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억중 Dec 30. 2020

그 자리, 그런 집 (5)

가꿈에 허튼 계산이 없었다


세연정 전경



김억중 : 저 또한 보길도의 지리와 생리를 터득하여 섬 곳곳의 보석같은 자리를 건축으로 빛내려했던 윤대감님의 귀한 말씀을 귀담아 듣고 싶사옵니다.  


윤선도 : 비록 강요된 것이기는 하였으나 보길도는 제 스스로 찾아갔던 유배지였사옵니다. 탐라로 들어가던 도중에 들르게 된 보길도의 풍광에 푹 빠져,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사옵니다. 한 곳에 뿌리를 내려 삶과 앎을 일치시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선비의 도리라면, 그 둘을 동시에 펼칠 공간을 소중히 여기고 가꿀 줄 알아야 하는 것 또한 선비가 지녀야 할 덕목 중의 덕목이라 생각하옵니다. 비록 죄인의 몸이기는 하였으나 보길도에서 행했던 건축은 선비로서 당연히 했어야 했던 일을 했을 뿐이라 여기옵니다. 


송순 : 겸손하신 말씀이외다. 세연정 일대를 돌아보면 전체를 조망하며 부분을 제어하고 한치 어긋남 없는 정교한 구성으로 무이구곡의 정경을 폭 넓게 경영했던 대감의 탁월한 눈썰미에 감탄할 따름이오. 
                   

이규보 : 격자봉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류를 막아 세연지를 만들고 회수담을 조성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솜씨라 여겨지오. 자연 조건에 수동적으로 대웅하지 아니하고, 숨겨있는 가치를 발굴해내어 마침내 그 자리에 절묘하게 어울리는 정자와 그 주변을 완성해내었으니 말이오. 세연지에 점점이 들어 앉아있는 바위들은 담겨진 물의 양에 따라 드러나기도 하고, 감추어지기도 하니 그 변화를 즐길만한 묘미를 만든 것도 뛰어난 지리적 해석의 결과가 아니겠소? 


세연정 배치도


윤선도 : 과찬에 몸 둘 바를 몰라 송구스럽기도 하거니와, 혹시라도 물속에 들어 있는 바위 중에 ‘혹약(或躍)’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것을 보셨다면 당시 저의 야심을 들킨 듯하여 더더욱 부끄럽기 그지없사옵니다.


꿈틀거리는 물속의 저 바윗돌 / 蜿然水中石
어쩌면 그리도 누워 있는 용 같은지 / 何似臥龍巖
내가 제갈공명 초상화 그려 / 我欲寫諸葛
이 못 옆에 사당을 세워 볼거나 / 立祠傍此潭
[고산, 혹약암(或躍巖) , 고산유고 1권]


 “금새 뛸 것 같으면서도 아직 뛰지 않고 연못 속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었는데, 마침 와룡선생을 닮은 바위에다 삼고초려에 응하기 전에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으려 했던 선생의 모습에다 제 자신을 빗대어 그 글귀를 새겨 넣었던 것이었사옵니다. 


송순 : 하하하. 참으로 대감다운 발상이오. 그 또한 상상력과 재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비록 작은 바위 하나라도 소홀히 다룸 없이 저 마다 뜻과 역할을 부여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읽는 기쁨을 주는 것 아니겠소? 어디 그 뿐이었소? 세연정의 풍류 말이오. 대감은 회수담 양쪽에 돌로 쌓은 동대와 서대를 두어 무희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고 악사가 풍악을 올리도록 하여 시ㆍ가ㆍ무를 하나로 즐기며 성정을 수양하고 시정을 깊이 하였으니, 가꿈에 허튼 계산이 없었다 할 것이오. 


이규보 : 세연정의 정교한 배치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오만. 기실 춤은 동, 서대 뿐 아니라, 건너편 제법 높은 동산 위에 위치한 옥소대에서도 긴소매 차림으로 춤을 추게 하여, 그 몸놀림이 물속에 그림자로 아른아른 비치는 모습을 즐길만한 곳을 정확히 찾아내어 세연정을 위치시켰던 것 아니겠소? 시ㆍ가ㆍ무를 즐기되 직설적인 방식이 아니라, 먼 곳으로부터 들리게 하거나 그 모습을 물 위에 비치게 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즐겼으니, 그 또한 보기 드문 풍류의 격조가 아니겠소? 바위며 계곡, 동산, 정자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그 자리, 그런 모습’의 경관을 이루고 있으니, 지리와 생리를 동시에 아우른 대작이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다하겠소. 


