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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맘 은지 Sep 18. 2024

참 고맙다. 내 남편.

"우리 애기 늦게 자려고~~?^^"

"응~ 자야 되는데..."


남편이 씻고 나와서 머리를 탈탈 털며 묻는다. 11시가 넘은 밤. 나는 글을 쓰려고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서 ‘우리 애기’는 진짜 우리 애기인 다온이가 아니라, 남편이 부르는 ‘나의 애칭’이다. 이제는 우리 애기가 태어나서 가끔씩 헷갈린다.  남편은  번갈아 부르느라 바쁘다.

 하지만 남편이 나에게 우리 애기라고 불러주는 것이 좋다.

이 애칭은 사랑이 물씬 피어오르던 연애 때부터 불리던 거니까.  

할머니 되어서도 우리 애기라 부르면 나는 쥐구멍을 찾고 있겠지? 서로가 콧구멍에서 물을 뿜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글거리는 마음을 오래도록 품으며 살고 싶다.


보통은 밤 11시면 아기를 보다가 지쳐 쓰러져 잘 때도 많지만 오늘은 눈이 감기지 않는다.  친구같은 사촌동생을 정말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움이 가시지 않아 기분이 들떴다. 정확히는 9개월 만에 만남이다. 나는 임신과 출산, 100일까지의 조심스러운 육아를 거치고, 아직 미쓰인 동생은 일이 바빠 서로가 만나기 어려웠다.

우리는 그동안 못 나눴던 근황을 조곤조곤 나누며  서로 다른 일상의 선을 이어갔다.

함께 식사를 하는 도중 동생이 물었다.


“언니, 언니는 요즘 어때?”


장어쌈을 크게 입에 넣은 순간에 들은 질문이라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어 오물거리며 엄치척만 날렸다.


“좋아 좋아, 힘들어도 좋아. 낮에 아기랑 둘만 있으면 말이 안 통하니 심심할 때도 있고, 케어하느라 힘들 때도 있는데.. 더 풍요로워진 것 같아. 부자가 된 것 같아.

아기는 마이너스보다 플러스인 거 같아. 행복해. 남편과 둘이 있을 때보다 더 좋아. 웃음이 더 많아졌어.

아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던 남편이 더 좋아해. (남편이 완전 바보가 됐어.) 그리고 남편이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는 온전히 아기를 봐주며 내가 취미생활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어. 그래서 글도 쓰는 거고. 감사하지^^”


동생의 한 줄짜리 질문에 답이 길어졌다.

아기가 있어 ‘힘든데 좋다’.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역설.

지금의 삶이 충만하다 느끼니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아졌다.


남편한테도 고맙다.

들뜬 마음 가질 수 있게 마음의 여유를 심어줘서.

글을 쓸 수 있게 당신의 시간을 내어 줘서.

며칠 전 친정엄마 환갑파티에서도 남편이 친정엄마께 은지가 요즘 글 소재 찾는 것에 재미가 들렸다며 내 근황을 대신 이야기하는데, 본인이 더 설레고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육아로 힘든 것을 이해하고 상대의 숨구멍을 만들어 주는 일. 상대가 좋아하는 일을 함께 좋아해 주고, 지켜봐 주는 일.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함께 하는 시간의 일부를 내어주는 일. 함께 해야 할 육아를 혼자 하면서도 마땅히 행복해하는 마음.

힘든 내색 안 하고 주말만큼은 내게 ‘산뜻하게’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남편이 있어, 잃어갈 뻔한 나의 빛깔을 다시 칠하고 있다. 아니, 더욱 다채로이 칠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도 된다.   


남편 말대로 요즘 글 소재를 찾고 있다.

글 소재를 찾는 일이란 그냥 재밌는 글 쓸 거리를 찾는 게 아니다.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똑같은 일상 속에서 '잊지 않기' 위한 순간순간, 하루를 만들어 가는 이다.

그리고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안 그러면 육아로 지친 하루, ‘나는 없는’ 우울한 삶이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 앞에서 노래 부르고 춤출 때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는 생각에 혼자 실소를 터트리며 아기와 함께 웃는 일, 아기 앞에서 내 가슴에 손을 몇 번씩 갖다 대며 ‘엄마~! 엄마’하며 알려줘도 열심히 '손가락 빠는 데'만 집중하는 4개월 아기를 보며 빙그레 웃는 ,

자기 키만 한 실로폰채를 잡고 혀를 날름거리며 한 번 맛봤다가 막무가내로 두들겼다를 반복하는 아가를 옆에서 긴장하며 지켜보는 일,

응가가 옷에 묻어도 좋다고 깔깔깔 거리는 아기,

힘들게 뒤집기와 되집기를 연신 해대며 오늘도 1cm 자라는 아기, 목베개를 배에 둘러 우연히 튜브를 만든 아기,  

퇴근한 남편과 함께  잠든 아기를 보러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갈 때 느껴지는 설렘,

시간이 지나면 왜 싸웠는지 우습기도 하지만,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게 하는 부부갈등,

육퇴 후 남편과 함께하는 신나는 맥주타임,

아기를 보다 힘들어 망나니 머리를 하고 혼자 멍 때리는 시간들, 

하루를 온전히 애썼을 서로를 보듬는 일..

 

어쩌면 잿빛으로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이지만,

이 사건들이 글이 되면서 내 마음에는 빛나는 한 장면으로 남고 있다. 한 순간에 우리만의 빛깔을 칠하며 잊지 못할 ‘마음 사진’을 찍어내는 것이다.

말도 안 통하는 아이와 보내는 지친 하루가 아니라,

이 안에서 웃음거리를 찾고 다시는 없을 하루를 만들어 가는 길. 이 길 안에서  나도 아이와 함께 한 뼘 더 성장해 갈 거라 믿는다. 그러니 더없이 소중한 시간일거라고..


참 고맙다. 내 남편.

나에게 이러한 다채로운 일들을 만들어 줘서.

순간순간 나만의, 우리만의 빛깔로 칠할 수 있게 해 줘서.

잘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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