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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Apr 05. 2021

신고가야 할신발,어디 있나?



외할머니는 92살에 돌아가셨다.

항상 그 자리. 마루에서 자식을 보던 할머니께는 동무가 계셨다.

나는 그저 '작은집 할머니'라고만 불렀었다.

엄마에게 작은집 어머니. 즉 작은엄마셨다.

결혼때부터 한 동네서 생활하셨던 두 할머니는 모든걸 같이 하셨다.

큰집 동서, 작은집 동서라고 하기보다는 자매같이 살갑고, 정이 갔던 두분이시다.

작은집 할머니는 아침에 눈을 뜨시면 할머니 집으로 오셨다. 그럼 두분이서 그 마루에 앉아 콩고르기에 깨도 털고 자식이 두고간 소소한 일거리를 같이 하셨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두분은 더 가까워지셨고,

그런 할머니께 엄마는 방문때 마다 옷을 항상 두벌씩 색깔만 틀리게 구매하셨다.

두개다 꺼내 놓으면 각자 좋아하는 색을 찾아 입으시니 '이건 누구꺼, 저건 누구꺼' 몫을 매기지 않으셨다.

색깔만 틀리지 같은 옷에, 같은 디자인이다 보니 두분이 그 마루에 앉아 계실땐 쌍둥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작은집 할머니는 젊어 일찍 혼자되어 자식을 건사하셨다. 그 고생 모를리 없는 할머니는 항상 작은할머니를 챙기셨고 그 자식들도 그게 당연하듯 할머니를 챙기면 작은할머니도 챙기셨다.

외갓집을 방문하면 두분이 나란히 그 마루에 앉아 반기를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다, 작은집 할머니는 폐암을 선고받고 병원에서 힘들어하시다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위급하다는 삼촌의 얘기에 엄마는 내려가야 한다며 다음달에 드릴려고 했던 두개의 조끼와, 두개의 바지를 가방에 넣었다. 이렇게 갑자기 병세가 악화될줄...

"이 조끼 한번이라도 입고 가셨으면 좋겠다."



"삼우제 끝나고 갈께."

얼마나 우셨는지 엄마 목소리는 갈려 있었다.

"할머니 많이 서운해할 텐데 어떻게해?"

"글쎄 말이다. 두분이 그리도 친하셨으니..."

장례식을 마치고 할머니 집으로 모인 삼촌들과 이모들의 북적거림은 전화 너머에도 들리는듯 했다.


그렇게 엄마와 간단한 통화를 끝내고 낮에 잠깐 누운다는 것이 잠이 들고 말았다.


큰 괘종시계가 있고, 그 괘종시계를 지나 모르는 길이 나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 주위를 둘러봐도 물어볼 이 하나도 없었다.

길이 있어 그 길로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는 것이다.

'사람이다!'

어찌나 반가운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어떤 사람들은 뭔가를 기다리듯 길턱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길만을 바라보고,

어떤 사람들은 방금 멈춘 차에 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행색을 보니 어떤 이들은 무명옷을 입고 있었고, 어떤 이는 누더기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곳에 앉아 같은 방향을 쳐다보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차에 타려 했다.

차는 버스도 아니고, 그렇다고 트럭도 아닌것이 뚜껑은 없지만, 많은 인원을 태울수 있었다.

"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는데, 나도 데리고 가요."

나는 그 사람들이 서로 타려는 차에 오르려 했다.

그때 누군가 나를 밀어 떨어뜨렸다.

"나좀 데리고 가요."

그들은 부탁하고 있는 나는 안중에 없듯이 차에 타려고 매달려 있는 이들을 도와 차에 오르게 손을 잡고, 옷깃을 잡아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때,

"얼릉타야지!"

차에 있던 사람들은 내 뒤 누군가에게 시선이 쏠렸다. 나도 그들이 쳐다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흰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땅에서 뭔가를 열심히 파고 있었다.

차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에 더 이상 지체하면 안되겠다 싶어 내가 그 할머니께 다가가 얘길했다.

"할머니 저기 차가 기다리는데..."
내 말에도 할머니는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고, 뭔가를 찾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 찾으세요. 저기 사람들이 기다리는데..."

다시한번 말씀드렸다.

"신발, 내 신발!"

"신발요? 신발이 어딨어요. 어서 차에 오르세요."

"신발 갖고 가야해!"


눈이 번쩍 하고 떠졌다.

꿈이였다. 꿈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생생한 꿈을 꿨다.


망설이다 엄마께 전화를 했다.

"엄마, 저기..."

꿈갖고 얘기하긴 뭐했지만, 아니면 그만이고 맞으면 다행이다 싶어 주저하다 얘기했다.

"작은집 할머니옷 다 태워드렸나?"

"그랬겠지. 왜?"

"아니 꿈을 꿨는데, 흰 한복을 입은 할머니 한분이 차에 타야 하는데 신발이 없다고, 어디 땅을 막 파고서 신발을 찾는 꿈을 꿨는데, 혹시 신발 않태워 드렸나 하고"

"다 태웠을텐데. 지금 꾼거야?"

"어. 잠깐 잠이 들었는데, 그렇게 절실하게 신발을 찾고 계시네"

"알았다. 전화 끊어봐라."


그뒤 엄마는 신기해하시며 전화가 왔다.

"야. 세상에 옷은 다 태워 드렸는데, 신발은 깜박한거야. 사촌동생한테 '서진이 너 작은엄마 신발 태워드렸지?' 했더니 '아끼는 신발이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길래 옷만 태워드렸지.' 이러는 거야. 그래서 얼릉 태워 드리라고 해서 모두 그 신발을 찾는데 그게 아무리 찾아도 없어가지고, 혹시나 해서 집 마루밑에 보니 저 안쪽으로 작은 엄마 신발이 있었잖니. 그래서 바로 태워드렸다."

"아.. 그래?"

"니 꿈얘기 아니였으면 그 신발 태워 주지도 못하고 그랬겠다. 아휴 작은엄마 신발 없어서 저승도 못갔으면 어쩔뻔했니. 불쌍한 작은엄마. 니가 큰일 했다."

"꿈 꾼건데, 무슨 큰일"










그렇게 돌아가시면 옷을 태우고, 신발을 태워 온전한 모습으로 그 먼 저승 가는길이 편하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은 그게 진실인지, 남은 가족 마음 편하자고 하는 행동인지 모르겠지만...

꿈에 그렇게 줄지어 앉아 타고갈 차를 기다리는 그분들의 모습은 나이드신 분들이 더 많았고, 옷은 제 각각 좋은 옷을 입은 이도, 허름한 옷을 입은 분도 있었다.

옷과 신발을 태워 가시는 길에 추위를 피해가고, 가시밭이라도 그 가시 덜 찔리게 신발이라도 신고 가시면 , 한켤레건, 100컬레건 태워주는게 뭐가 어렵겠나. 

그저 옷 한벌, 신발 한켤레가 다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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