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탄 청학이 천리를 가리라
김억중 : 대감께오서 지형, 지세를 잘 읽어내어 그 가치를 잘 활용하셨다는 말씀에 미천한 저 역시 크게 공감하옵니다. 저의 스승 Mario Botta께서 급한 경사지에 지으신 리바 산 비타레(Riva San Vitale) 주택 또한 보실만하다고 감히 여쭈옵니다. 5층이기는 하나 탑 모양인데다 외부를 향해 사방이 뚫려 있어 누정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윤선도 : 아니, 이 도판을 보니 자연 한 가운데 점을 찍듯 대지를 최소한으로 점유하려는 마음이 돋보일 만큼 집의 형상을 도모하였으니 크게 칭송 할 만하겠소이다.
이규보 : 출입구를 최상층에 두고 다리를 건너 누정 같은 집안에 이르도록 설계하였으니 집에 대한 편견이 부끄럽기까지 하오. 공간을 평면적으로 펼치기보다는 입체적으로 응축시켜 경사지의 높이차에 대응하는 지혜가 압권이구려.
김억중 : 단순한 입체 형태로 자연 경관에 최소한 개입한 모습으로 절묘한 대비를 이루어낸 것도 훌륭하지만, 그 곳 티치노 지방에서 익히 볼 수 있는 성곽의 망루 형상을 차용(借用)한 것이기도 하여서 그곳 사람들의 눈에도 그리 낯설지 않은 풍토건축을 이루어냈으니 과연 여러 어르신들께서 몸소 보여 주셨던 ‘그 자리’, ‘그런 집’의 사례라 여겨지옵니다.
송순 : 김군 뿐 아니라 두 대감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있자니, Botta의 건축에서와 같이 결국 누정이라 함은 하늘과 땅 사이, 성과 속을 넘나들게 하는 전이공간이라는 생각이 드옵니다. 저 역시 그러한 생각으로 강산과 풍월을 둘러놓고 그들 앞에 선비로서 욕되지 않은 삶을 누리고자 면앙정(俛仰亭)을 지었사옵니다. 정자의 이름은 감히 우주를 굽어보고 우러른다는 뜻의 ‘면앙우주지의(俛仰宇宙之義)‘의 뜻을 취하였지요.
윤선도 : 면앙정을 둘러보니 과연 차고도 남을 주인다우신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었사옵니다. 맹자의 말씀에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굽어보아 남에게 부끄러움이 없다”라 하였으니 대감께오서 스스로 기약하였을 삶의 숙연한 기조가 정자 공간 안에 깊이 배어 있음을 느꼈사옵니다. 게다가 대감의 건축적인 감각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라 여겨지옵니다. 대숲과 잡목이 한데 어우러진 오솔길과 돌층계를 지나 능선에 다다라, 아래로는 넓은 들을 굽어보고, 위로는 하늘을 향해 반공에 솟은 듯 그 사이에 면앙정이 자리하고 있으니, 건축이란 지리와 천리를 매개하는 놀라운 수단이 아니고 무엇이옵니까? 대감께서는 강호에 침잠하는 흥취가 호연하여 ‘너럭바위 위에 송죽을 헤치고 정자를 앉혔으니 구름 탄 청학이 천리를 가리라 두 나래 벌렸는 듯’이라는 면앙정가를 노래하였사옵니다.
이규보 : 아닌 게 아니라 고봉 기대승이 대감과 함께 소요유(逍遙遊)를 누리며 썼던 면앙정기를 보아도 정자 주변을 따라 펼쳐지는 주옥같은 정경이 마치 내 눈앞에 선연하여 그 진한 감동을 이제라도 함께 누려보고 싶구려.
“집을 세 칸으로 만들고는 사방을 텅 비게 하였는데, 서북 귀퉁이는 매우 절벽이며, 좌우에는 빽빽한 대나무가 병풍처럼 둘러 있고 삼나무가 울창하다. 동쪽 뜰 아래를 탁 트고는 온실(溫室) 몇 칸을 짓고 온갖 화훼(花卉)를 심어 놓았으며, 낮은 담장을 빙 둘러쳤다.
좌우 골짝으로 이어진 봉우리의 등마루를 따라 내려가면 장송(長松)과 무성한 숲이 영롱하게 서로 어우러져 있어서 인간 세상과 서로 접하지 않으므로 아득하여 마치 별천지와 같다. 빈 정자 안에서 멀리 바라보면 넓은 수백 리 사이에는 산이 있어서 마주 대할 수 있고, 물이 있어서 구경할 수가 있다. 산은 동북쪽에서부터 달려와서 서남쪽으로 구불구불 내려갔는데, ... 바위가 괴상하고 아름다우며, 내와 구름이 아득히 끼어 있어서 놀랍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기대승(奇大升), 면앙정기, 고봉집 2권]
이처럼 대지 곳곳에 스며있는 대감의 빼어난 눈썰미에 다시 한 번 놀랄 따름이오. 이곳만의 고유한 풍경을 담아낸 면앙정이야말로 대대손손 수많은 이들이 그 감흥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소중한 공공의 자산이 어디 있겠소. 이 모두가 대감의 탁월한 경영능력 덕분이 아니겠소.
송순 : 미천한 재주를 간과하신 과찬이시옵니다. 선비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상향을 구축하기 위해 건축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보면 집이란 선비의 도량이요, 사유의 터전이어야 합니다. 그 텃밭에 모여 선비들이 만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때로는 시국을 논하기도 하고, 자연과 더불어 흥이 넘치면 시문을 지어 노래하는 것이 선비들의 한가한 삶이 아니겠는지요?
이규보 : 게다가 면앙정이 지어진 이후 수많은 문인들이 모여 본격적으로 누정가사의 장을 열었다 하던데, 과연 한 선비의 건축의지와 그 힘이 지대하다 할 만하오. 한 시대의 정신이 그렇게 건축과 더불어 영속성을 키워가는 것이니...
김억중 : 대감께오서 과거 급제 60주년을 기념하는 회방연을 맞이하여, 송강 정철, 제봉 고경명, 백호 임제 등 백여 명의 인사가 면앙정에 모여 밤이 이슥해지도록 시문과 여흥을 즐기다가, 이들 모두 송강의 제의로 대감을 남여에 태워 직접 메고 면앙정을 내려갔었다는 일화는 아름다운 교류의 전형으로 후세에 널리 전해내려 오고 있사옵니다.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축 드리옵나이다.
송순 : 아닌 게 아니라 그날 밤 남여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니 면앙정 위에 걸친 달빛의 여진이 어찌나 찬란했던지, 평생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했던 세월이 용마루 끝에 응축된 채 한순간의 섬광처럼 번쩍이던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지요. 순간 무겁기만 했던 세상의 짐을 다 내려놓은 듯 마음은 창공으로 훨훨 날아갈 듯 하였소. 나를 치켜세우며 남여를 맸던 이들도 잠시나마 발걸음이 가벼워졌을 지도 모르겠소만... 허허. 그 때의 추억에 사로잡히다 보니 내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어디 윤대감의 보길도 이야기 좀 들어봅시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