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억중 Dec 25. 2020

그 자리, 그런 집 (3)

하늘이 만들고 땅이 숨겨 놓으니

일러스트 김억중


김억중 : 평소 이 땅을 빛내주신 건축가로 흠모해 마지않던 여러 어르신들을 한 자리에 모시게 되어 여간 광영이 아니옵니다.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렀어도 어르신들께서 남겨주신 누정건축을 살펴보며 저를 비롯한 뜻있는 후학들이 늘 깨우치고자 노력하고 있사온 즉, 오늘도 기탄없는 말씀을 청해 듣고자 하옵니다. 하지만 세간의 사정으로 미루어 보건대 누정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은 즉, 흔히들 빼어난 경관이 있는 곳에만 자리 잡으면 그것으로 다 되는 줄 아는 게 상례이옵니다.


하여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정하고 그 높이며 형상, 장식의 수준이나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실로 대단한 안목 없이는 쉽게 이뤄낼 수 없는 ‘지고지난(至高至難)한 건축’임을 쉽게 간과하는 이들이 적지 않사옵니다. 마침 존경하올 이 대감께오서 ‘모정기(茅亭記)’를 통해 진즉 명쾌히 지적하셨듯이, 선비요 건축가이신 진강후(晉康侯) 같은 어른의 적확한 지시 없이, 공수반(公輸般) 같은 장인의 최고 기술을 동원하는 것만으로 누정건축의 걸작을 기대할 수없는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이 정자는 성시(城市)를 벗어나지 않고도 초연히 운산(雲山)의 정취를 가져서 사람의 마음을 자연 맑게 한다. 궤석(几席) 사이에서 부앙(俯仰)하며 앉아서 사방을 굽어보니, 장교(長橋)가 마주 보이고 구규(九逵)가 다 드러나, 초헌을 탄 자, 말에 걸터앉은 자, 걷는 자, 뛰는 자, 짐을 지고 가는 자, 물건을 끌고 가는 자 등 천태만상이 털끝만한 것도 시야에서 도망하지 못하니, 무릇 먼 경치를 바라보는 데는 이 정자만한 것이 없다.


비록 공수반(公輸般)으로 하여금 먹줄을 퉁기고 자귀를 휘두르게 하더라도 그 제도의 웅장하고 화려함은 혹 이와 근사하게 할 수는 있겠지마는, 안계가 탁 트여서 마치 표표(飄飄)히 봉래산에 올라가 사해를 바라보는 것 같은 이 환경은 공의 지시를 받지 않고서는 어찌 이와 같이 할 수가 있겠는가? 아, 천지가 생긴 이후로 원래 이런 경치가 있었겠지만 오랫동안 숨어 있다가 일조에 환히 드러나니, 어찌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간직하였다가 공에게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혹은 기이한 꽃, 이상한 풀, 아름다운 나무, 진귀한 과일이 겨울을 지나도 마르지 않으매 하늘이 능히 그 시기를 믿지 못하고, 여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피기도 하매 봄이 시령(時令)을 동일하게 할 수가 없다. 혹은 화분 가운데 심어져서 비록 지맥(地脈)을 끊고 있으나 오히려 번성하기도 하고, 혹은 정자 위에 심어져서 지붕을 뚫고 위로 솟아나기도 하며, 심지어 강남(江南) 땅을 편안히 여기고 중하(中夏)에서 생산되어 다른 땅에 옮겨가기를 꺼리는 것과 만 마리의 소를 이용하여 옮기려 해도 옮길 수 없는 꾸불꾸불하고 울퉁불퉁한 반송(盤松)도 한 번 공의 동산에 들어와서 한 번 공의 돌봄을 받으면, 번쩍번쩍 윤기가 나서 번창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생각하건대 초목의 상정도 오히려 영광스럽게 대우하는 것을 아는 것일까, 천공(天公)과 지온(地媼)의 도운 바가 있어서일까? 또 물(物)은 천지에서 나는 것인데 공이 능히 변화(變化)ㆍ이역(移易)하기를 조물자(造物者)와 함께 표리가 되므로 물 중에는 공에게 사역(使役)되어 공에게 이용된 것이 많다.


[이규보, 진강후(晉康侯) 모정기(茅亭記),동국이상국집 23권]


하물며 절제의 극치미를 추구해야 하는 정자 안에 무엇을 담아내어 어떻게 보고 느끼며 즐길 수 있는 지, 그 내용과 형식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상상력과 창의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범접하기조차 까다로운 설계영역임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심히 안타까울 따름이옵니다. 


마침 이 자리에 누정건축의 대가라 할 만한 서구의 명인들 중에서 제게 가르침을 주셨던 Aldo Rossi와 특별히 6년 동안 수학을 했던 스위스연방공대의 Luigi Snozzi, Mario Botta 교수도 함께 모시려 했으나 여러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제가 그분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역할을 대신하겠사옵니다. 부디 세분의 어르신들과 세분의 서구 명인들께서 손수 보여주신 누정건축의 실례를 두루 살펴봄으로써 그 복잡 미묘한 지혜의 현장을 점검하는 뜻 깊은 담론의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옵니다. 
            
