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
추사 김정희는
"가슴속에 만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
소설가 황순원는
"되읽고 싶은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챙기고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중국 시인 두보는
"만권의 책을 독파하면, 귀신처럼 붓을 놀릴수 있다."
요즘 같아선 한달에 한권의 책도 못읽는데, 어찌 만권을 읽을수 있을까...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이 더 편하고, 귀로 듣는 책보다는 눈으로 읽는 책이 익숙한 세대다.
종이책을 읽다 책갈피를 껴놓고 책을 덮어 어디까지 읽었나, 뒤로 갈수록 뭔가 뿌듯하면서도 서운한 감정이 들던 때가 있었다.
읽어간 페이지만큼 에너지가 쌓이는 느낌이고, 좋아하는 책을 이제 다 읽어 간다는 서운한 감정...
20대 때 지하철로 출, 퇴근을 할때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손에 책이나, 신문이 들려져 있었다.
가방 속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읽으려는 책을 꺼내 읽는 사람과, 지하철 입구에 작은 무료 신문을 읽는 사람과 가판대에서 산 큰 신문을 쫙~펴서 읽던 이와,
신문을 4번 접어 뒤집어 가면서 읽던 사람들...
하지만, 지금은 대중교통에서 종이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저마다 손에 핸드폰을 들고 각자 보고 싶은 취미를 찾아 즐긴다.
어쩌다 책을 들고 읽는 사람을 발견하면 반갑기도 하고,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틈틈히 읽던 책은 한 달에 두권정도 나왔다.
그렇게 읽은 책은 책장에 넣어놓고 서점을 가서 다음 읽을 책을 고른다. 그러다 보면 사려던 책과 다른 분야의 책도 사오게 마련이었다.
그렇게라도 책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책장에 읽던 책이 자리를 잡고, 한번씩 꺼내 다시 읽어 내려가던 때...
조금씩 차던 책장은 점점 수척해졌다.
새로 들어오는 책은 없고, 나가는 책이 있다 보니... 책장은 공간이 비기 시작했다.
종이책은 아날로그,
전자책은 디지털이겠지만,
나는 왜 종이책이 좋을까.
느려도 좋고, 불편해도 좋다.
그 감성이 좋다.
만권의 책을 품어야 귀신처럼 붓이 나간다 하는데... 만권의 책을 읽지 않아서일까... 머릿속은 백지처럼 비어있고, 키보드는 치다 말다, 치다 말다를 반복하게 된다.
세종대왕은 '백독백습'을 하며 책을 사랑했고, 가리지 않고 읽는 습관에 많은 분야에 지식을 습득하게 됐다.
그런 모든 지식으로 인해 많은 발전을 이루고, 그 발전을 기반으로 후세대는 생활하고 있다.
모자란 지식으로, 모자란 생각으로 남을 이해시키고 공감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간을 탓하며, 환경을 탓하며, 입으로만 '책 좀 읽어야 하는데'가 아니라.
손 닿는 곳에 책을 두어
한장, 한 페이지, 한 줄이라도 읽어야 예전의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것 같다.
'책 읽을 시간이 없으면 만기지기라도 하라. 쓰다듬고 쳐다보기라도 하라'는 처칠의 말처럼
책은 가까이 눈으로, 손으로 한장 한장 넘기며, 펜으로 줄을 쳐가며, 읽은 자리가 보이고, 남은 페이지수가 보이는 종이책을 다시 찾아야겠다.
배그보다 테트리스가 손에 익숙하듯이
나이는 어쩔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