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만 봐도 이쁜 '장미'는 좋은 향을 내뿜고 있다.
하지만, 그 향과 아름다움을 훔치고 싶은 사람은 기어이 장미를 꺾어 버린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장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숨기고 있다.
자신을 꺾으려는 이를 응징하기 위해 가시를 숨기고 있다가 고통을 느끼게 한다.
왜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멀리서 바라보지 못할까...
고슴도치는 적을 향해 온 몸의 가시를 도드리며 다가오지 말라며 경고를 보낸다.
작디작은 고슴도치가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가시뿐이었다.
우린 살면서 유유(愉愉)하게 살진 못한다.
가정에서건, 사회에서건
가만히 있어도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하고, 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서서히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면서 나 자신을 잃어간다.
쓰레기통이란 버려지는 물건을 담는 통이다.
쓸데기 없는 물건들, 냄새나는 물건들, 필요 없어진 물건들을 버리는 통...
나를 쓰레기통이라 생각하며 폭언을 하고, 감정을 던져버리고, 상처를 주며 상처받아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점점 그 강도는 세지고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를 지경까지 간다.
'버려지는 인격'이란 없다.
나 스스로가 버리는 것이 아닌 남이 버리려고 하는 내 인격은 내가 지켜야 한다.
작은 고슴도치도, 장미꽃도 가시를 세우며 자신을 공격하는 이에게 자신을 지키려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왜 못하겠는가.
그냥 바라만 보며 좋아할 순 없는가?
왜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서 소유하려 하는가...
김혜자님의 "꽃으로라도 때리지 마라."란 책이 있다.
아프지 않을 것이란 꽃으로 때렸을 때 상대도 아프지 않다고 할까?
때렸다는 자체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상처가 쌓이면 흉터가 된다.
그 흉터는 남들에게 무섭게 보일 수도 있다.
흉터가 되기 전에 약도 바르고, 그곳을 두번 다치지 않게 조심도 해야 한다.
감정 쓰레기통이 되기 전에 아프다고 해야 하며, 하지 말라고 해야 한다.
이것저것 다 받아 주지 말고 골라서 분리수거도 하고, 아직 쓸만하면 다시 제 자리에 놓아두면 된다.
그렇다 보면 내가 가진 통은 깨끗하고 이쁜 것으로 찰 것이다.
장미는 가시를 숨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겠나.
고슴도치는 작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동물들로부터 위협을 당했겠나.
스스로가 쓰레기통이 되지 말고
남들에게 쓰레기통이 되지 말자.
나를 지키기 위해 가슴에 '가시'를 달고 살자.
21세기에 전쟁이 웬 말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정말 일어날까? 였고 일어났습니다.
미얀마 사태에 가슴 아파했던 일이 바로 얼마전이였는데,
어제 잠깐의 뉴스를 봤습니다.
우크라이나 젊은 군인이 러시아군의 진입 시간을 벌기 위해 다리를 폭파했다는 뉴스...
하지만, 그 군인은 자폭을 선택했습니다. 피할 시간이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자진해서 다리 폭파에 지원했다고 합니다.
80이 넘은 할아버지는 자신도 총을 들겠다며 자진 입대를 하는 사진도 봤습니다.
작다고, 힘이 없다고 때려서는 안됩니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고, 지키겠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젊은이의 죽음에, 가족의 죽음에, 생사를 알수 없는 이런 전쟁,
옳은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