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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Jul 22. 2020

검정 갓

초등학교 하굣길.

5명의 아이들은 tv에서 방영 중인 만화 주제가를 신나게 소리 내어 부르며 가고 있었다.

"비바람 몰아쳐도 이겨내고,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삘릴리 개굴개굴 삘릴리야~~"

육교를 지나 골목으로 접어들면서 큰길은 작은 길로 좁아지고 5명은 갈라져 앞에 2명, 뒤에 3명이 뒤따라갔다.

지나는 사람도 1~2명 정도.

5시를 넘으면서 날은 저물어 금세 어둑어둑 해졌고,

앞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나는 저 멀리 걷는 남자를 봤다.

엄청 큰 어깨는 각이져 있었고, 검정 옷을 입고 있었다.

저렇게 덩치 큰 어른을 본 게 처음이라 신기했지만 더욱 호기심이 생긴 건, 평소에 보지 못한 검정 큰 모자를 썼기에 나는 그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같이 부르던 노래도 멈추고 남자에게 계속 시선을 거두지 않고 가는 길을 계속 봤다.

"우리 동네에 저렇게 큰 아저씨가 있나?"

옆에 친구들은 다른 노래를 부를 참이었다.

"다음 뭐 부를까?"

"애들아 저 사람 너무 무섭게 생기지 않았어? 무섭게 크다."

친구들은 내가 보고 있는 시선을 따라 그곳을 봤다.


"누구?"

"저 사람! 저기 있잖아."

손가락으로 그 남자의 위치를 가리켰다.

"누구?"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곳을 봤다.  



정적-



그때 한 아이가 소리쳤다.

"야! 그만해! 무섭잖아."

거의 울듯한 표정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성화에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 남자를 봤다.

'내가 이상한 건가? 왜 애들은 못 보지?'

그때 남자가 멈추는 듯하더니 오른쪽 샛길로 걸어갔다.

나는 용기를 내 '어두워서 안 보이는 걸 꺼야. 가까이 가면 보이겠지.'

오기가 생겼다. 거짓말쟁이가 되기 싫은 마음이다.


"날 따라와 봐!"

나는 앞서서 그 남자가 사라진 샛길로 따라 들어갔다.

그때 다른 한 친구가 내 옷깃을 잡아 못 가게 붙잡았다.

"우리 그냥 집에 가자. 나 무서워"

나도 무서운데 그냥 못 본 척하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찰나

"봐! 봐! 뭐가 있는데. 너 일부러 그런 거지!" 다른 한 아이가 나를 자극했다.

"이 씨! 거짓말 아니야."

"그럼 가봐!"

사이좋게 손잡고 노래 부르며 하교하던 아이들은 의견이 갈라졌다.

"먼저 가봐. 우리가 따라갈게."


패기 있게 맨 앞에서 한걸음 한걸음 그 남자가 사라진 곳으로 들어서니 그곳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에 무서웠다.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하지? 도둑이면? 아... 무섭다.


날은 더욱 어두워져 깜깜했다.

뒤에 오는 아이들은 허풍 떨지 말라면서도 무서운지 서로 팔을 잡고 4명이 딱 붙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막힌 골목은 가로등도 없어 더욱 어두웠고, 다가가기가 무서웠지만 겁쟁이가 되지 않으려 발바닥에 힘을 주고, 언제든 도망갈 수 있게 몸을 1/3은 틀어 천천히 그 어두운 곳으로 갔다.


그때,

노란빛이 눈에 들어왔다.

빛에 힘을 얻고 더욱더 깊게 들어갔다.

"야~ 그만 가~"

뒤에 한 아이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말했다.


가까이 갈수록 노란빛은 점점 커지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어두운 곳에도 밝게 빛나던 그 빛은 등이었다.

문 앞에 걸려 있는 등.

그때 한옥 집 대문이 열리고 한 아줌마가 작은 상을 문 옆으로 놓고선 서서 기도를 했다.

그리고 들어가다 말고 우리를 발견했다.

"애들이 거기서 뭐해? 어서 집으로 가~ 여기 오는 거 아냐! 큰일 날려고"

들어가려는 아줌마에게 급하게 말을 걸었다.

"여기 뭐 있어요?"

"있긴 뭐가 있어. 여기 할아버지가 조금 전에 돌아가셨어. 그러니 니들은 어서 집으로 가."

그리곤 다시 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야~아무도 없잖아."

"그래도 할아버지가 죽었다잖아. 무서워. 집에 빨리 가자."

아이들은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듯 오던 걸음걸이보다 빠르게 나갔다.

"뭐해! 빨리 와."

한 아이가 그곳에 남아 아줌마가 놓고 간 상을 보고 있는 내게 소리쳤다.

"알았어!"

나도 그곳을 빠져나갔다.





저녁..

 tv에는 '전설의 고향'이 방영되고 있었고,

옆에서 콩나물을 다듬는 엄마께 말을 걸었다.

"엄마 나 저 사람 본거 같아. 근데 저렇게 작지 않고 키가 엄청 크고 어깨가 이렇게 넓고 검정 모자 쓰고 정말 무서웠어." 내 말에 엄마는 tv를 봤다.

"뭘 봤다는 거야?"

거기에는 저승사자가 있었다. 엄마는 피식하고 웃었다.

"네가 저 남자가 뭐하는 사람인 줄 알고 봤다고 하는 거야? 네가 저 남자를 봤으면 지금 엄마 앞에 없지."

"진짜야!" 나를 믿지 않는 아이들처럼 말하는 엄마가 서운해 소리쳤다.

"어디서 봐? 어디서 봤는데?" 엄마는 웃고 계셨다.

"아까 연쇄점 옆골목 막다른 집! 거기로 들어가는 거 봤다고!"

내 말에 엄마는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오늘 거기 할아버지 돌아가셨는데..."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데 봤어. 골목으로 들어가는 거 봤어. 그리고 없어졌다고!"

흥분해서 하는 내 말에 엄마는 말이 없으셨다.

"그 집에서 아줌마가 상에 신발이랑 돈 올려놓고 들어가는 것도 봤어."

믿는 거 같은 엄마의 표정에 신나서 나는 그때 일을 얘기했고,

얘기를 다 들은 엄마는 한마디 하셨다.


"얼른 자! 일찍 자야 키가 크지."

그리곤 돌아앉으시며 혼잣말로 말씀하셨다.

"뭐야. 저승사자를 본 거야?"


초등학교 3학년 하굣길 골목에서 만난 그 덩치가 산처럼 크고 어깨가 각이 져서 커다랗고, 하체가 거의 보이지 않게 희미했으며, 그림자처럼 생긴 검은 갓을 쓴 남자를 본 후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에 대한 벌이였을까...?


난 3년 동안 죽을 비를 두 번 겪어야 했다.

강에서..., 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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