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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Apr 03. 2021

님아.
그밤 텐트서 나오지 마오.




대학1학년. 여자 4명이서 텐트하나 들고 2박3일로 여행을 갔다.

가평 어딘가에... 친구중 경화의 친척이 근처에 음식장사를해 잘 안다고 그곳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친구들과의 여행에 들뜬마음에 조금 설레기도 했다.


도착한 곳은 역시 너무도 좋았다.

큰 나무밑 텐트를 치는 바로 앞에로는 무릎 위까지 오는 계곡이 있었다.

그곳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친구 친척분이 살고 계신다는 생각에 낯선곳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흐르는 계곡은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물이였고, 여름이였지만 차가울 정도로 시원함을 갖고 있었다.

물놀이를 빨리하고 싶어 가자마자 텐트를 치고, 옷을 갈아입고, 작은튜브에 바람을 불며 계곡물로 뛰어들었다.

돌 사이로 작은 송사리 같은 물고기도 보이고, 제법 더운 여름이였지만 아무도 없는 그곳은 우리들만의 놀이터가 됐다.

그때 그곳에서 지나가던 남자가 우리를 향해 한참을 쳐다보는 것이다.

동네분인지 옷차림은 집에서 편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지금도 기억하는 표정은 '왜 저기서 놀고 있는거지?'였다. 그분의 등장은 물놀이도 잠시 멈짓할 정도로 심각해 보였다.

낯선 이들의 방문이 반갑지 않은듯한 표정...


그렇게 느긋하게 놀다 배가고파 텐트로 가서 고기도 구워 배부르게 먹었다.

날이 서서히 저무니 밤하늘은 서울에서 보기 힘든 별들이 반짝이고 너무나 기분 좋은 밤이였다.

4명의 여자들은 수다를 떨며 그렇게 첫날밤을 아쉬워해야 했다.

"저녁이라 좀 춥다. 우리 텐트로 들어가자."

그 계곡 근처에 사람하나 보이지 않는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그저 그 시간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을뿐...

저녁이 되자, 그 푸르던 나무와 숲은 뭔가가 나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으로 서서히 무서움이 들기 시작했다.

텐트로 들어간 우리는 카세트라디오를 조용히 틀었다. 음악이라도 틀어놔야 조금 마음의 안정이 된듯싶었다.

그때 경화가

"야 우리 돌아가면서 무서운 얘기 하나씩 할까? 하자."

"어우~ 난 싫어. 무서워."

"나도 무서워. 그런거 하지마."

"그럼 니들은 듣고 있고. 내가 하나 할게."

경화는 서서히 무서운 얘기를 시작했다. 다른 친구 세미, 연희는 그 소리가 싫다고 귀를 막고 있었고, 난 그저 가만히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서운 얘기를 하던 경화는 듣는이 없는 상황이 흥미를 잃었는지  말을 잠시 멈췄고,

그때, 카세트 라디오에선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노래가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말을 멈춘 경화를 보고 다른 두 친구는 막았던 귀를 풀고 눈을 흘기듯 원망의 눈초리로 친구를 봤다.

"야. 나 무서워 그만해."

"니들 그러구 있으니 재미도 없다."

"다른 테잎 갖고 온거 없어? 노래나 좀더 틀어봐."

가로등 하나없는 숲은 점점 더 짙은 어둠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큰 나무 밑에 텐트를 친 우리는 그저 믿는 거라곤 그 나무 하나밖에 없는 듯했다. 그리고 우리 4명의 사람만...


"자는 순서 정하자. 나 끝에는 무서워 못자겠어."

텐트는 양쪽다 지퍼로 다 닫아놨다. 그 양쪽에서 누가 자는가 눈치 작전이 시작됐다.

"가위, 바위, 보 할까?"경화가 말했다.

"나 좀 무서운데 가운데 자면 안될까?"

세미는 이미 우리들 가운데로 들어와 있었다.

그때,

"가만! 잠깐만! 들어봐.!" 

경화가 카세트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왜?" 

경화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봤다.

경화는 조용하라는 제스처로 검지 손가락을 입쪽으로 갖다 댔다.

