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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Jul 21. 2020

할머니의 마루

항상 그 자리에 앉아 하루를 보내시는 맘 좋은 할머니.

 


할머니. 

외할머니께 가는 시간은 차로 4시간 정도면 족하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바로 동네 이름이 보이고 지역의 터미널이 보이며 상가들이 즐비한다.

근처에 큰마트가있어 할머니께드릴 간식이며, 과일, 음식, 그리고 요구르트를 한아름 두손 무겁게들고 다시 출발, 터미널에서 15분 꼬불거리는 도로를 달리면 시원하게 펼쳐지는 논,밭이 보인다. 

빌딩숲에 사는 세계와는 달리 뻥 그곳의 풍경은 그 자체로 자유를 준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멀리서 동네 입구가 보이기 시작하고 엄마는 벌써 내릴 준비를 하고계신다. 그리고 그 자리를 보면, 역시나

어김없이 할머니는 그 자리에 앉아 계신다.

마루... 그 자리에 앉아 나갔던 자식을 맞이하시고, 나가는 자식을 배웅하신다.


시집 올때부터 지내셨던 그곳은 300년이 다되는 집이라 필요때마다 조금씩고쳐 지금의 집이됐다.

지금껏 그 한리를 지키고계신 할머니.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으시며 생사를 넘나드신 산증인이시다.

그렇게 그 집은 할머니와 함께 지나온 과거와, 현재의 안식처였다.


할머니 생신이라 이모, 삼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의 모여 대가족으로인한 집안은 시끄러워진다.

9남매. 4남 5녀 중에 엄마는 장녀시다.

그곳에서 태어났고, 자라온 집에오니 엄마는 너무나 편해 보이셨다. 


저녁 5시부터 시끌벅적한 밥을 먹으며 오랜만에 모인 회포를 음주로 즐기시고, 8시30분 드라마를 보시고 9시 뉴스가 끝나면 자려고 불을끈다.

가로등 불빛도없고, 네온사인도없는 시골은 깜깜한 암흑이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은은한 달빛이 비치면 그제야 어둠이 눈에 익어 주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불꺼진 방안에는 가운데 할머니를 두고 이모들이 누워 옛이야기를 시작하신다.

피난길에 둘째이모가 어찌나 울던지 동네사람 다죽일까 강다리 위에서 포대기를 풀을까 망설이셨다는 얘기에 엄마랑 이모들은 소리내어 웃으신다.

거기에 영화 보고싶어 집에 있던 도자기며, 보리쌀이며 할머니 몰래 가져다 팔고 극장갔다 집에 못들어온 사연에 ‘그땐 왜 그랬을까’하며 엄마랑 이모는 아가씨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운 회상을 하신다.


"칙! 칙! 칙!"

새벽 4시반부터 압력밥솥 돌아가는 소리에 눈은 저절로 떠진다.   

할머니댁에 있으면 하루가 너무나 길다. 해도 뜨지않은 아침은, 참 많은 일을 하며 시간이 지나겠거니 해도 

아침 9시. 

보이는 거라곤 문열면 보이는 논, 밭이 전부인 시골이다.


이모들과 삼촌들은 근처 사는 막내이모 밭 도와주러 나가셨고, 

할머니와 마루에 앉았다.

할머니의 시선으로 그 자리에 앉아 가만히 주위를 봤다.

할머니는 뭘 보고 계시는걸까?


그때 멀리 파란트럭 한대가 마을을 나갔다.

“아랫골 수성이네 오늘 양파모종 가지러 가나보다.”

“응? 할머니 저차 누구네 차인거 알아요?”

“그럼 알제.” 멀리 차번호도 않보이는데 언덕길로 올라 마을을 나가는 차가 누구네 차인지도 알다니…

그때 자전거를 타고 마을로 들어오시는 한분이 보였다.

“뒷골 만복이네 들어오는구먼.”

저절로 웃음이 났다. 할머니의 하루일과는 본인만의 하루가 아니신거 같다.

마을 이곳저곳의 사람들의 일과를 다꿰뚫고 계시니...


“할머니. 9남매중에 제일 걱정인 자식이 누구요?”

질문에 할머니는 웃으시며

“그런게 어딨냐. 다같은 자식인데, 똑같아.”