김억중 : 세연정과는 상황이 다소 다르기는 하옵니다만 Snozzi 선생의 칼만 주택의 경우, 급경사의 지형, 지세로 보아 건축하기에 선뜻 주저할만한 악조건임에 분명하옵니다만 주변의 다른 집들과 달리 등고선을 따라 좁고 기다란 집 한 채와 누정을 얻어 내었으니 그 지혜가 남다르다 하겠사옵니다.   


카사 칼만 평면, 단면도



이규보 : 본채 바깥에 둔 정자만 보더라도 지형을 따라 낮게 휘어진 옹벽 끝자락에 참으로 고귀한 자리를 얻어낸 것만으로도 감탄할 지경이오. 똑같은 호수를 바라보더라도 본채는 전/후의 깊이 있는 풍광을 담아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정자는 본채로부터 확실히 비켜서 있는데다 4면이 탁 트여 좌우로 넓게 펼쳐지는 풍광을 취하고 있으니 ‘그 자리’만의 대지해석이 어찌나 정교하고 창의적인지 내가 보아도 ‘그런 집’의 묘수가 어디 또 있을까 싶소. 비록 이역 땅에 세워진 기특하기 그지없는 집이기는 하나 내 당장 그리로 가, 그 흥취를 맘껏 누리고 싶은 마음을 진정키 어렵소이다 그려.   

  

송순 : 저 역시 그러하옵니다. 세연정과 또 다른 방편으로 카사칼만 역시 인위적인 구성을 보태어 자연을 가공하기는 하였으나, 오히려 자연의 결함을 보완하고 궁극에는 그조차 ‘스스로 그런’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으니, 범상한 인간으로서 다다르기 힘든 경지에 올라 있음이오. 동서를 막론하고 이 모두가 생각의 힘으로부터 비롯된 놀라운 업적이라 할 만하오. 명작들을 되뇌어 보는 이 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눈시울이 불거질 지경이라오.  


김억중 : 부끄럽기 그지없사옵니다만 제가 설계했던 아주미술관의 경우도, 선현들이 보여주신 누정건축의 지혜를 계승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던 사례이옵니다. 동북향의 대지조건을 고려하여 그릴로 된 틀을 두어 하루 종일 햇빛과 그림자가 구름과 함께 움직이면서, 하부 공간에 온기를 부여하도록 하였고, 그 경승이 1층 연못에 비추도록 하여 그 위에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경사로를 따라 완상하도록 하였사옵니다. 2층에 다다르면 3개의 정자를 카페테리아 전면에 배치하여 따스한 빛 아래 원경을 조망하거나 연못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하여 모름지기 그 자리, 그런 모습을 이루도록 구성하였사옵니다.  자세한 품평의 말씀은 추후 미술관에 모시어 청해 듣기로 하겠사옵니다. 부디 훗날을 기약해주시길 앙망하옵니다.



아주미술관 연못, 2층 정자[음풍정, 농월정, 식영정]



이규보 : 허허! 시간이 허락한다면야 당장이라도 달려가 함께 그 정자에 올라 빛과 그림자의 오묘한 운행에 동참하여 그 기쁨을 누리고 싶소만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오. 허나 상상만으로도 내 몸은 이미 거기 가있다오. 김군의 속마음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음이 없다 하겠소이다. 


송순 : 하늘과 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돌고 돈다(天光雲影共徘徊)는 주자의 말씀이 실현된 공간이기도 하니,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옵니다. 당장은 그 곳에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움이 저 또한 크옵니다. ‘그 자리, 그런 집’을 추구하려 했던 김군의 노력이 참으로 가상하오이다.
 
윤선도 : 역시나 두 대감께오서 ’‘그 자리, 그런 집“을 보고 느끼는 정취가 저의 소견과도 대통하는 데가 있어 기쁘기 한량이 없사옵니다. 게다가 김군 또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조건에 걸맞도록 누정건축의 진면목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간 흐뭇한 일이 아니옵니다. 아쉽기는 하나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옵고 이제 세연정에 오르시어 심신을 편히 쉬시옵소서. 곧이어 관현악과 가사, 춤이 어우러지는 멋진 판을 벌릴까 하옵니다.


