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가저택(破家猪宅)을 면하려면...
정축년에는 선고의 묘소 아래에 몇 개의 서까래를 엮어서 조석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다. 남들은 이것을 궁궐과 같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나 나는 그러한 이름을 감당할 수 없다. 집이 다 지어지매 집 주위에 길게 담장을 두르니 굉장히 사치한 집이라고 하지만 동성이척의 여러 친척들이 모두 거처하려면 마땅히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최인호, '상도', 가포집 서문)
올챙이 적 시절을 잃어버릴 만큼 신분도 제법 상승하고, 집안에 재물마저 발에 채일 만큼 늘어난다면 그 다음에 무엇을 하실 텐가? 이만큼 나를 키워주었던 이웃들과 사회를 위해 뭔가를 환원해보겠다? 말은 한없이 우아하고 폼 나 보이긴 하지만, 말짱한 제 정신으로 행동에 옮기기란 그리 쉽지 않은 듯하다.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확대재생산 하는 것이 연약한 인간의 속성인지라, 웬만한 성인(聖人)이 아니고서야 그 사슬로부터 헤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터.
상인 신분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나라를 빛내고, 군수, 귀성부사 벼슬까지 지냈던 주인공 임상옥마저도 조선 최고 거상의 반열에 오르자, 결국 욕망을 표상하는 ‘큰 집'을 짓고, 쾌락을 상징하는 여색에 빠져드는 수순을 밟으면서 스스로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위기를 맞는다. 누란지위란 마치 알을 쌓아 놓은 듯이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상태를 일컬음이니, 임상옥은 가랑잎파리 바람에 날려 힘없이 떨어지듯 하루아침에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관직에서 삭탈을 당하고 급기야 감옥에 갇히는 비운을 맞는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임상옥은 자신이 분에 넘친 대가를 지은 죄로 목에 칼까지 쓰는 중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 지 그 연유가 참으로 궁금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혹시 너무 커다란 집을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자문해보지만 그로선 선뜻 납득이 안 가는 것이었다. 자서전인 가포집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그는 여러 친척들이 모두 거처하려면 마땅히 이 정도는 되어야한다고 변명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의 말과 실제는 거리가 있었다. 그야말로 99간의 대가를 지었으니, 아무리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돈이 많다 하더라도 왕가 이외의 사가(私家) 건축에 엄격히 금지된 규정을 그 이유야 어떻든 어긴 것이었다.
예로부터 현자에게는 감옥이 깨달음의 산실이 아니었던가! 결국 가옥과 관계된 것이 아니고서야 자신이 구설수에 오를 일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심심풀이로 글자풀이를 하면서 집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그 풀이가 자못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의미심장하다.
큰 집을 의미하는 옥(屋)을 파자(破字)하면 '시지(尸至)', 즉 죽음에 이른다는 뜻임을 깨달았고, 작은 집을 가리키는 사(舍)는 인길(人吉), 즉 사람이 길하다는 뜻임을 알게 된다. 게다가 사(舍)는 인설(人舌)로도 파자할 수 있은 즉, 이는 곧 사람의 혀를 가리킴이니 작은 집이라도 지니고 있으면 이래저래 구설수에 오른다는 뜻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어찌 되었건 조정에서는 임상옥의 새 집을 허물고 그 곳에 연못을 만드는 파가저택(破家猪宅)의 중벌을 내리려 했으나, 집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송이라는 여인 때문으로 밝혀져 다행히 그 형벌은 면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허물어버리고 연못을 만들게 한다는 것! 오늘날 우리에게는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겠는가 하겠으나, 그 뜻을 잘 살펴보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죄인도 죄인이지만 집 자체를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임상옥의 집을 무너트린다는 것은 곧 종자를 대대로 끊어버린다는 뜻의 멸문지가(滅門之家)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평생 쌓아왔던 공적이며 목숨처럼 지켜왔던 명예와 권력, 분신처럼 아껴왔던 재물까지도 집과 함께 고스란히 무너져 내리게 하는 끔찍한 형벌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형벌로 인해 청산된 집터와 연못은 반상을 막론하고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남겼을 것이니, 설령 후손이 남아있다 한들 어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었을 것인가? 파가저택은 당시로선 대역 죄인에게 내려지는 중벌중의 중벌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선조들에게 집은 생활의 터전인 동시에, 윤리의 척도요, 법치의 대상이었던 듯. 그 당시 임상옥처럼 집이 화근이 되지 않으려면, 누구든 집을 짓기 전에 분수에 맞도록 지리를 해치거나 요란한 모양을 삼가고 마을과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의 준비를 잘 해야만 했었을 것이다. 요컨대 "집을 짓는다는 것, 그것은 곧 욕망을 다스리는 것!". 마음을 바로 세워야 집도 사람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뜻만큼은 소중한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후신]
" 고층 아파트 단지 맞은쪽은 일반주택지구이다. 큰 길에서 골목으로 꼬부라지는 곳에 오복빌딩이 있다.
지은 지 오래되어 차고는 없고, 지하실은 단란주점인데, 입구에는 맥주병 박스가 나뒹굴고, 가끔 가라오케 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일층 슈퍼마켓은 얼마 전에 24시간 편의점으로 바뀌었고, 이층에는 롯데리아가 생겼다. 하루 종일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팔던 아가씨들이 근무교대시간이 되면, 사복을 갈아입고 퇴근한다. 삼층은 치과의원이다. 출입문이 여닫힐 때마다 알코올 냄새가 풍겨 나온다. 수납에서 의보 카드를 내놓고 수속을 마친 다음, 진료실을 들어가게 되어있다. 화장실이 있는 층계참을 지나서 올라가면, 사층에는 당구장, 오층에는 단전호흡 수련원이 있다. 옥상에는 키 작은 향나무 몇 그루와 저수 탱크와 붉은 벽돌집이 있다. 문패 없는 이 옥상옥에서 빌딩의 주인이 산다. 그 위로는 하늘이다. 이 하늘이 아까워 건물주는 매일 밤 고층 아파트를 짓는 꿈을 꾸는 것이다."
(김광규 시인의 '오복빌딩')
집은 욕망으로 부풀려진 풍선모양이 되었다. 기름진 똥배, 구석구석 뺑뺑해질 때까지, 아니 온 몸이 터질 때까지, 불고, 또 불면되는 것. 너의 찢어진 가슴은 기억할만한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 아! 욕심이 지나친 자에게 내려졌던 저 파가저택(破家猪宅)의 형벌이 사라진 시대의 방종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