“그래도 열손가락중 물면 아픈손가락은 있지?”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던 내게 할머니는

“셋째”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누굴 제일 걱정하는지…

셋째 삼촌…

젊은시절 오토바이 사고로 병원에서 죽는다고 했을때, 할머니가 삼촌을 전국 좋다는 곳은 다 다니시며 살리셨다는 엄마의 말을 들은 적이있다. 완치를하고 지금 나이 60이 넘었는데 걱정이 되는건 어쩔수 없나보다.

“알고 있었어요.”

“어찌 알아?”

“할머니 얼굴만 봐도알지.”

할머니의 주름진 손을 가만히 잡았다.


밭에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는 삼촌과 이모들이 타고 오실 차를 할머니와 함께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오늘은 할머니의 자리에 앉아 자식을 배웅하고 맞이하는 마음이 어떤지... 느껴보고 싶었다.






3일의 시간은 가고 이제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야 할때.

검은콩이며 참기름, 깨를 객지사는 자식 5명에게 골고루 똑같이 담아 가라고 미리 준비해두신 비닐을 가방 가득 싣고 차에 시동을 건다.

“엄마 또 올게요. 건강하셔야 해요.”

마루에 앉아계신 할머니 손을 엄마가 잡았다.

“이제 가면 내 살아 니얼굴 볼수 있을까?” 처음으로 할머니가 약한 소리를 하셨다.

이제껏 배웅하면 "조심히 가라. 건강해라."가 전부셨는데...

“그럼, 건강만 하세요. 두달있다 다시 올게요. 식사 잘 챙기시고…”

말끝이 흐려졌다.

손수건으로 눈을 닦으시는 할머니를 보시고 엄마도 같이 우셨다. 이렇게 가족들이 왔다 가도 우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그 모습에 가족들은 모두 숙연해지고 돌아서서 울기도 한다.

“어여 가라.” 하시면서도 엄마 손을 놓지 않으신 할머니를 셋째 삼촌이 안아드렸다.

“어머니 또 올게요. 건강하세요.”

삼촌의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하나, 둘...  차는 출발하고 창문을 열어 할머니에게 또 인사를하면 같이 사시는 큰삼촌이 걱정말고 빨리 출발하라고 연신 손을 흔드신다.

“네 할머니 맘 약해지셨다.” 

할머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창문으로 손을 흔들던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 말이 뭘 염두에 두고 하신말인지... 

엄마는 알고 있었나 보다. 엄마는 눈물을 계속 훔치시며 뒤돌아 다시 한번 고향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2개월 뒤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셨고 5개월 뒤 돌아가셨다.

할머니 나이 93살, 엄마 나이 74살이셨다.

할머니를 선산에 모시고 집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할머니가 계셔야 할 자리가 비어있었다.

주인을 품던 마루는,

주인을 잃고 너무나 커져버렸다..

그곳에 항상 앉아 자식의 오고 가는 모습을 보시던 할머니, 지금도 돌아서면 할머니가 손을 흔들며

"조심히 올라가라." 하실 것만 같다.

할머니가 앉으셨던 자리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할머니를 할아버지 옆에 모시고 온날은 할머니의 바람대로 구름한점 없이 화창했다.


작은소녀 같던 할머니,

9시 뉴스 자막도 다읽시던 눈좋은 할머니,

식사후에 항상 입가심으로 요구르트를 드시던 할머니,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지않아 니들 줄게 별로없다 서운해 하신 할머니,

“나 죽을때 날씨 덥거나, 추우면 니들 고생스러워서 어쩌냐” 자신보다 자식 고생할까 걱정하셨던 할머니…

하늘에서도 할머니 자리가 있어 그 자리에 앉아 남은 자식들 걱정하시며 조용히 웃고 계실것만 같다. 








동네회관 가면 연락이 안된다며 걱정하신 엄마를 대신해 핸드폰을 할머니께해드렸다. 그때 할머니의 대답에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했었다.


“할머니 핸드폰 하나해서 보내드릴게요. 하고 다니실 거예요?”

 “동네 개나, 소나 목에 다 하나씩 차고 다니더라.”

(개나 소나 다 목에 차고 다니는데, 난 그게 없다. 어여 보내라.)

"넵!!"


유쾌한 우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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