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고2였다. 한참 사춘기에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아 엄마는 걸어 7분 거리인 근처 이모할머니 댁 주택에 월세로 방을 얻어 그곳에서 생활하게 했다. 이모할머니 댁은 개인주택으로 3층이었다. 1층은 이모할머니가 사시고, 자녀 1남 2녀 방 하나씩 주고서도 남은방 3개를 월세를 주셨고, 2층도 3개의 방을 월세에 3층은 옥상이었다.
개인주택이라 해도 제법 큰 사이즈였다.
"희수야. 희수야~. 희수!!"
대답이 없자 엄마의 말끝에 언성이 높아졌다.
"왜?"
"오빠한테 이거 갖다주고와."
엄마는 부침개 10장은 되보이게 쌓인 큰 접시를 내밀었다.
"아~ 또!"
"갔다오라 했다."
접시를 잡고 있던 엄마는 눈썹에 힘을 주며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배 깔고 만화를 읽고 있던 나는 그런 심부름이 반갑지 않았다.
"조심히 들고가. 엎었다가 니가 혼나."
"와서 먹으라해!'
"오빠 친구들 온다 했잖아. 지금 와있을꺼야. 얼릉가."
열려있는 대문을 통과하면 위태 위태한 철로된 층계를 올라 2층에 있는 오빠방 앞에 섰다. 이미 친구들이와 있는지 신발들은 이미 제각기 흩어져 한 짐을 이루고 있었다.
"오빠"
대답이 없었다.
"오빠!"
문이 열리고, 오빠 친구중 한명이 문을 열었다.
"어? 희수네"
방문 사이로 5명은 되보이는 인원이 그 좁은 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왜?"
통명스럽게 오빠가 말했다.
"엄마가 이거 갖다주래."
접시를 내밀자 방문을 연 오빠친구가 그 접시를 받았다.
"배고팠는데, 잘됐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가봐"
오빠는 접시에 모여든 친구를 보고선 방문을 닫았다.
그곳은 오빠 친구들 아지트와 같았다. 방이라고 해봤자 공부하라고 엄마가 책상 하나와 작은 장롱, 침대도 매트리스만 갖다 놓은 작은 방이었다. 집에서 그리 떨어지지도 않았고, 학교에서도 전교회장을 하는 오빠가 잘못될까 노심초사한 엄마의 배려였다. 친구들도 다 공부 잘하고 착한 아들들 이라고 방을 얻고 찾아오는 친구에 대한 불신은 없었다.
그런데, 그방은 다 좋은데 한가지 않좋은게 있었다. 유일게 창문이 하나 있는데 그 창문의 크기가 벽의 반을 차지했다. 큰 창문을 열면 바로 벽돌 벽이었다. 벽돌도 빨간 벽돌이 아닌 성문벽 같은 불규칙한 크기의 돌을 쌓아 만든 벽... 창문은 있으나 마나로 그저 보여주기식처럼...
오빠는 저녁시간에 찾아와 밥을 먹으며, 옥상에 대한 얘기와 막내이모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엄마한테 얘기했다.
"뭐?"
"저녁이면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니까요."
"무슨 소리?"
"누가 우는 소리도 들리고, 사람들끼리 말하는 소리도 들리고, 어떨때는 한 20명이 되는 사람소리도 나서 공부집중이 않될때가 있고, 그 시간에 누가 거길 가는지... 며칠 전에는 그 막내 이모가 옥상으로 올라가서 소리치던데? 나오라고."
"막내 영미가?"
"어제 늦게 공부하다 졸려서 문밖에서 기지개를 피고 있는데 막내이모가 옥상으로 올라가길래 늦은 시간인데 왜 그곳으로 가나 하고 따라가봤지. 근데 여기 저기 왔다갔다하더니 누구보구 나오라고 막 소리치길래 무서워서 내려왔어요."
"그리고는?"
"한 20분 정도 됐나? 내려오는 소리 들리던데?"
그 소리를 듣던 엄마는
"영미한테 물어볼게. 넌 절대 옥상으로 올라가지마. 알았지!"
엄마말에 오빠는 고개만 끄덕거리며 마저 남은 밥을 먹었다.
오빠말은 그랬다.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다 보면 12시를 넘길때가 있는데, 항상 11시만 넘으면 한층 위 옥상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그 저녁 아무도 없는 시간에, 그래서 친구들 한명씩 와서 같이 자고 간다고...
그리고 며칠 뒤...
오빠 방에 두고간 책좀 갖다 두라는 엄마의 심부름에 자취방으로 갔다.
고등학생이라 초등학생인 나보다 늦게 오는 덕에 그 방은 비어있었다.
책상에 오빠 책을 꽂아 넣고 잠깐 침대 매트리스에 앉아 라디오를 틀었다.
'잠깐 쉬었다 갈까'
라디오를 들으며 오빠 친구가 놓고 간 잡지책을 들어 침대에 누웠다. 몇장을 넘기다 그냥 그렇게 잠이 들었다.
