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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면발, 시간의 손끝

일본의 우동 장인을 만나다

by 국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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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누키우동 제조시설을 견학하던 날, 나는 '우동'이라는 음식이 단순한 면 요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실감했다. 일본 가가와현에서의 우동은 하나의 문화이자 자부심이었다. 그리고 거리에 즐비한 우동 전문점들은 그 역사를 말해주듯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사누키우동 : 사누키란 일본 가가와현에 위치한 지역명이다. 즉, 사누키우동이란 사누키 지역에서 유명한 음식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전주비빔밥, 춘천닭갈비 같은 느낌이다.


출처 : さぬき麺業 공식홈페이지






우동,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바로 '노인'이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고, 그들은 단순히 오래 일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을 해온 장인'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아시후미 공정(발로 밟는 방식)’이라는 전통 방식이다. 한 마디로, 반죽을 발로 밟아 쫄깃한 면발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발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놀라웠지만 이곳에서는 고유한 제조 방식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직접 보니 생각보다 정교하다. 요령은 균일하게 힘을 주고 골고루 밟아야 좋은 반죽이 된다고 한다.



면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해 보였지만, 막상 따라 해 보니 쉽지 않았다. 반죽을 숙성시키고, 밀고, 썰고, 삶기까지. 하나하나에 감이 필요했고, 그 감은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숙련된 손의 감각, 수십 년의 실패와 반복 속에서만 익힐 수 있는 과정이었다. 그 손끝에는 설명할 수 없는 노련함이 있었다. 움직임은 느릿했지만, 그 안엔 정확함이 있었다.



실제로 만들어 보는 과정을 따라해보니, 물론 몇몇 사람들은 곧잘 따라 하기도 했지만 나의 면은 그저 웃음거리였다. 친구들과 비교해 보니 너무나 두꺼웠고, 아니나 다를까 삶자마자 뚝뚝 끊어졌다. 머쓱한 기분과 동시에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손끝의 시간, 그 경험과 노하우는 정말 무시할 수 없는 듯했다.



일본의 장인들은 참 조용하다.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고, 설명을 길게 하지도 않는다. 묵묵히 면을 만들고, 국물을 끓인다. 그들에게 우동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매일 해온 일이었고, 그 반복이 만든 숙련도는 굉장히 자연스럽다.


물론, 모든 노인이 장인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노인들은 그 시간을 통해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런 방식은, 쉽게 흉내 낼 수 없다. 억지로 치켜세우지 않아도,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었다.


우동과 함께 즐기라며 공장에서 제공해 준 초밥과 튀김


모든 수업이 끝나니, 생각보다 많이 허기가 진 상태였어서 정신없이 흡입해 버렸다. 사실 눈 떠보니, 우동은 사라져 있어서 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다.(반성) 그만큼 맛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조용하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공간, 사누키 우동 제조시설에서의 하루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길거리를 누비다 보면, 몇십 년 전통의 간판이 내걸린 '노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다 못해 전통 시장만 가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노인들을 쉽게 엿볼 수 있다.


무언가 그들은 각자 받은 삶의 소명이 있는 듯, 노년에도 땀을 흘리며 삶의 대한 의지를 강렬하게 표출하고 있었다. 어느 젊은 청년들 못지않게 말이다.


나의 노년도, 주어진 소명을 다하기 위해 묵묵하게 나만의 길을 다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비바람 같은 인생의 풍파를 다 겪고도, 끝내 자신만의 길을 지켜낸 사람들.

그 모습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는 그들은, 바로 우리네 장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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