카세트를 향해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는 경화를 따라 우리도 조용히 카세트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야~ 그만해!" 연희는 기겁하며 짜증난것 처럼 소리쳤다.

카세트 테잎의 이문세의 목소리는 끊어졌다, 다시 들렸다. 끊어졌다 들렸다...그러다 '지지직..'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음악은 나오지 않았다.

"뭘? 내가?" 

경화는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니가 한거 아냐?"내가 물었다.

"내가 이걸 어떻게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근데 이건 잘 나오다 않나와"

"카세트꺼." 

세미는 카세트를 끄라는 소리 하면서도 직접 카세트에 손을 못대고 있었다.

"좀 이상하네. 낮에는 잘 돌아 갔는데...우리 돌아가면서 끝에 자자" 카세트를 끄고 경화도 이상한지 자는 자리를 한번씩 바꾸면서 자자고 했다. 양쪽 끝에는 세미랑 경화가 먼저 자기로 했다.

"지금 몇시야?"

"11시 넘었어. 쫌 있음 12시"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서 피곤했는데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 쉽게 잠은 오지 않았다.

양쪽에 자는 세미랑 경화도 무서운지 안쪽으로 있는 지퍼를 잡고 있었다.

피곤하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누워 있으니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철컹! 철컹!"

텐트 밖에서 가위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헌데 그 가위소리는 보통 우리가 쓰는 가위가 아닌 엿장수가 쓰는 그런 큰 가위소리였다.

쇳소리에 잠이 깨고 가만히 누워 그 소리에 집중했다.

가위소리는 우리 텐트를 한바퀴, 두바퀴를 돌고 있었다.

이 소리가 나한테만 들리는 건가? 옆에 누워 있는 친구들을 바라봤다.

양쪽에 누워 있는 애들은 눈을 질끈 감고 죽어라고 그 지퍼에 힘을 주고 잡고 있었으며, 옆에서 자는 연희는 천장을 보며 눈을 말똥 말똥 뜨고 있었다.

누구도 말을 할수 없었다. 아니 얼어있었다.

그 가위소리가 텐트를 연결해 놓은 줄을 끊지나 않을까, 줄이 끊겨 텐트가 무너지지 않을까.

꼼짝없이 누워 기도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위소리가 없어지고, 정적이 흘렀다.

"이 소리 나만 들린 거야?"

누워 있는 애들을 향해 내가 말했다.

"나도 들었어. 무서워. 집에 가고 싶어"

거의 울다시피 세미랑 연희는 겁에 질려 있었다.

"자리 바꿔줄게. 짐승이나 벌레 소린지도 몰라."

나는 세미랑 자리를 바꿔줬다. 경화는 자기가 데리고 와서 미안한지 마저 끝에 있겠다고 그 자리를 고수했다.

"빨리 날이 밝았으면 좋겠다."

자리를 바꿔 4명은 다시 자리에 누웠다.

"지금 몇시야?"

"2시"

해가 밝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그렇게 지퍼를 꼭잡고 누워 잠이라도 와 이런 상황에 벗어나길 빌었다.


"헉... 헉... 슉... 헉..."

소리에 눈이 또 떠졌다.

이상한 숨소리를 내며 누군가 텐트 주위를 돌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바닥에 누워있으니 그 발자국 소리는 더 선명하게 귀로 전달됐다. 사람의 신발로 바닥을 걷는, 걸어 다닐 때마다 자갈 소리가 났다. 바닥에 머리를 대고 있으니 그 발자국 소리와 이상한 숨소리는 소름끼치기까지 했다.

아주 천천히 텐트가 쳐져있는 자리를 정확하게 돌고 있었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도 아니고, 세번이나...

우린 숨을 죽지 않을만큼 아주 작게 내쉬고 있었다.

발자국에 이상한 짐승 숨소리를 내며 텐트를 세번돌던 그 소리는 또 사라졌다.

"지금 몇시야?"

"4시"


그뒤 소리는 없었다.