잠깐 있다 간다는 것이 그대로 잠이 들줄이야.
'웅~~ 웅~~'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킥킥킥.. 다. 니. 아. 이. ㅅ고~ㄹ으~있가니..~ㄴ기여~~ 라가.'
'으~~ 키~~ㅋ~'
소리는 들리는데 절대로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억지로 억지로 눈을 뜨니 그 의미 없는 큰 창문이에 큰 그림자가 생기는 것이다. 검은 그림자는 창문 크기를 넘어섰고, 그 그림자 뒤로 해골이 여기저기 박혀있는 것이다.
그 창문 뒤로는 누가 서 있을만한 공간이 없는데, 몸집이 큰 누군가가 서 있다니.
"으~~ 아~~"
겨우 몸이 움직여 헉헉 거리며 그방을 빠져나왔다. 들어갈땐 밝은 낮이였는데 나올 때는 빨간해가 지고 있었다.
그날 그 방에서 꾼 꿈얘기를 엄마께 했다.
"그러게 왜 오빠 방에서 잠을 자. 심난하게 너까지 그러지 말고 가서 숙제해.'
그리고 그날 저녁 엄마는 사촌 큰 이모와 함께 오빠가 자취하는 그 집으로 갔다. 안된다고 말하는 엄마께 집에 혼자 있으면 더 무섭다면 나는 기어이 쫓아갔다.
"언니 영미 혼자 무섭지도 않나 봐. 요즘 계속 밤만 되면 옥상으로 올라가. 내 말은 들으려고 안해. 언니가 좀 말해봐."
"아니 그렇게 해서 잡히기라도 하면 다행이게, 근데 기집애가 무슨 배짱이냐 혼자서."
사촌 큰 이모는 엄마보다 어렸고, 몸이 약해 결혼해서도 친정집에서 같이 살고 있었다.
밤이라 옥상으로 올라가는 철 층계는 더 가파르게 보였고, 무섭게 보였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그곳 한가운데서 그 막내 이모가 서있고 두리번거리며 여기저기를 뒤지고 있었다.
"영미야!"
엄마가 그 이모를 불렀다. 헌데 그렇게 크게 불렀는데도 들리지 않았는지, 엄마가 다가가 그 이모를 붙잡자 엄마를 처음본것 처럼 놀랬다.
"왜 여깄어. 내려가자."
"아까 여자가 우는 소리가 들려 올라왔는데, 올라오면 아무도 없네. 한 둘도 아니고 여기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니깐 누가 장난하는지 알아봐야지."
"그렇다고 니가 여기서 뭘 잡겠다고 그러니."
그 이모 눈이 이상했다. 평소에 촉기가 나듯이 똑똑해 보이는 그런 눈이 아니였다. 그 깜깜한 밤에 아무것도 없는 넓은 옥상에서 뭔가를 찾겠다고 있는 이모가 무서워 엄마 뒤에서 옷깃을 잡았다.
겨우 달래 집으로 내려 보내고 엄마는 오빠 방을 한번 청소한 뒤 나오는데 그 큰 이모가 대문에 서 있었다.
할말이 있는 듯이...
"언니, 아까 봤지. 영미 눈이 완전히 갔어. 어떻게해."
"그러게 나도 무섭더라. 이렇게 놔두면 안될거 같은데. 저러다 큰일나지 싶다."
그리고 그집 옥상에 큰 진돗개를 갔다 놨다.
엄마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옥상에 왜 개를 갖다 놓냐고 했지만, 엄마의 이모와 이모부는 그게 맘편하다고 놔두셨고, 밤마다 그 진돗개는 계속 짖었다. 동네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올 정도로 짖었고, 개 짖는 소리에 올라가면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침밥을 주러 갔는데 그 진돗개는 죽어 있었다한다. 식구들은 그 얘기를 쉬쉬했다.
이모할머니가 주방에서 밥을 차리다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고, 집안 식구들이 건강이나, 일이나 점점 나빠지자 그 집터를 무섭게 여긴 식구는 그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이사했다. 물론 오빠도 다시 집으로 왔다.
그 집은 뒤에 산을 깎아 만든 터로 잘사는 2층 집들이 서 있었다. 하지만 어릴적 보던 그 집들은 왜 그리 다 어두웠을까... 뒷산을 지고 있어서 햇빛이 들지 않고 항상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그 약수터를 끼고 있는 뒷산은 6.25 전쟁통에 많은 이들이 죽어 묻혀있다고 들었다.
인터넷 위성사진을 켜고서 그 집을 찾으려 해도 뒷산이며, 집들이 다 재개발되어 지금은 시내 중심의 비싼 동네가 되어 흔적도 찾을수 없게 됐지만 그 집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어릴적 보였던 그 잠깐의 가위눌림만으로 공포를 느끼게 했던... 그 창문가에 서 있는....그는 그곳의 죽은 이들을 인도하는 저승사자였을까, 아님 그곳에서 꺼내달라고 아우성치는 그 누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