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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구봉선
May 24. 2023
밑줄 쫙!
우린 강조의 의미로 밑줄을 긋는다.
강조하기 위해서 형광펜을 쓰기도 하고 위에 별을 그리기도 한다.
더 강조하고 싶으면 별 5개!
그러다 보면 노트의 2/3는 다 밑줄이 쳐져 있다.
뭘 그리 강조하고 싶은 것일까?
선생님의 수업 중 제일 강조가 되는 것은
"이것은~ 이번 시험에 반영될 것이다~"
그 한마디에 졸던 눈이 떠지고 형광펜을 찾아 한 구절 전체를 밑줄을 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공부할 부분은 어느새 책 한 권을 채운다.
'다~ 외워라.'와 같다.
감사한 선생님은 '밑줄 쳐!'강조한 부분을 정말 시험에 내주시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선생님은 '밑줄 쳐!'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시험 출제 비율이 20%도 되지 못하는 분도 계신다.
선생님들은 뭘 그리 강조하고 싶으신 것일까?
'정말 시험에 나오니 밑줄을 쳐라.'
'애들아 내 수업 중에 집중 좀 해 줘라.'
'니들 한번 이번 시험 빡새게 공부해봐라.'
선생님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분은 중학교 선생님...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시고,
넘어갈 건 그냥 눈 한번 질끈 감으시고 '가봐.',
아이들이 스트레스받을까 상담 많이 해 주시고,
달에 생일인 아이들 모아 반에서 과자파티 해주시고,
배가 많이 나와 아이들이 놀려도 '아빠 같지? 아빠라고 해.'라며 껄껄 웃으시고,
일일이 따지지 않으시고
'네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라며
'말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해. 기다려 줄게'라고
해 주셨던 선생님...
반 아이들 골고루 신경 써주시고 남 보는데 특별히 이뻐하지 않으셨던 선생님.
가끔 선생님들을 생각하다 보면 결국엔 그 선생님 생각난다.
오전 일찍부터 등교하느라 아침을 굶던 때,
10분의 잠깐 시간에 매점 가서 삶은 계란 하나 입에 넣고, 우물 거릴 시간도 없어 책을 펼치고 머리를 숙여 겨우 겨우 목메며 먹을 때,
"어디서 방귀 냄새 않나냐?"
눈이 마주쳐 입 한가득 뭘 씹고 있는 모습을 봐도 인자한 웃을 지으시며
"맛있냐? 천천히 먹어라 체할라."
라며 혼내기보다 '얼마나 배고프면 저럴까'를 생각해 주시던 선생님이셨다.
우린 좋은 환경에 살기 위해 공부를 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좋은 대학 가서 좋은 회사에 취직해야 하고,
좋은 배우자 만나서 좋은 가정을 꾸리며 살아야 한다.
그게 정답일 수 있다.
좋은 가정,
좋은 남편과 부인
좋은 아빠, 엄마가 되기 위해 해야 하는 노력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런 정답을 향해 가지 못하는 수도 있다.
열심히 했지만, 좋은 대학에 못 갈 수도 있고,
좋은 대학이 아닌 대학에 다니다 보니 좋은 회사, 원하는 회사에 취직이 못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좋은 가정을 만들지 못하는 게 아니고,
좋은 남편, 부인이 되지 못하는 게 아니고,
좋은 아빠, 엄마가 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내 환경에 맞게,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있지만,
머리가 좋지 못해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있지 않다.
머리가 안 좋은 게 아니라 다른 곳에 흥미가 있고, 재주가 있기에 주입식 공부가 되지 않는 것이다.
손재주가 좋아 이것저것 손만 대면 만들어 대는 사람,
목청이 좋아 그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 만으로 행복해하게 하는 사람,
사교성이 좋아 금방 사람들과 친해져 그 주위가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사람.
여러 방면으로 자신의 재주를 내 보일 수 있는 일은 수천 가지, 수만 가지가 있다.
아는 사람이 몇 년 전에 하는 얘기를 들었다.
"방송국에 새로운 pd가 왔는데, 제일의 S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맡는 프로그램인 거 같은데..."
라며 말을 흐렸다
"왜?"
"그 프로그램이 아이돌 음악프로그램이야. 박자를 못 맞추니 계속 실수하고 구석으로 가서 손가락으로 박자 튕기더라고. 보니 공부만 한 사람 같아서, 고생 좀 하겠어."
또 어떤 날 택시를 탔더니 기사님은 묻지도 않는 말을 하신다.
"제 아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군대를 갔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때는 그게 얼마나 속상했는지 대학을 가야 하는데 말을 듣지 않더라고요."
"...."
"근데, 군대를 제대하고 알바를 하더니 목돈이 조금 모였는지 가계를 하나 차렸습니다. 과일 가게를 차렸는데 그게 장사가 잘되요. 손님들도 많고, 그놈은 뭐가 돼도 될 거 같아요. 허허허 허"
"자랑스러우시겠어요. 기사님"
"허허허 허"
연신 웃으며 자식 자랑을 하시던 기사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고, 내가 원하는 일 하는 사람 그리 흔치 않다.
그렇게 서서히 배워 나가고 맞춰 나가는 것이다.
그 pd는 그렇게 구석에서 혼자 연습을 거듭하고 음악의 흐름을 파악해 나가며 서서히 잘했다고 한다.
택시기사님의 아들은 공부에 소질이 없는 걸 알고, 빨리 군대를 갔다 와 제대를 하고 열심히 돈을 모아 가계를 차린 젊은 사장님이 된 것이다.
원하는 게 있으면 지금 내 손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노력하면 언젠가는 나에게 들어오게 되어 있다.
조급해하거나, '왜 내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 거야?' 라며 포기하는 사람은 그 기회가 와도 기회를 받지를 못하거나, 기회가 왔는데 그걸 모른다.
우리 인생에 '밑줄 쫙'은 무엇일까?
열심히 선생님 말씀에 이 색깔, 저 색깔 쳐 가면서 별표 한득을 칠했던 노트처럼,
내 인생의 밑줄은 언제 쳐져 있고, 별표가 되어 있을까?
미래에서 왔다면 그 노트 하나 들고
지금의 내 인생이 달라지게 만들 수 있을까?
"이때가 너에게 정말 중요했던 날이야. 잊지 마!"
밑줄 쫙! 별표.
내 인생에 중학교 선생님이 밑줄 쫙! 쳐져 있는데,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밑줄이 쳐져 있는 인생을 살고 있을까?
밑줄은 그 강도에 따라서 색으로 강조하고, 굵기로 강조하고, 기형으로 강조합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강조에 강도를 더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밑줄을 치고,
그 밑줄 친 내용을 이해하고 정답을 알기 위해선 그 밑줄의 앞, 뒤 이야기도 알고 그 흐름을 알아야 정답을 맞힐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밑줄의 강조는 그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앞, 뒤,
전, 후의 내용과 함께 서서히 맞춰야 내 인생의 밑줄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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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을 공부하고 쓰고 있습니다.. 소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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