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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Nov 12. 2024

흑룡이 다리를 다쳤다.





경상북도 팔공산에 가면 '갓바위'라는 부처님이 계신다.

머리에 갓을 쓰고 있어 대학 시험생들의 부모님이 밤 낮 없이 그곳에서 기도를 올린다.



'그곳에서 기도를 올리면 꼭 하나는 이뤄진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남편과 천천히 출발했다.

도착해 중간에 밥을 먹으니 날이 벌써 어둑어둑 해져 다음날 아침에 올라가기로 하고 팔공산 근처에 방을 잡으려 돌아다녔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기도터'라고 쓰인 팻말이 보이고 산의 기운을 입어서 인지 스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람하나 보이지 않고, 도로에는 가끔 한대의 차만 지나갈 뿐, '길을 잘못 들었나?'라는 생각이 들어 점점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무서웠다.


"여보. 그냥 보이면 들어가자."

"아니 근처에 어떻게 모텔하나도 없냐?"


이리저리 차를 돌리며 돌아다니니 어둑했던 길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아. 그냥 아무 데나 잡으라고."

인적하나 보이지 않는 길을 계속 다니는 게 무서워졌다.

아무 말 없던 남편은

"저기 불빛이 보는데 저기라도 갈까?"

"그래 그래."

깜깜한 곳에 깜빡깜빡하고 환한 빛도 아닌 얼핏 보면 지나칠 만큼 작은 불빛을 찾아 그곳으로 갔다.


옥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려고 주위를 보니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뭐야."

"얼른 들어가자."

방 키를 들고 들어선 낯선방은 밖의 기운을 고스란히 담듯이 따뜻한 온기가 없었다.

"여기 좀 이상하다. 어떻게 사람이 없는 거 같아. 우리말 고는..."

"그러게."

"잠이 올 거 같지도 않다."


조그만 소리에도 깨여 예민하게 그렇게 잡을 청하니 어느새 새벽이었다.




넓디넓은 하늘에서 아래 땅을 바라봤다. ,

날카로운 등성을 갖고 있는 산은 구름 사이에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야?"

나는 하늘을 날며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날듯이 이곳저곳을 헤매였을 때,

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곳을 바라보니 커다란 흑룡이 있었다. 

처음 보는 흑룡이었다.

산에서 흑룡은 다리를 다쳐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날개짓을 여러번 해도 날지 못했다.

산을 등받이 삼을 만큼 용은 컸고, 온통 검은색이었다.

그 용은 다리를 다쳐 날지 못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난 하늘을 날다 그 용을 보게 됐다.


'다리를 다쳐 하늘을 날지 못하는 검은 용.'


하늘을 향해 슬픈 표정을 짓던 용을 바라보다 같이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눈을 떴다.



아침.

'별 희한한 꿈을 꾸네. 명산기운을 받아 그런가?'

대수롭지 않은 생각에 TV를 틀고 욕실로 씻으러 갔다.

그리고 나와 머리를 말리려 움직일 때, 뉴스에서 속보가 뜨고 있었다.


"전 대통령 서거"


'서거? 누가? 서거?'

그때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뉴스 봤어? 이게 무슨 일이니"

엄마는 뉴스 속보를 보고 전화를 하신 것이다.

엄마의 전화에도 믿기지 않았다. 누가 죽었다는 거지? 왜 죽은 거지? 갑자기?

오만가지 생각이 났다.


"노무현 전 대통의 서거"


머리를 말리면서도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자리 잡는 단어는 "왜?"였다.

그리고 "어떻게?"

그리고 "정말?"

머리에 꼬리를 물듯이 궁금증은 더해졌다.


팔공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주차를 할 때도 그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힘든 등산을 시작했다.

이렇게 힘들게 올라가니 내 소원은 이뤄지겠지. 갓바위에 다다르니 거의 기다시피해 올라가야 했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기도터에  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저 많은 사람들은 힘들지도 않나? 어떻게 저 길을 다 올라와서 기도를 할까? 음? 저렇게 나이 드신 분도 올라와서 기도를 한다고?'

드문 드문 흰머리의 나이 드신 분들도 계셨다.

나는 자리를 잡고 머릿속을 비우며 소원 생각하며 절을 하기 시작했다.

