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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억중 Dec 25. 2020

집에 대한 경의(1)

이은암[吏隱庵]

이은암기[吏隱庵記]


본시 ‘吏隱’(이은)은 직분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隱逸(은일)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 儒家(유가)의 견해로 보면 吏와 隱은 대립되는 개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조선전기 사대부들은 ‘出’(출)과 ‘處’(처)의 삶을  동시에 누릴 수 없었지만 이 둘 사이 조화를 이루려는 삶의 양식을 일컬어 吏隱이라 했다. 그러므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제여건 속에서도 함께하는 직원들의 삶을 책임져야하는 사업에 한 치 소홀함이 없으면서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평정심을 찾아 고요함 속에 몸과 마음이 기거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집주인의 바람이야말로 그 뜻으로 치자면 이은[吏隱]에 다름 아니고 무엇인가.

 

시내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면서도 자연 풍광이 수려한 계룡산 자락 아래 하신리에 집터를 구하고자 했던 것도 ‘이은’을 취하고자함이었으며, 홀로 동떨어진 곳을 택하지 않고 마을 한 가운데 집을 지어 번거로움을 벗어나 ‘이은’을 꿈꾸는 도반들이 쉬이 모여 다도를 함께 즐길만한 공간을 만들었으니, 예가 곧 불심이 깃든 이은암이라 할 만하지 않겠는가. 


마을 골목길을 집안으로 잇는 고샅을 두어 좌로는 대나무를 심어 번뇌 그득한 주변으로부터 벗어나 안으로 스며드는 공간을 만들었으며 우측 낮은 담장 너머로는 물거울을 두어 고요한 하늘, 빛과 그림자를 모셔왔다. 이로써 다실에 앉으면 차향과 더불어 질박한 공간에서 물거울 쪽으로 의념을 두면 세상의 거친 속도를 저만치 물리치고 연꽃 화두에 들을만한 안온한 기운을 얻었으니 ‘이은’의 뜻을 이룬 듯하다.


아래층과 달리 2층에서는 동서로 펼쳐지는 계룡산이 주인이시다. 내가 한 일은 재주로 무언가 형상을 멋지게 만들 필요도 없이 모시는 방법만을 공간마다 달리 했을 뿐이다. 그 차이만으로도 각각의 공간은 저마다 그 공간다움을 얻었으니 잘 열고 잘 닫는 일이야말로 건축의 본령이 아닐 수 없다. 동선을 따라 집안을 거닐다보면 크고 높다란 계룡산이 나와 함께 움직인다. 게다가 시시각각 천태만상의 풍광이 끊임없이 다가서거나 물러서지 않는가. 


대저 아름다움의 뿌리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어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에게 자칫 “이토록 아름다운 풍광을 함께 할 날이 멀지 않았구나”하는 감상적인 위해가 될 수도 있겠으나, 불심 깊은 집주인 내외분들께는 오히려 변화무쌍한 자연의 속성을 심친[心親]으로 즐길만한 내공이 있어 이은암과 더불어 노후의 삶이 더욱더 풍요로워지리라 믿는다. 


집 속에 세 개의 길이 있다

하늘과 땅이 이어지는 물거울 속에

마을에서 집으로 스며드는 고샅 안으로

산자락 불러 뫼시는 발길 따라

어화! 이은암이라

천년 학 날아드는 


      

2019년 2월 초하루

김억중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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