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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맘 은지 Sep 25. 2024

여유 없는 여유

“다온아, 안 되겠다. 엄마랑 산책 나갈까? 좋지? 너도 좋지? 나가자!”


이제 150일이 되어가는 딸내미와 집에서 놀다 보면 놀아주는 것에 한계가 온다.

일명 까꿍 놀이, 함께 거울 보기 놀이, 이불 놀이, 비행기 타기 놀이, 발 피아노 치기 놀이, 모빌 보기, 동화책 보기, 아이 앞에서 춤추며 노래 부르기, 인형 놀이, 실로폰 치기, 다온이랑 옹알이 대화하기 등...

할 것 다 하고 나면 할 게 없어진다.


‘휴~ 이제 뭐 하고 노나...’

아기는 옆에서 뒤집기만 연신 해 대며 낑낑, 침만 줄기차게 흘린다.

자동 반사적으로 아기는 뒤집고 또 뒤집고,

뒤집으며 땀이 아니라 침을 흘리는 아기의 입을 닦고 또 닦고.

침이 늘어나듯 빨아야 할 손수건이 한 장 두 장 쌓여 간다.


'에구 지치다..'

아기도 이렇게 집에만 있으면 답답할 거야. 나가서 나무도 보여주고 풀꽃도 보여줘야지.’


해야 할 빨래를 잠깐 미룬 채 늦은 오후, 더위가 가실 무렵 아기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잠시 바깥공기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다 놓아 버리고 머리와 몸을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하고 오기까지 시간을 좀 때워야겠다.

우유병을 갖고 갈까 고민하다가 아기가 우유 먹기 전에 들어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면서 혹시 몰라 버릇처럼

책 한 권을 챙겼다.

산책을 하다 보니 남아 있는 여름더위로 목이 말라

커피 한 잔이 시원하게 끌어당긴다.

어느새 발걸음이 커피숍으로 향하고 있다.

한 걸음에 설렘!

두 걸음에 해방감!!

세 걸음에 목마름!!!


커피숍 입구에서 문을 열랴 유모차를 들이랴 낑낑거리려 하고 있는데, 예쁘게 차려입은 시크한 단발머리 아가씨가 차를 다 마시고 나오며 문을 열어준다.

‘덜커덩~ 덜커덩~’

디럭스 큰 유모차가 부대낀다. 마음도 같이 부대낀다.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문 잡아주기를 은근히 힘들어하는 그분께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이 교차했다.

나도 아가씨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유모차를 끌고 산책 나온 아줌마가 되어 주변에 피해라도 줄까 실금 눈치를 보고 있다.  그래도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는 감동이 두 배로 커진다.


얼른 자리를 잡고, 피로를 달래 줄  달달한 아이스 돌체라테를 주문했다.

그러고 유모차에 앉은 아기가 꿈틀꿈틀대니, 답답했을 껍데기에서 아기를 빼내어 품에 안고 커피숍 안을 사뿐사뿐 날아다니듯 구경시켜 주었다.

이곳은 반려견과 함께 동반 입장이 가능한 곳이고,

강아지 옷도 함께 판다.


“다온아 이건 강아지 옷이야~, 다온이 옷 아니고^^


아기를 안고 진열된 강아지 옷들을 보여주는데 마치 아기 옷처럼 진열이 되어 있다.

마침 흑백모빌처럼 흑과 백의 체크무늬 옷이라 다온이의 눈이 커졌다.

다온이는 흑백모빌 같은 강아지 옷에 시선을 뺏기고,

나는 창가 너머에 초록초록한 자연뷰에 시선을 뺏긴다.

같은 장소, 서로 다른 시선이다.

커피가 나온 후 아기와 나는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아기는 유모차에 나는 커피숍 의자에.

외출할 때 챙겨 온 ‘엄마의 글쓰기’라는 책을 꺼냈다.

여유를 느끼며 책을 읽으려 하는데, 아기는 멀뚱멀뚱 커피숍 안을 봤다가 나를 봤다가 심심했는지 유모차에 달린 모빌에 한껏 발차기를 해댄다.

아기가 심심할까 봐 미안한 마음에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글 몇 문장 읽고 다온이랑 옹알이 대화하고

커피 한 모금 먹고 다온이 보며 웃어주고

또 글 몇 문장 읽고 다온이 안아주고

또 커피 한 모금 먹고 다온이 침 닦아주고


마치 자린고비 이야기처럼 굴비 한 번 보고 밥 한 수저 떠먹으며 대리만족하듯, 아기를 보며 커피와 독서를 찔끔찔끔, 순간순간에 여유 없는 여유를 즐긴다.

커피를 몇 모금 마셨을까, 아기랑 놀아주다 보니 30-40분이 훌쩍 지났다.

(체감상 시간이지 더 지났을 수도 있다.)

아기가 배가 고팠는지 칭얼대기 시작한다.

산책을 조금만 하다가 집에 들어갈 생각으로 우유병을 놓고 왔는데 아기가 힘들어하니 집에 갈 수밖에 없다.

책을 좀 더 읽으며 커피와 여유를 마시고 싶었는데.. 

책과 함께 마음을 접고, 반 이상 남은 커피를 꼴각꼴각 

급하게 원~샷 하고 집으로 나선다.


커피숍을 나오니 해질 무렵이다.

바람의 온도는 내려가고, 내려가는 태양은 붉어진다.


‘이제 가서 다온이 목욕도 시키고 우유도 줘야지, 밀린 빨래도 해야지.’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유모차에 탄 다온이에게 말을 건넨다.

“다온아 집에 가서 밥 먹자~~^^”

햇빛가림막에 가려진 딸내미 얼굴을 옆으로 빼꼼히 보니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잠투정이었나 보다.


아직도 어설픈 엄마와 순항 양 아가를 귀엽다는 듯이,

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우리의 머리를 어루만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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