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 자식을 낳고 사는게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그것이 전부인 사람도 있다.
남편이 있으면 부인이 있고, 부모가 있으면 자식이 있듯이
남편을 대하는 부인은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고 자식을 대하는 엄마 또한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한다.
어느 드라마를 보는데 남편이 시어머니를 챙기는 모습에 질투를 느끼며 남편을 타박하는 며느리가 있었다.
그리고선 자신의 아들이 출근할 때 "차 조심해라. 늦지 마라."등 배웅을 하는 모습을 보고 남편이 혀를 차며 뭐라 한다. "당신이 아들 배웅을 하니 며느리가 저만치 서서 남편 배웅을 못하잖소. 그렇게 부인 노릇도 하려 하고, 엄마 노릇도 하려고 하오" 했다.
그 대사가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 한참을 생각하게 했다.
결혼했으니 남편도 내가 챙겨야 하고 나만을 봐라바야하며, 자식도 내가 낳았으니 내가 챙겨야 하고 내 수고를 아들이 알았으면 하는것이고...
내가 내 자식챙기는데 누가 뭐라해? 할수도 있을것이다 .
내가 내 자식 챙기듯, 부모님도 자기 자식을 챙기는 것이다.
자식 걱정은 죽어서도 한다는데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고 그 걱정이 사라질까...
어느 70대 노인이 90대 아버지께 말한다.
"아버지 저 시내 나갔다 오겠습니다."
"아가 차 조심하거라."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자식은 자식이다.
요즘 핫한 드라마 중에 남자 하나 보고 결혼했는데, 그에 따른 부작용을 얘기하는 드라마가 있다.
'왜 결혼하면 시댁 대소사 일에 쩔쩔매야 하나. 시댁 식구들은 왜 그렇게 어려운 얘기를 당연한 듯이 얘기해야 하는가? 서로 사랑해서 했는데 결혼했는데 왜 결혼하고서 더 힘든건지...
왜 결혼하면 여자가 그 모든걸 다 해야하는가.'였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의 표현에 인색하지 않다.
시대는 변했고, 사람도 변하기 마련이다.
자식 아홉낳던 시대는 가고, 하나 낳아 잘길러 보자는 시대다.
자신의 감정보다는 가정의 불화를 걱정했던 우리 부모님세대와, 가정불화보다는 자신의 감정이 우선이된 요즘세대가 어우려지려면 각자 많은 자제력이 필요하다.
사람은 자리에 연연해하지 말아야 한다.
떠나야 할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자리는 아름답다는 말처럼,
며느리를 보고 사위를 보는 나이가 되면 서운한 것이야 어디 말로 다할까!
자식을 낳고 고이 길러 짝을 찾아주는 것이 끝나면, 그 자식들이 잘 살기를 기원하며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이래라 저래라 나때는 그렇게 않했다." 그건 참견과 간섭이된다.
엄마 노릇에 손을 떼고, 남편을 향해 부인 노릇만 하면 된다.
내 자식에게도 부인과 남편이 각각 생기는 것이니 그들에게도 부인노릇도 하고, 남편노릇도 하게 자리를 내어주면 시원할 것을...
행복하자고 결혼하는 거지, 싸우려고 결혼하지는 않는다.
곧 명절이 다가온다. 코로나 시대에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만 않가기도, 오라고 하기도 서먹해지는 명절이다.
작년 추석에는
"오지 말래도 올끼라."며 인터뷰하는 나이 지긋이 드신 어머니 봤을때, 오지 말래도 당연히 올거라는 대답은 자식의 대답을 들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원이였다. 자식 보고 싶은 심정이야 어디 견줄까.
부부가 가냐 않가냐로 싸우지 말고, 며느리 노릇은 저만치 접어두고 서로 좋은 맘으로 상의하에, 얼굴 붉히지 말고 서로가 원하는걸 알아주면 어떨까.
시대는 변했다고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만을 갖고 살면 어떨까. 피만 섞였다고 가족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에 있으면 가족이다. 내가 원하는 것만 말하지 말고 상대가 뭘 원하는지를 알면 절대 싸울 일이 없듯이... 올 설명절에는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명절이였으면 한다. 우울을 넘어 화나는 코로나를 1년 겪으며 내가족이 최고인듯이
부인이 최고고, 남편이 최고고, 아빠가 최고고, 엄마가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