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달인
지혜롭게 일을 잘 해보려면 한 소식한다는 ‘생각의 달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관습이나 고정관념 같은 ‘생각의 미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유하고 상상해내는 방법의 대강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생각의 달인’, 다에달로스(Daedalos)에게 그 길을 물어보자.
잘 알려진 것처럼 다에달로스는 미노타우르라는 괴물을 가둘 수 있도록 미로(labyrinthe)를 고안해낸 희대의 건축가다. 하지만 미로에 갇힌 아테네 사람들이 그 곳을 빠져나가는 일이 빈번하자, 미노스 왕은 다에달로스를 의심하고 아들 이카로스(Ikhalos)와 함께 그를 미로에 가둬 버린다. 누구든 미로에 갇혀 낭패에 빠졌다면 어떻게든 탈출해야 한다는 황급한 마음에 미로 속을 헤매다 체력을 소진하여 절망과 죽음에 이를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그는 무모한 행동을 자제하고 자신만의 ‘생각의 정석’에 따라 차근차근 탈출을 도모한다.
우선 그는 아들에게 말한다. “땅과 물로는 불가능한 법, 공기와 하늘로는 탈출하기에 자유롭다.” 하여 그는 두 쌍의 날개를 만들어 탈출한다.
그의 사유는 현장에 존재하는 불가능한 조건(땅과 물)과 가능한 조건(공기와 하늘)을 잘 분별하여 문제의 대상과 범위를 정확하게 좁히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공기와 하늘’이라는 구체적인 조건으로부터 어떻게든 탈출논리를 구상해내겠다는 뜻이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았던 것일까. 마침내 그는 ‘날아서 탈출 해야겠다’는 듣도 보도 못한 창의적 개념을 떠올린다. 요즘에야 비행이라는 개념이 무에 그리 대수롭냐 하겠으나, 당시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초유의 도전이었을 터.
그가 보여준 창조적 사유의 힘은 무엇보다도 정확한 문제제기로부터 발원하였던 셈이다. 게다가 그는 비행이라는 개념을 상상해내는 데 그치지 않고 날개를 설계하고 제작해낸다. 그러고 보면 문제제기가 없으면 창의적인 개념은 물론 새로운 도구도 나올 수 없다는 얘기다. 더욱 더 흥미로운 것은 그의 사유과정이 예서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에달로스는 이카로스에게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이 아교를 녹여서 날개가 떨어질 위험이 있으므로 바다 위에서 중간 위치를 유지하라고 경고한다. ‘생각의 달인’, 다에달로스는 사람은 물론 사물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미리 날아보지 않고도 어떤 현상이 어떻게 일어날 지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아들이 숙지해야 할 지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하나는 아들이 아직 젊기 때문에 하늘을 날다보면 한없이 더 높이 날아오르려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할 것이라는 심리적 현상을 간파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그렇게 높이 솟아오르면 태양에 가까워져 아교가 녹아 날개가 떨어져 추락할 것이라는 물리적 현상을 추론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다에달로스표 매뉴얼에 담긴 놀라운 통찰은 인문학적 상상에 자연과학적 분석을 더한 통합적 사유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니, 과연 ‘생각의 달인’다운 경지요 면모라 할 만하다.
불행히도 아들 이카로스는 크레테섬에서 멀어지자 아버지가 내린 명령을 까맣게 잊은 채 소리를 지르며 점점 더 높이 올라갔고, 결국 바다에 빠져죽는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생명과도 맞바꿀 만큼 달인의 판단과 예측의 파장이 실로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 보이는 대목이다.
그렇다. 다에달로스는 미노타우르라는 괴물로부터 쫓기고 있었지만, 더 엄밀하게 말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부터 끊임없이 쫓기는 존재였던 셈이다. 정확한 문제제기와 창의적인 개념 도출에서 도구의 제작, 나아가서는 매뉴얼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하지만 달인은 그렇게 쫓기면서도 문제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 탄탄한 논리와 대안을 바로 세우는 ‘생각의 힘'으로 고비마다 자유로울 수 있었다. 결국 그는 미로를 빠져나왔을 뿐만 아니라, 그 우여곡절을 되레 게임처럼 즐기며 유유히 시실리로 향했다. ‘생각의 달인’, 다에달로스는 모양 빠지게 당황하는 모습을 끝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