108번의 기도를 마치고 다시 한번 합장을 하고 초를 올리려 함 앞으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초로 가득했다. 가족의 초를 하나하나 사서 이름을 올렸다.

아침 내내 내 머릿속을 채우던 분의 초도 하나 사서 같이 올렸다.

그때, 머리 위로 한두 방울의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리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신 분들이 우루르 오셨다.

다른 한쪽에 케이블이 있는지는 정말 몰랐다. 케이블카가 있는지 알았다면 힘겹게 산을 타며 남편과 투닥거리지도 않았을 텐데...


"그렇게 힘들게 산을 올라 기도를 했으니 그 기도는 잘 이뤄질 겁니다."

나중에 내 하소연을 들으신 스님의 말씀으로 위안을 삼을 정도였다. 

정말 힘들었다.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하산의 길은 쉬웠다.

주차장에서 차를 타기 전 텁텁했던 마음을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여기서 봉하마을이 멀어?"

"어 좀 되지."

우린 팔공산에서 전주로 가기로 계획을 했었다. 그곳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그럼 봉하 들렸다 전주로 가면 돌아가는 건가?"

"왜?"

"아니 자꾸 아침 꿈이 걸리네."


산에서 다리를 다친 흑룡이 하늘을 날지 못해 슬픈 눈으로 하늘을 바라본 모습.

"그럼 가. 들렸다 가지 뭐."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고, 계획을 미뤄 봉하로 가야 하는가? 가면 무엇이 있을까?

"그냥 전주로 가자."

망설임 끝에 우린 전주로 갔다.

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계속 나오는 속보에 귀를 기울이며 망설이던 마음은 계속이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에 난 경상북도 팔공산에 있었다.

기도를 하겠다며 갔던 날 아침에 들었던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그 뒤로도 계속 내 마음에 구멍이 나듯이 아팠다.

내가 그날 기도를 마치고 봉하마을로 갔더라면 밤을 새워 그곳으로 향했던 사람들과 함께였을 것이다.

밤이 되어 장대 비를 맞으며 국화 한 송이를 바치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린 사람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대통령의 서거에 맞춰, 그 시간에 맞춰, 그 산이라는 공간이 맞춰져 난 그 용이 대통령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더욱더 가슴이 아팠는지도 모른다.




(노무현 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우린 가슴에, 생활을 하며 많은 아픔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가슴에 슬픔을 안고 있어 어디서, 어떻게 그 슬픔을 표현해야 할 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슬픔에 내 슬픔을 더해, 많은 슬픔이 됐는지 모른다.


엄마는 지금도 얘기하신다.

아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정말 막막한 생각에 TV를 보고 있는데 동생이 전화로 '대통령이 죽었다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하는 그 말에 엄마는 가슴에 있던 아픔과 함께 울음이 통곡이 되어 나왔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통곡에 이모 또한 놀라셨다.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또 걸어도 줄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노란색쪽지로 물든 담벼락은 사람들의 가슴 아픈 한마디 한마디에 아픔을 보며 줄을 섰다.

몇 시간을 그렇게 서 있어도 지루하거나 마음이 조급하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심난하고 가슴이 아플 뿐... 조용히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몇 시간을 그렇게 줄을 서서 영정 사진 앞에서, 

여러 명과 함께 사진을 보고 엎드려 절을 올리니 울컥하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무엇의 눈물이었을까...


누군가의 인터뷰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이 많은 추모객 중 10%만이라도 그를 알아줬으면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야."


뒤늦은 후회였다.

그분을 믿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난 그 꿈을 생생히 기억한다.

꿈은 해몽이라고 했던가?

하필 그날 다리를 다친 흑룡의 꿈을 꿨고,

그리고 그 새벽에 대통령님은 서거를 하셨다.

나에겐 그 흑룡은 노무현 전 대통령님이 됐고,  다리를 다쳐 날지 못해 슬픈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대통령님이 됐다.

그래서, 아마 그래서 더욱더 마음이 아픈 것이다.

살면서 수많은 꿈을 꾸고 살지만 내 기억의 2009년 5월 23일의 꿈은 죽을 때까지 남아 있을 꿈이다.




다리를 다쳐 날지 못한 흑룡은 하늘을 훨훨 날아갔을까?

아님 아직도 그 자리에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 젖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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