 않기 위해 참을 때도 있고, 혼자 울 때도 있다. 지금도...

감정을 참고 이겨내는 건 맞지만,

나만, 나 혼자만이 아닌 같이 참고 이겨내야 이 눈물샘이 고장 나지 않는다.  













아는 이가 있습니다.

맘 착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눈물이 많은 만큼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다 거짓이란 걸 알았을 때 그 사람 하는 행동을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불리하거나 상대가 힘든 일을 얘기하면 울며 손으로 눈을 가리며 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미안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시간을 갖겠다며 돌아서는 모습.

우는게 아니었고, 우는 척하는 이었습니다.

우는 척으로 우릴 속이며 자신의 착한 모습을 보이며 뒤돌아서는 이중인격처럼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듯이, 

보이는 모습만을 보고 우린 그를 착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돌아선 악마의 모습을 보고 기겁하게 한 이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살까요?

남에게 보이는 거 그거 오래가지 않습니다.

인과응보로 지금은 힘들게 산다고 바람을 통해 들은 소식...

참, 한숨만 나올 뿐

남에게 보일 것이 그런 거짓 눈물뿐인 삶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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