누워 눈만 멀뚱멀뚱 뜨고서 해가 밝기를 기다린 우리들은 5시가 되서야 잠이 들었고, 9시에 눈을 떴다. 밤새 텐트 주위를 돌던게 무엇인지...밤새 잠못자게 했던게 무엇인지...

아침을 대충 라면을 먹고 가만히 앉았다.


오늘도 계곡에 들어가 놀자던 어제의 흥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텐트를 돌던거..."

연희가 말을 시작했다.

"그 야밤에 왜 가위질 소리가 나?"

"그 발자국, 숨소리 니들은 들었어?"

"내 손봐. 열릴까 꽉 잡느라고 손가락이 부었어."

한마디씩 하는 친구를 향해 머릿속에 떠오른 얘기를 했다.

"텐트를 돌던거, 근데... 그게... 절대 우리 텐트를 건드리지 않았잖아. 그냥 텐트 주위를 계속 돌기만 했지."

"맞아. 난 처음엔 짐승인줄 알았어. 밖에 있는 물건들 건드리는 줄 알고. 근데, 아침에 보니 하나도 건들지 않았어."

"맞아. 그 소리에 텐트 밖으로 나오라는것 처럼..."


경화와 세미는 그 근처 친척이 운영한다는 식당에 전화하러 갔고(그땐 핸드폰이 없었다.), 연희와 난 텐트를 정리하기로 했다.

어제 그리도 화창했던 날은, 180도 바뀐거 처럼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날까지 추웠다.

"어제랑 왜이렇게 달라." 푸념하듯이 연희는 투덜거렸다.

어제 그렇게 재미있게 물장구를 치며 놀았던게 믿어지지 않을만큼 그 계곡은 스산함마저 쏟아내고 있었다.


"여기서 빨리 나가자."

전화를 하러갔던 세미가 인상을 쓰며 왔다.

"왜? 무슨 일이야? 경화네 그 친척 식당에 전화해봤어? 어디래?"

"여기 아니래."경화가 심각하게 얘기했다.

"무슨 소리야?"

"이쪽이 아니라 두블럭 더 가야 텐트치는 곳이 있고, 그 근처에 식당이 있대."

갔다온 둘은 연신 빠르게 텐트 정리를 도왔고 그덕에 금방 정리를 끝내고서 그곳을 나올수 있었다.

 

뒤에서 오던 세미랑 연희는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기다려 그들이 무슨 얘길 하는지 들어봤다.

"무슨 얘기야?"

"아까 전화하러 갔을때, 슈퍼 아줌마한테 물어봤어. 텐트치고 자는데, 사람들이 왔다갔다해서 잠을 잘못 잤다고."

"그랬더니 뭐래?"

"얘기하는데, 우리가 친텐트 자리에는 누구도 거기에 텐트를 치지 않고 밤에도 그곳에 가는 사람이 없대. 우리가 거기서 잤다니깐 놀라는 거야."

"왜?"

"그 위쪽으로 가며 보신탕집이 즐비해 있어서 개가 많이 죽었대. 그래서 전화하고 텐트로 내려가는 길에 계곡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와~ 개 머리가 잘려서..."

"엑!! 그럼 뭐야. 우리가 어제 거기서 놀았는데..."상상도 하기 싫었는데 머리가 띵~하고 아팠다.

"그리고 우리가 텐트친 그 큰나무 있잖아. 그 나무에서... 몇년전에 사람이 목메달아 죽었대."

"뭐?!!!"

"미안하다. 난 왜 여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

얘기를 듣던 경화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슈퍼가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우리는 아무말 없이 걸었다.

각자의 생각을 하면서...







 





부모님께 근처 친척분이 계시니 걱정 말라며 겨우 허락을 얻어 처음으로 친구들과 캠핑을 간 장소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밤 텐트 안에서 우리에게 나오라고 이상한 신호를 보낸 그 소리와 공포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낮에 계곡서 놀던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보던 아저씨, 아무도 다니지 않던 그 계곡에서 우리는 죽어가던 개들의 신음을 모르고 놀았던 죄책감이 아직도 남아있다.

밤 11시부터 카세트를 시작으로 새벽 4시까지 우리를 잠못들게 했던 그 정체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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