윤선도 : 참으로 흥미롭기 그지없는 밤이올시다. 비록 외국이기는 하나 강이나 산, 호수에 면해 지어진 명인들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으니 고금동서를 떠나 대지를 다루는 지혜와 방편을 두루두루 비교해가며 살펴볼 수 있으니 저 또한 기쁘기 그지없소이다. 기왕 제가 모두의 운을 떼었으니 이 대감께 먼저 사륜정(四輪亭)을 고안하신 배경과 동기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집이라는 존재는 필요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어서, 상고시대에는 나무 위에 집을 지었다가 점차 땅위로 옮겨 온 것이라 할진대, 대감께오선 뜻밖에도 네 바퀴가 달린 정자를 고안하셨으니 전무후무한 건축의 본을 보이셨사옵니다.



이규보 : 허허. 누구든 필요가 극에 달하면 새로운 발상을 해보는 것 아니겠소? 여름철에 손님과 함께 동산에다 자리를 깔고 누워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앉아서 술잔을 돌리며 바둑을 두거나, 거문고도 타고, 뜻이 맞는 대로 어울리다보면 매번 햇볕을 피하여 그늘로 옮겨 다녀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오. 

  

송순 : 하여 아예 그늘을 따라 정자를 통째로 움직이려 함이었겠습니다. 정자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한 곳에 고정된 것이 아니니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한시적이라는 장점을 듬뿍 지닌 집이 아니겠습니까? 이동건축이라! 참으로 기묘하신 발상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기문을 살펴보니 정교한 기능 해석에 따라 크기와 형상을 설계하신 내용 또한 참으로 인상적이옵니다. 


“바퀴를 넷으로 하고 그 위에 정자를 짓되, 정자의 사방이 6척이고 들보가 둘, 기둥이 넷이며, 대나무로 서까래를 하고 대자리를 그 위에 덮는데 그것은 가벼움을 취한 것이다. 동서가 각각 난간 하나씩이요, 남북이 또한 같다. 정자가 사방이 6척이니 그 칸수를 총계하면 모두가 36척이다. 그림을 그려서 시험해 보리라.


세로 가로를 계산하면 모두가 6척인데, 그 평방이 바둑판같은 것이 정자이다... 여기에 여섯 사람을 앉게 하는데, 두 사람이 동쪽에 앉되 4평방 정간을 차지하고 앉는다. 세로 가로가 모두 2척인데 두 사람의 분을 총계하면 모두가 8평방척이다. 나머지 4평방 정간을 쪼개어 둘로 만들면 각각 세로가 2평방척이다. 2평방척에다가는 거문고 하나를 놓는다. 짧은 것이 흠이라면 남쪽 난간에 걸쳐서 반쯤 세워둔다. 거문고를 탈적에는 무릎에 놓는 것이 반은 된다. 2평방척에다가는 술동이ㆍ술병ㆍ소반그릇 등을 놓아두는데, 동쪽이 모두 12평방척이다. 두 사람이 서쪽에 앉는 데도 또한 이와 같이 하고, 나머지 4평방 정간은 비워 두어서 잠깐씩 왕래하는 자는 반드시 이 길로 다니게 한다. 서쪽도 모두 12평방척이다. 한 사람은 북쪽 4평방 정간에 앉고 주인은 남쪽에 앉는데 또한 이와 같다.


중간 4평방 정간에는 바둑판 하나를 놓으니, 남쪽과 북쪽 중간이 모두 12평방척이다. 서쪽의 한 사람이 조금 앞으로 나와 동쪽의 한 사람과 바둑을 두면, 주인은 술잔을 가지고 한 잔씩 부어서 돌려가며 서로 마신다. 안주와 과일 접시는 각각 앉은 틈에다 적당하게 놓는다. 이른바 여섯 사람이란 누구인가 하면, 거문고 타는 사람 1인, 노래하는 사람 1인, 시에 능한 중[僧] 1인, 바둑 두는 사람 2인, 주인까지 여섯이다. 사람을 한정시켜 앉게 한 것은 동지(同志)임을 보인 것이다.


이 사륜정을 끌 때에 아이 종이 힘든 기색이 있으면 주인이 스스로 내려가서 어깨를 걷어붙이고 끈다. 주인이 지치면 손님이 교대하여 내려가 조력한다. 술에 취한 뒤에는 가고 싶은 대로 끌고 가지, 꼭 그늘로만 갈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이 하여 저물 때까지 놀다가 저물면 파한다. 명일에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 


윤선도 : 대감께오서 사륜정을 그 쓰임새에 따라 배치와 구조를 자세하게 설계하신 내용을 살펴보며 저 역시 감탄해 마지않고 있던 차이옵니다. 하지만 승경을 찾아 꼭 있어야 할 만한 장소에 정자를 짓는 것이 정자 본연의 모습이 아니옵니까? 그 비경을 얻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이규보 : 본시 만사는 경영할 것이 따로 없는 것 아니겠소? 많은 이들이 승경을 쉽게 찾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라 할 수 있소. 그 하나는 조정이나 시장에 마음이 쏠려있어 우연히 승경을 만났어도 지나치기 쉽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하늘이 만들고 땅이 숨겨 놓으니 안목이 부족하거나 관조함에 있어 경솔한 이에겐 잘 드러나 보이지 않기 때문이오. 내 능파정을 지어 물 위에 띄우게 된 것도 알고 보면 정자와 더불어 승경이 되도록 그 자리를 잘 찾은 것에 불과하오.


