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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불편한 편의점 : 로손편

그들이 찾는 진짜 이유

by 국빈
일본의 3대 편의점 중 하나인 '로손'


"아니, 이 말도 못 알아듣는 거면, 그만두는 게 낫지 않아요?"


일본 편의점 '로손'에서 일을 시작하고 며칠 안되었을 때, 한 손님이 내게 툭 던진 말이었다.

나는 화가 나긴커녕, 그저 죄송스러운 마음에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일하던 시간대는 굉장히 바쁘고, 모두가 예민한 출근시간이기 때문에 그의 입장은 충분히 납득이 갔다.


바쁜 와중에 점원과 소통마저 잘 되지 않으니, 나라도 정말 답답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상품 이름은 못 알아들었는데 나를 저격하는 말은 왜 이리 또박또박하게 귀에 꽂히는 걸까.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아무쪼록 그 말은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보수를 받고 일하는 곳인데, 나라는 존재 때문에 손님들에게 이곳이 '불편한 편의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미 되어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날부터 나는 출근길에도, 또 퇴근길에도 단어장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 알아듣지 못해서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말들을 모조리 수첩에 적어두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수없이 외우고 또 외웠다. 물론, 공부에 대한 의지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信じてください' : 믿어주세요!


편의점 알바 면접을 앞두고, 무작정 외워갔던 말이다.

다행히 기존에 일하고 있던 유일한 한국인 직원의 평판이 좋았던 덕분인지 나의 패기를 보고 채용해주셨다고 한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는 그 믿음을 증명해야만 했기에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배워나갔다.




어느 정도 편의점 일에 적응을 하니,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상냥한 손님들도 생겨났다.

특히, 매일 아침이 되면 신문을 사가시던 어르신이 떠오른다.

계산대에 툭, 신문을 놓으면 나는 자동으로 대답을 한다. "네, 150엔입니다."

기계처럼 반응하는 나를 보더니, 얕은 미소와 함께 질문을 남기신다.

"일하는 건 괜찮나요?"

내 어설픈 발음 때문인지, 외국인인 걸 단숨에 알아보신 듯하다.

나는 서툴지만 정성껏 대답했고,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고해요"라는 짧은 인사를 건넸다.


그날 이후로 그는 신문을 살 때마다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날씨 이야기로 시작해서, 시시콜콜한 농담까지. 그렇게 우리는 길진 않았지만, 매일 몇 마디씩을 주고받았다.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그들에게는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작은 창구였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일본 편의점은 그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한 TV 프로그램에서 하루 종일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노인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독거노인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우리보다 20년 빠르게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은 편의점 또한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라 노인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듯하다. 어쩌면 편의점에서의 짧은 대화가 그들에게는 하루 중 몇 안 되는 말할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부분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 실제로 일본에서는 점점 더 많은 편의점들이 노인을 위한 서비스를 고민하고,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특히 일하던 로손에서는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도시락이나 성인용 기저귀 같은 실버용품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쪽 코너에서는 건강 상담이나 보험 상담을 제공하며 직접 소통을 하는 곳도 있었다. 이렇게 젊은 층의 '편리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령층의 '필요함'을 충족시키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편의점 마지막 근무 날, 늘 신문을 사 가던 어르신에게도 짧은 인사를 건넸다.

"건강하세요, 어르신." 아쉬운 마음을 애써 숨긴 채, 나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이고 아쉽네~ 잘 살아요." 라며 이야기해주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뭐랄까. 어느새 나도 이 분에게 정이든 모양이다.

짧은 인사, 물건을 건네는 손길, 매일 같은 시간에 마주치는 익숙한 얼굴.

그곳에서 나눈 순간의 대화 속에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어떠한 온기가 있었다.

미안하게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편의점이었겠지만, 지금은 그 점포가 어떤 모습일지 문득 궁금하다.

그 신문을 사가시던 어르신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카운터 너머의 점원에게 말을 걸고 있을까?

그들이 편의점을 찾는 진짜 이유, 일본의 편의점은 단순한 쇼핑을 넘어 사람과의 소통을 원하는 그들의 삶의 패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문득 생각한다.

한 어르신의 하루 중, 처음 입을 떼어 말을 건넨 사람이 나였던 적도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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