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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억중 Dec 13. 2020

영화 속의 집

'건축학개론'의 경우


일러스트 김억중



영화 속에 나오는 집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버릇이 몸에 밴지 꽤 오래다. 구성이나 완성도면에서 흠잡을 데 없었던 ‘건축학개론’도 그 중 하나. 누구나 가슴 속 한편에 묻어두었던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곱게 번진 수채화처럼 새록새록 피어오르게 했던 영화. 세월이 흘러 운명처럼 다시 만난 두 주인공이 결국 서로가 첫사랑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에 빠져들면서 우리는 어느새 주인공 서연이 되고 승민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첫사랑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살다가 어렵게 다시 만났으니 이제라도 재결합하여 새 집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던가. 



우리네 바람과는 달리 건축가 승민은 첫사랑 서연에게 지극정성을 다한 멋진 집을 선사하고 곁을 떠났다. 제주도 바다, 그 빼어난 풍경을 거실에 통째로 옮겨다 놓았으니 누구든 탄성을 자아낼 만큼 그림 같은 집이었다. 어떤 이들은 언제나 저런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살 수 있을까 한편으론 서연이가 부럽기도 했을 터이다. 하지만 나는 서연이 새 집에서 새 삶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며 안도하기보다는 그녀의 앞날이 크게 걱정스러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태풍 13호가 몰아닥치고 파고가 20m나 넘는 해일이 통창을 덮친다면 연약한 그녀 혼자서 얼마나 두려움에 떨까도 큰 우려였지만 실은 그녀 앞에 놓인 삶이 더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첫사랑 승민도 떠나버렸고 이혼의 상처마저 채 가시지 않은데다 병고에 시달리던 아버님도 돌아가셨을 것이다. 사나흘 동안이야 그림 같은 집을 선사해준 승민을 생각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거실을 가득 채운 저 바다는 아름답다기보다는 그녀로 하여금 이 세상에 홀로 내동댕이쳐졌다는 감정을 증폭시킬 만큼 잔인한 풍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곳에서 잠깐 기거한다면야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매일 사는 사람 입장이라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나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릴 게 뻔해 보이는 서연에게 이 집에서 당장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차라리 부업을 겸해 이 집을 카페로 쓸지언정 말이다. 


결국 승민이 설계했던 서연네 집은 아름다운 외관을 취하는 데 성공하기는 했으나 그녀의 행복한 내면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어 못내 아쉬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다. 집속의 삶은 복잡하고 미묘하기 그지없는 것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속속들이 헤아리지 못한 채 아름다운 풍광 하나 얻었다 해서 훌륭한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집이 약이 될지언정 독이 되지 않으려면,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 삶의 진실을 마주하여 그 깊은 속내를 읽고 풀어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미학에만 치우치지 않는 ‘건축학개론’의 시작이요 끝이어야 한다. 


여인숙이라도 국수집이다  

모밀가루 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어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木枕)들을 베여보며

이 산(山)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굴과 생업(生業)과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

[백석, 산숙-산중음 1]


모두가 시인과 무관한 이들이지만, 목침에 새까맣게 때를 묻히고 간 사람들의 얼굴과 생업과 마음까지도 생각해본다는 산중음. 건축가 승민이 곱씹어보아야 할 대목이 아니겠는가. 시인처럼 세상 사람과 삶에 대한 깊고 따뜻한 연민이 있어야 비로소 집다운 집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나저나 첫사랑 서연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걸까? 첫눈 내리는 아침, 그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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