윤선도 : 그 깊은 뜻을 헤아릴만한 기문이 바로 능파정기(凌派亭記) 아니옵니까?


이규보 : 마침 기문이 있어 이렇게 후세 선비들과 함께 내가 느꼈던 정취를 함께 할 수 있으니, 그 의미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부끄럽소만, 그 대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오.


" 무릇 땅이 청정하면 마음도 청정한 법이니, 마음이 청정하면서 탁악(濁惡)과 열뇌(熱惱)에 지배되는 일은 없다. 이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비록 인간 세상에 있더라도 진실로 땅의 청정함을 얻어서 그 심려(心慮)를 씻을 수 있다면 이것도 또한 불계(佛界)이며 선대(仙臺)인 것이니, 어찌 청련불계(靑蓮佛界)나 백옥선대(白玉仙臺)를 부러워하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마음을 닦는다면 불계나 선계를 밟는 일에도 한 길이 될 것이다.” 하였다...  


그래서 절 곁에 물이 잔잔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장소를 선택하여 물결 밑에 주추를 놓고 그 위에 정자를 걸쳐 지은 다음 띠풀로 지붕을 덮었으니,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그림으로 장식한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것과 같다.... 봄철 맑은 물에 일광이 내리비칠 때에는 수백 마리쯤 되는 물고기가 떼를 지어 헤엄치는데, 굽어보면 환히 보여 셀 수가 있으며, 가을 8~9월쯤 되어 나뭇잎은 반쯤 떨어지고 서리는 내리고 물은 맑은데 단풍나무가 언덕에 늘어서서 거꾸로 물결 위에 비치매, 찬란하기가 마치 강 가운데에서 비단을 빠는 것과 같으니, 이런 것들 때문에 물 위에 있는 정자가 승경(勝景)이 되는 것이다...


이 정자에 항시 한가히 앉아서 맑은 경치를 실컷 누리는 우리의 선로(禪老)와 같은 이들은 생각건대, 이미 청련불계와 이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도에 어긋난다고 하겠는가?" [이규보, 혁 상인(赫上人)의 능파정기(凌波亭記), 동국이상국집 제 24권]


어떻소? 정자를 짓는다함은 곧 자연과 더불어 승경의 가치를 발견하여 완성하는 것이요, 그 안에서는 감추어져 있던 승경을 계절마다 서로 다르게 즐기기 위함이 아니겠소?  


송순 :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누정이라 함은 경승지의 언덕에 위치하여 넓게 펼쳐진 조망을 취하는 것이 관례이오나, 선생께서는 높은 위치를 마다하시고 오히려 물 위에 건축을 도모하시었으니 파격도 파격이려니와 그 운치 또한 남달랐을 것이옵니다.


김억중 : 능파정이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그림으로 장식한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놀랍게도 Aldo Rossi 선생이 설계한 세계극장(Theatro del mondo) 또한 참으로 유사한 발상이라 사료되옵니다. 극장을 겸한 누정이 베니스(Venice) 바다 한 가운데를 유유히 떠다니며 기존 도시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스며든 조화로운 모습은 가히 승경의 백미라 할 만하옵니다. 어쩌면 도시 곳곳을 상징할만한 건물들의 주요형태를 절묘하게 추상화한 결과가 아닌 듯  싶사옵니다.   

알도 로시, 테아트로 델 몬도 모형 및 바다 전경











이규보 : 마치 오래 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옛것과 새것이 이루어낸 조화야말로 감탄할만하오. 게다가 물위를 떠다니다니... 저 누정 하나만으로도 베니스의 풍광은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끊임없이 변모하는 모습을 양산해낼 터이니 그 미묘한 경지를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겠소이다 그려.


하지만 정자를 건축함에 있어 어찌 경치를 완상하고 흥취만을 즐기기 위함이 전부겠소? 무엇보다도 천지자연의 조화를 궁구하는 것이 놓쳐서는 안 될 이치가 아니겠소? 하물며 마음을 청정하게 다스려 심려를 씻으려하는 중에게는 더 없이 중요한 것이 곁에 두고 볼만한 승경(勝景)이 아니겠소? 내가 능파정을 물 위에 점지했던 것은 높은 곳보다는 낮은 위치에 포복하되 마치 배가 떠 있는 모습으로 서있는 것이 주변의 지형, 지세에 제대로 순응하는 것이라 여겼으며, 물살이 세지 않고 유장하게 펼쳐진 강물을 몸 가까이 두고 보는 것이 그 자리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풍광의 가치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소.


작가의 이전글 그 자리, 그런 집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