김억중 : 어르신들의 주옥같은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경청하다보니 어느새 깊어진 밤이 야속하기까지 하옵니다. 오늘 밤 연회에 오르시기 전, 세상 곳곳에  ‘그 자리, 그런 모습’을 이루어낸 훌륭한 건축물 모두가 만년수를 누리며, 세세연년 수많은 이들의 기쁨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대감께오서 손수 지으신 모정기 송사(頌辭)를 마저 제가 낭송하겠사옵니다. 아울러 오늘의 가르침을 교훈 삼아 옥루(屋漏)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세로 더욱더 참다운 건축을 위해 정진하겠사옵니다.


정자가 익연하여 / 亭翼然
봉이 나는 것 같도다 / 鳳將騫
누가 지었을까 / 誰其營
어진 우리 후(侯)로다 / 我侯賢
후가 잔치를 베푸니 / 侯式宴
술이 샘 같구나 / 酒如泉
잔을 받들어 권하니 / 奉觴酢
손은 천 명이로다 / 客指千
무엇으로 권할 것인가 / 何以酢
만년토록 수하소서 / 壽萬年
산은 변하더라도 / 山可轉
정자는 옮겨지지 않으리 / 亭不遷
[이규보, 진강후(晉康侯) 모정기(茅亭記),동국이상국집 23권]


그러고 보면 대감들이 증거 했던 ‘그 자리에 그런 집’이란 결국 대지의 천리(天理)-지리(地利)-인화(人和)의 메시지 사이의 절묘한 합일(合一)을 이루어 낸 집이라 할 수 있다. 대지가 사유의 텃밭이라면, 그 메시지야말로 사유의 집을 짓는 소재들이 아닌가. 대지에 얽혀있는 의미의 구조를 꼼꼼하게 읽고 그에 어울리는 삶을 세밀하게 상상해내어 집 속 구석구석에 담아내야 할 일이다. 만일 허허벌판에 맘대로 설계 해보라는 주문이 있다고 하자. 문제를 풀어내기가 쉬울 것 같지만, 근거할만한 단서가 없으면 오히려 난감할 뿐이다. 기댈 곳이 없는 사유의 집은 사상누각에 다름없다. 오히려 대지의 문제가 복잡하고, 모순에 그득 차있으며, 고난도일수록 사유의 토양은 비옥한 것이어서 열매를 맺을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는 법이다. 대지는 우뢰와 같은 침묵, 묵여뢰(黙如雷)의 화두다. 그러므로 난마처럼 얽혀있는 대지의 까다로운 조건을 탓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곡예 하듯 즐길 일이다. 다만, 대지에 따라 누릴 수 있는 자연 조건이 서로 다를 터이니, 그 자리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은총이 무엇인 지를 잘 살펴 '그 자리, 그런 집'을 지을 일이다. 절로절로!


새 집이 오래도록 완성되지 않아 밤중에 홀로 누워 보금자리가 아직 정해지지 못한 것을 개탄하였다. 그리고 한 해가 벌써 저무는데 몇 개월 동안 책을 보지 못했으니, 결국 두 가지를 다 놓쳐버린 꼴이 된 것이다. 차라리 이대로 버려두고 돌아가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집이 거의 완성되어 가는 것이 아까웠다. 두 가지 생각이 마음 속에 얽혀 말똥말똥 잠 못 이루며 세 수를 짓다.
 
지난 가을 새 삶터 설계했건만
그렁저렁 어느새 저무는 한 해
초가 이엉 엉성해 빗방울 뚝뚝
흙벽일 남았는데 추위는 성큼
지혜로운 개미집 부끄럽구나
편안할사 뱁새숲 부럽다마다
어느 제나 튼튼한 집을 짓고서
얼씨구 낙성가를 불러 볼거나
(농암 김창협, 1651-1708)


‘그 자리, 그런 집’을 잘 설계했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집을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치며, 속 깨나 썩이는 일인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제 뜻대로 되지 않아 더디기 만한 일도 일이지만 개미나 뱁새 같은 미물들이 제 집을 잘도 만들어가는 것을 보면 그들만도 못한 지혜가 아쉽기도 하다. 아! 그렇지만 그렇게 고생과 기다림을 거듭하며 지어진 집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설렘으로 밤새 잠 못 이룰 수 있기라도 한다면, 집 없는 이의 서러움에 어디 비할 바 있을까? 일생일대 잘 해야 한, 두 차례 집을 지을 텐데, 그 과정에서 오는 괴로움이나 고통 또한 행복의 목록에서 감초처럼 빠질 수 없는 달콤한 투정이 아닐는지.    

 

작가의 이전글 그 자리, 그런 집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