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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억중 Feb 05. 2021

품위있게 외면하는 법

집, 갈등 요리 전문점


많은 이들이 '삶이 고해(苦海)'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이, 갈등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 갈등을 어차피 요리해야 한다면 삶의 쓴맛이 마냥 쓰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맛볼수록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특단의 레시피가 필요하다. 갈등을 지혜롭게 요리하기 위해 가족 상담가든 사회학자든 각자가 살펴보아야 할 영역이 있겠지만, 건축가의 경우는 대부분 사람과 공간 사이의 미묘한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 김억중


이를테면 부부간, 고부간, 세대 간의 갈등은 집안에서 피할 수 없는 일상의 메뉴에 해당된다. 일례로 부부간의 경우, 늘 문제가 되는 것은 무슨 연유로든 한바탕 싸우고 난 후의 처신이다. 부부가 그 순간만큼은 서로 얼굴조차 마주치기 싫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과연 집안의 공간구조가 각자의 처신을 품위 있게 외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경우, 다락방이나, 별채가 있는 집, 또는 방들이 겹으로 이어져 있는 집에서는 부부가 싸우고 나서도 적당히 때를 보아 쑥스럽지만 언제든 화해할 수 있는 내밀한 공간이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되돌아 볼만한 공간을 각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집에서는 감정이 극단으로 쉽게 치닫지 않고 서로 마음을 다스려 민망하지 않는 수준에서 화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되레 그런 공간구조라면 잘(?) 싸우고 나서 화해와 용서를 통해 상대방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게 되어 부부간의 팀웤을 더욱 더 굳게 다질 수 있어 좋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파트에서는 싸우고 나서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있거나 집밖으로 나도는 방법이외는 뾰족하게 갈등을 요리할만한 레씨피가 마뜩치 않다. 숨을 곳조차 마땅치 않은데다, 방문만 열면 서로 외면하기 힘든 공간 구조가 아닌가? 싸움을 하고 나서도 어떻게 이 난국을 추슬러 나가야할 지 참으로 난감한데, 서로 뜻하지 않게 덜컥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쩔 수 없이 더 차갑게 등지게 되고 집안의 냉기는 점점 더 해갈 수밖에 없다. 


생채기에 덧나듯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하여 부부간에 최소한의 자존심과 예의조차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모는 공간구조라면, 결코 건강한 집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집이야말로 갈등을 제대로 삭여, 맛볼수록 그 깊고 깊은 맛에 두고두고 감동할만한 멋진 요리 솜씨가 깃들여 있지 않은 것과 같지 않은가.


지난 수십년 이래 이혼율이 지속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은 전통적인 유교관념의 붕괴와 가족관계의 변화나, 금전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시대적인 추세 등으로 그 이유를 풀이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구조가 갈등을 부추기는 데 매우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특히나 경제적인 이유로 첫 신혼살림을 원룸에서 시작하는 젊은이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 보인다. 깨소금 같은 신혼생활 동안이야 공간이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그 달콤한 시간이 지나면 냉혹한 현실이 그들의 적나라한 부부싸움을 마치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기나 한 것처럼 이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원룸 안에서는 부부가 서로 피할 수 없는 시선 속에 서로를 가두어야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공간 속의 그 불길한 기운을 타고, 사소한 다툼은 곧바로 "사네, 못사네"하는 식의 극단으로 치닫는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쯤 되면 이혼율의 증가를 어찌 젊은이들의 혈기왕성한 성정 때문으로 탓할 일이겠는가? 공간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영혼마저 부대끼는 이들에게 인내와 사랑으로 살아가라고 주례사처럼 되뇌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고문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집이 어떠해야하는가 자명해지지 않는가. 공간 속에 일상의 갈등을 갖은 양념처럼 속속 버무려 그 집만의 간이 잘 배인 요리 전문점 같은 집! 그 공간 속에 화해와 용서가 곰삭혀져 세월이 갈수록 사람 사이 끈끈한 정과 깊고 깊은 신뢰를 함께 맛 볼 수 있는 집!  그래야 어떤 경우든 품위있게 서로 외면할 수 있다.

요컨대 집다운 집이야말로 갈등을 요리하는 건축가의 날선 솜씨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집이어야 비로소 삶은 고해(苦海)로되, 그 고단함을 위로받을만한 고해소(告解所)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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