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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May 10. 2021

페르세우스와 신탁






아크리시오스는 자신의 손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란 신탁을 들었다.




신탁이 두려워 아크리시오는 딸을 가둬놓지만, 그곳에서 제우스의 자식을 낳은 딸 다나에.

신탁의 말이 서서히 이뤄지자 딸과 손자 페르세우스를 궤짝에 넣어 바다에 던지지만 어부의 도움으로 살게 된다.

 

시간이 흘러 어부의 마을 왕폴리덱테스는 아름다운 다나에를 차지하려 하지만 아들 페르세우스가 두려워 그에게 어려운 미션을 준다.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거라."


페스세우스는 신들의 도움으로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고 그 머리로 폴리덱테스까지 돌로 만들어 버린다.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페스세우스는 할아버지를 찾는다.

자신을 죽일 것이란 신탁이 두려운 아크리시오는 변장해 그들을 피하지만, 결국엔 페르세우스가 던진 원반에 맞아 죽게 된다.

신탁의 말이 두려워 멀리 던져버리려 했지만,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오는 운명.


신탁은 말했고, 그 신탁이 맞았다.


크로노스는 자식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신탁을 듣고 레아와의 사이에서 난 자식들을 삼키기 시작한다. 슬픔에 빠진 레아는 막내아들 제우스와 함께 그를 깊은 나락 타르타로스에 감금시킨다. 

그리고 그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왕이 된다.

크로노스는 신탁의 말에 저항하려 했지만, 그 저항이 신탁의 말처럼 아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게 했다.

자식을 삼킨 크로노스는 레아가 자신을 속일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만 없으면 자신의 자리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아는 배신했고 아들과 함께 그를 가둬버렸다.



신의 말을 전달해주는 신탁.

미래를 알수없는 인간은 매개체 신녀를 이용해 자신의 미래, 나라의 미래에 대해 신의 말을 들으려 했다.


트로이 전쟁에 목마를 절대 안으로 들이면 안된다는 카산드라의 신탁을 무시한 트로이는 전쟁에서 패한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죽을 것이란 신탁에 피해 다녔지만, 전쟁에 참가하게 되고 파리스의 화살이 그의 약점이었던 발뒤꿈치에 맞아 그는 죽게 된다.





영화 '트로이' 포스터




벗어날수 없는 운명은

신의 조정인가.

정해진 것인가.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수 없는 정해진 운명.

신탁은 

선물인가? 고통인가?


손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말,

자식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은 그 자리에서 쫓겨난다는 말,

전쟁에 참가하면 죽는다고 했지만, 그 전쟁에 참가하게된 운명.


세상에 인간은 존재하고,

누구도 벗어날수 없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바뀔수 없는 운명이 존재한다면, 

우린 어떤 자세로 그 운명을 살아야 하는가...


퍼즐을 맞춰가듯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도,

정해진 스토리에 맞춰 살아갈뿐,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수 없는 인생이라면,

신탁의 말을 빌어 미래를 아주 조금 알수 있다면 지금 뭘해야 할까?


손자가 자신을 죽일수 있다는 신탁을 듣고도

딸이 결혼해 자식을 낳으면 교육을 시키고 옆에서 지켜보고 했다면, 페르세우스가 클동안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손자의 커가는 시간을 공유했을것 아닌가. 

손자 또한 자신이 할아버지를 죽였다며는 고통을 느끼지만, 한번도 보지못한 할아버지보다는 낫지 않겠나.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트로이 전쟁에 죽을수 있다는 말을 듣고도 전쟁에 참가해 최고의 무사로 후세에 이름을 떨친다. 죽음이 두려워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그가 영웅이 됐겠나.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다가온 미래를 이겨낼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단걸 느끼게 한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그렇게 될수 밖에 없다면 피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여 나름의 방향으로 돌리수 있도록 하는게 순수의 시대를 살아오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시대에 오래전 전설을 얘기하는 것도 시대에 반하지만,

그 시대가 있기에 지금의 시대가 있는 것이다.

내 시대가 있기에 다음 세대가 있는 것이다.


신탁은 하늘의 말이다.

미래에 궁금증으로 우린 신탁을 두드린다.

신탁의 전달됐을때, 우린 뭘 해야 할까?


아크리시오스처럼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며 살아야 할까.

아킬레우스처럼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무서워하지 않고 나아가는게 나을까.



어느 스님의 말씀이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 한송이 한송이도 제 자리를 찾아 떨어진다"


하찮게 느껴지는 작은 것도 제자리가 있고 제 소임을 다한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보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제자리에서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 운명에 맞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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